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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눅진한 브라우니 Jun 03. 2024

인비저블 라이프

영화 이야기


인비저블라이프를 봤다.
브라질 영화다.
이국적인 풍경과 생활상이 화면을 가득 채우기에 어떤 내용인지 얘기해도 영화를 찾아 보고픈 마음에 초를 치진 않을 것이다.

자매가 있다.
솔메이트 같은 자매다.
언니가 그리스 외항선원과 불같은 사랑에 빠져서 그리스로 몰래 떠난다.
동생은 그 사이에 집안끼리 잘 아는 남자와 결혼을 한다.
유부남에 아이도 많은 남 자였다는 걸 알고 임신한 채로 브라질로 돌아온 언니는 집으로 다시 가지만 아버지는 집안망신이라고 쫓아낸다.
동생의 행방을 묻자,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유럽으로 떠났다고 거짓말을 한다.
티끌만큼의 연민도 없었을까? 한번 떠나면 다시 발도 못 붙이게 할 만큼 집안의 명예가 중요했을까?
1950년대는 브라질이건 우리나라건, 그 어디건.. 여자의 삶이 지금보다 좋은 게 있긴 있었을까?
정략결혼을 해서 대를 잇고 남편그늘에서 꿈도 접고 그 안에서 안온함을 누리면 그게 모두한테 좋은 거야..라고 말하는 삶.
동생은 그 테두리 안에서 살면서도 꿈을 이루기 위해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예술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시험에 합격한다.
언니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리워하지만 행방을 알 수 없고 그저 먼 나라에 있겠거니.. 하면서 그리움과 염려를 품을 뿐...
언니도 동생이 유럽에서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줄 안다.  
바로 지척에 있는 줄은 까맣게 모르고 편지를 써서 부칠뿐이다. 그 편지마저 중간에서 아버지와 남편이 빼돌린다.
훗날 언니가 사실은 브라질에  있었다는 걸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된 동생은 이성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꿈인 피아노를 불에 태워버리고 정신적으로 무너진다.

영화 속 자매처럼 현실 속 자매가 서로를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문득 해봤다.
영화 속 동생처럼 영혼이 파괴될 만큼.
그만큼 큰 감정이 있을까?
물론 여기선 아버지의 그 배신감이 너무나 커서.. 그 이유가 한몫을 했을 테지만.

두 살 터울의 동생과 한방을 쓰며 자랐다.
어린 날을 기억할 수 있는  시기부터 내내.. 같이 지냈던 그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 같다.
기쁨은 잘 모르겠는데 슬픔이나 괴로움은 나에게로 전가되기도 했다.
실연으로 힘들었는지 어느 새벽 술에 취해 울며 들어와서 잠든 동생의 슬픔에 가슴이 저렸다.
더 어렸을 때, 아픈 고백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을 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우리 땐 국민학교가 오전 오후반이 있었다. 학생수는 많고 교실이 모자라니 일주일에 한 번은 가정학습일이라고 쉬기도 했다.
내가 쉬는 날이었을 때 동생이 늘 입던 빨간 재킷만 입고 갔다가 추워서 오들오들 떨면서 다시 집으로 온 적 있었다. 서릿발 같은 눈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빨간 손을 호호 불며 오던 동생의 커다란 눈에는 눈물이 날락 말락 했다.
두꺼운 옷을 입게 해서 보내며 가슴이 무너지듯 슬피 울었다.
동생이 어렸을 때 몸도 약하고 몸이 약한 만큼 마음도 좀 약했다.
언니라고 내가 싫은 소리를 해도 그냥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누가 보면 팥쥐언니와 콩쥐동생인 줄 알았을 만큼.
나이가 점점 들어가며 각자도생 하느라 서로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끼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결혼하고..
그렇게 각자의 삶을 산다.
떨어져 사니 그만큼 멀어지기도 하고.
나이 먹으면 자매만큼 좋은 친구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싸우거나 골이 지면 미움과 원망이 애정만 한 크기로 자리 잡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하하 거리고.
그렇게 나이 들어가는 거겠지.

존재만으로도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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