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우울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고단한 한 해를 보내고 난 후 어제 같은 내일일 뿐이지만 뭔가 나쁜 일들이 멈출 것만 같아서, 1월 1일이 되면 달라지리라 믿었다.
믿음 아래에는 소망이 있었고, 소망 아래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나쁜 일들이 겹겹이 닥치는지 정성 들여 만든 크로와상반죽처럼 촘촘하게 나를 아프게 했다.
아빠는 "일천구백구십일 년 할아버지는 10층에 입원해 있고 너는 8층에 입원해 있는데 참 고통스럽더라. 너도 지금 얼마나 고통스럽겠냐. 그럴 땐 납작 엎드려야 돼. 죽은 듯이 엎드려 있어."라고 말했다.
"아빠. 지나가? 다 지나갈 수 있을까?" 절박하게 묻는 나에게 아빠는
"지나가지. 다 지나가는데. 엎드려서 버텨야지." 화답했다.
거대하게 몰려오는 태풍 속에서 그저 날아가지 않기만을 바라듯 그렇게 한해를 버텼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해결책을 생각하는 습성 탓에 꿋꿋하게 버텨나갔다고 생각했다.
새해에는 뭔가 달라질 것이라고 아니 달라지길 간절히 소망했다.
잔뜩 힘을 줬던 온몸이 풀리며 노곤해져 주저앉듯이 그렇게 우울은 내가 알아볼 만큼 보이기 시작했다.
잘해왔던 것도 잘할 수 없을 것만 같았고, 하고 싶으면서도 두려웠다.
미래가 두려워지고 주변이 캄캄해지고 나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무조건적인 공감이 필요한 것 같은데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우울은 사람의 타고난 모양에 따라 맞춤옷을 입은 듯 변주를 준다.
나는 내가 우울하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먼저 기억력이 소실되었다. 내가 가진 가장 큰 무기가 기억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무기에 녹이 슬고 이가 빠진 것 같았다.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자주 머리가 아프고 자주 피로해졌다.
생각만큼 그리고 의지만큼 뭔가가 잘 돌아가지 않는 느릿함은 어색함을 넘어 두려움을 주었다.
해결책을 생각하려 애쓰지만 안일하기까지 했던 낙관성은 우울이 주는 부정성에 밀려났기에 그리 명쾌한 수를 찾아내지 못한 채 마무리가 되곤 했다.
신체적인 문제가 없다는 확증이 있어야만 정신적인 문제라고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험하는 증상에 대한 신체적 원인을 배제해 나가는 검증을 시작했다.
이게 내가 타고난 모양새였다.
분석하고 이해하고 견디고 해결하려는 것.
내가 가진 모양새로 확인해 봤지만 여전히 나아지지 않자 먼저 불안이 밀려왔다.
평소에 거뜬히 해내던 일상의 사소한 것들 앞에서 나는 쉽게 불안해졌다.
별것도 아닌 일에 숨이 가빠져 숨이 멈출 것만 같은 순간이 찾아오기도 했다.
자주 두근거리고 그만큼 자주 물러났다.
물러나고 피하는 만큼 좌절감이 따라붙었다.
내 의지로 원하는 만큼 안 되는 감정상태.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고 티를 내는 신체상태.
결국 "이제 됐어? 이제 내가 보여?"라고 하듯 우울을 알아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