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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진한 브라우니 Jul 30. 2024

고추장찌개의 추억

친구 생각

수연이란 친구가 있었다. 중3 때 우린 같은 반이었다. 자존심이 세고 할 말은 분명히 하는 강단 있는 아이였다.  친하게 지내다가 중학교 졸업할 무렵에 뭔가 틀어져서 한동안 말도 안 하고 지내다가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헤어져버렸다. 아직 내 앨범엔 수연이와 소영이 혜자와 찍은 사진이 있다.

어느 늦여름날 소영이와 내가 수연이네 집에 갔던 적이 있었다.
대문집 옆에 있는 문간방이었다. 들어가면 주방을 지나서 바로 방으로 올라가는 구조였다.
우리가 오자 방에 계신 수연이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이 주방으로 나가셨다.
수연이 엄마도 수연이처럼 쌀쌀맞고 도도하신 느낌이 들었다. 

중3씩이나 되었지만 당시의 난 너무 이러저러한 생각을 못했다.
그저 수연이네 집에 와서 소영이랑 수연이랑 뭘 해야 하나.. 싶었다.
한 30분쯤 지났으려나? 벌컥 웃음기도 없이 수연이 어머니는 우리 먹으라고 점심밥상을 들여보내주셨다.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밥을 먹으라고 주시니 우리는 그제서야 고픈 배를 깨닫고 숟가락을 들었는데.. 밥이 너무너무 맛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방금 지은 하얀 쌀밥과 여러 가지 찬이 있었는데 사실 다른 건 생각이 안 나고 가운데 놓여 있던 걸쭉한 고추장찌개가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이 난다.
그렇게 맛있는 고추장찌개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걸쭉한 찌개를 밥에 묻혀서 선풍기바람을 쐬며 후후 불면서 먹었다.
우리가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수연이 어머니는 문을 닫아 놓았어도 어디선가 보고 계셨을까? 먹으면서 더울까 봐 어디서 훠이훠이 시원한 바람을 우리 쪽으로 몰아주고 계셨을까?

뜨거운 밥과 찌개를 먹으면서 더웠다는 기억이 없는 걸 보니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저 주시는 밥 뚝딱 한 그릇 먹고 잘 먹었다고 인사하고.. 그 이외의 것들은 느끼지도 읽지도 못했는데..
그때의 고추장찌개는, 수연이는, 수연이어머니는...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답고 감사한 존재들이었음을 이제는 잘 알겠다.
이제서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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