아침마당에 나온 오은영박사의 이야기 한토막.
오래전 저에게 상담을 받은 여성분이 있었어요.
삶의 큰 고통으로 오랜 상담이 필요한 분이었어요.
어린 시절 그녀의 가족은 형제자매들이 많은 대가족이었는데 아버지가 원양어선을 타는 분이라 몇 달에 한 번씩만 집에 오셨대요.
가끔 보는 아버지였지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늘 좋았대요.
그녀가 초등학교 5학년쯤 서서히 사춘기가 되어갈 무렵 어느 날, 하굣길이었는데 저 멀리서 누군가 오고 있더래요.
몸집이 산만큼 커다랗고 깎지 않은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가.. 점점 가까워지니 아버지인걸 알아차렸대요.
그 순간 그녀는 속으로 어찌해야 하나 싶었대요. 왜 망설였는지... 아버지의 덥수룩한 모습이 싫었던 건지 아님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와 바깥에서 만나는 것이 어색했던 건지... 속으로 그녀는 어떡하지? 어떡하지? 그 생각만 맴돌며 점점 더 아버지와 가까워지고 있었대요.
그런데 아버지가 갑자기 등을 굽히고 신발끈을 묶는 것처럼 잠시 길가에 쭈그려 앉아서 뭘 하시더래요.
이대로 그냥 가면 아버지와 엇갈려서 집까지 갈 수 있겠구나, 그냥 확 달려가버릴까? 찰나에 무슨 생각들이 그리 많이 나는지.. 그녀가 그대로 아버지를 지나치려는 순간, 아버지가 고개를 들고 그녀에게 한아름 가득 방금 꺾은 들꽃을 내미시더래요. 함박웃음을 짓고 말이지요..
들꽃향기가 갑자기 확 다가오면서 그동안 그녀 머릿속에 있던 모든 생각들이 사라지고 저절로 아버지를 꼭 안으며 마냥 어렸던 아이처럼 찰싹 붙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더래요.
그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그 행복했던 순간을, 들꽃냄새만 맡으면 생각나는 그 순간을 얘기하면서 지금의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도 그때의 기억으로 견딜 수 있었다고 하더라는..... 그런 이야기를 하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