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사냥개들 2]
드라마와 영화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어릴 때는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아빠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삼촌이 내가 열 살 때 결혼을 했을 때였나? 첫 집들이에 초대받아 가족들이 함께 갔었다. 신혼집에는 요리책과 가정백과 따위가 혼수처럼 꽂혀있었는데 열 살짜리 애가 책장밑에 앉아 요리책을 꺼내 들고 읽기만 하다가 집에 왔다.
여자애가 피아노도 좀 배워야 한다며 건너 건너 아는 분에게 수업료를 깎아 보내줬는데
나는 대기실에 꽂혀있는 어린이 삼국지를 읽는 것이 제일 좋았다.
연습실이 비어 차례가 되면 책을 놓고 들어가야 했는데 어린아이가 몰입을 깨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몰래 읽던 책을 들고 들어가 건반을 치는 대신 책을 읽다가 걸려 손등을 맞았다.
집에서도 어딘가에 데려가도 읽을 것만 있으면 정신없는 딸을 엄마가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없는 살림에 생활비를 쪼개 몇십 개월 할부를 부어 위인전집과 전래동화집을 사줬다.
새 학년 신학기가 되면 국민학교에서는 학급문고에 꽂을 책을 한 권씩 집에서 가져오라고 했다.
몇 번씩 읽고 또 읽었던 책이었지만 그중 한 권을 내고 나면 다시는 집에 가져오지 못하는 것을 알았다.
엄청 고심해서 한 권을 골라냈던 기억이 아직도 가끔 난다.
은혜 갚은 까치.
그 책이 그렇게 두고두고 아까워서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고3 때 야자시간 맨 뒷자리에서 [잃어버린 너]였던가? 하필 순시를 돌던 교장선생님께 걸려 혼났던 기억도 난다. 대학 때까진 많은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소설을 쓰겠다고 꿈꿨던 선배언니는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다 읽었다는 말에 나를 특별히 예뻐하여 데리고 다니기도 했다.
이십 대 끝자락에 서울에 오면서부터였을까?
오래된 컴퓨터로 보고 싶은 드라마나 영화를 다운로드하여 보면서 외로움을 달랬던 것 같다.
사는 게 몹시 힘들고 괴로울 때는 철 지난 예능을 돌려보며 깔깔 웃어야 버텨지기도 했다.
눈으로 보고 소리로 듣는 것이 익숙해서였을까?
전공책과 자격증 책만 보기도 벅차 소설책 읽는 것이 부담스러워서였을까?
대학 때 마당극을 접하며 연기라는 것을 좋아해서였을까?
드라마와 영화가 그렇게 좋다.
마음이 힘들수록 더 몰두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이 힘들수록 더 영향을 섬세하게 받는 것 같다.
얼마 전 액션영화로 유명한 감독의 신작이 개봉했다는 소식에 오랜만에 극장에 갔다.
OTT에 길들여져 영화관을 가본 지 오래였지만 이런 건 극장에서 봐줘야 한다며 큰마음을 먹었다.
아마 불안과 우울이 커진 탓에 갑갑한 마음을 달래려 뭐라도 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원래 공포영화는 아예 보지 않는 편이고, 지나치게 잔인한 액션은 여운이 남는 편이라 선호하지는 않았었다. 그래도 스토리와 배우들의 연기를 집중해서 보는 편이라 어지간한 건 볼 수 있는 편이었는데.
타격감이 큰 액션장면과 가끔 나오는 긴장감을 조성하는 장면들에 큰 영향을 받았다.
미칠 것 같아서 온몸을 떨거나 숨을 잘 못 쉴 것 같은 증상도 나타났다.
눈만 가리는 것으로는 택도 없는 감정이어서 같이 보는 반려인의 팔을 붙들고 오두방정을 떠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 자리가 보였던 다른 관람객에게는 얼마나 민폐였을까 생각하니 수치심이 몰려들었다.
이제껏 영화를 보면서 이런 적은 없었다. 내가 나 자신이 아닌 것 같았다.
나중에 액션은 생각보다 뻔하고 신파만 남았다는 영화평들이 많았었기에,
내가 지금 얼마나 약해있는지가 체감되는 경험이었다.
우울할 때 불안할 때 잔인하고 스산한 자극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좋지 않은 것을 보지 않는 것이 좋다.
한편으로는 얼마 전 개봉한 [사냥개들 시즌2]를 보다가 자꾸 눈물이 나서 놀랐다.
시즌1은 강렬한 복싱액션이 백미지만 정당한 복싱경기가 아닌 선과 악이 대립하는 잔인한 액션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조금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스토리나 연기가 너무 좋았어서 시즌2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확 들었다가도 '보면 안 돼. 지난번 영화도 힘들었는데. 나에게 나쁜 건 주지 말자' 란 다짐이 번갈아 대립을 하던 시간이 흐르고 결국.. "액션장면은 넘기고 눈을 감자. 스토리만 보면 돼"가 승리를 거뒀다.
건우와 우진이의 한없이 순수한 선한 마음과, 그 둘을 진심으로 돕는 선한 형들과 엄마의 연기에 자꾸만 울컥거렸다. 고난을 버텨내고 악과 타협하지 않고 진심으로 돕고 이해하는 어쩌면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판타지 같은 선함이 마음을 자꾸자꾸 때리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 아닐까?
눈과 귀는 마음이 가는 곳을 쫒기 마련이다.
이겨나갈 수 있다는 희망, 같이 해줄게라는 지지, 무조건적으로 믿어주는 수용과 공감.
자꾸 도움을 받는 스토리에 울컥하는 걸 보니 혼자서는 벅차다는 신호가 아닐까?
마음을 한 번에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만 더듬더듬 마음이 주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으려 노력하면 희망이 보인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좋은 것을 보여주어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