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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mp Jul 11. 2022

[연극] 관객모독

대학로 아티스탄홀

몇 년 전 작가 페터 한트케가 노벨문학상을 탔을 무렵 한창 이 작가의 책들이 나오길래 그나마 얇은 이 책을 집어들었었다.

밀로셰비치에 대한 옹호로 인해 문학적 순수성을 더욱 더 많이 독자들에게 요구하던 작가. 이 책은 뭐 골때리네 싶은 책이었다.

쉽지 않은 소리를 변증법적으로 이랬잖아 아니잖아 이게 맞잖아 이런 식으로 계속 놀리듯 반복한다.

뭔가 생각이 많은 듯한 특유의 잡소리 나열이 이어지는데 그런 내용들을 축자적으로 읽고 있는 걸 깨달을 때면 사람이 홀로 중얼거리는 게 이런걸 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근데 거기에 철학적 사유와 연관되는 편린들을 떠올리게 하는 게 있다. 그런면이 연극에선 지겹게 나타나 버려서 좀 아니 가장 아쉬웠다.

원작은 언어의 해체라던가 재배열이라던가 그런쪽으로도 관심이 많은가 싶기도 하고 감성적이 아닌 작품이라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읽고 있는 나마저 지적인 독자인 양 가장하고 싶게도 만든다. 그래서 이걸 실제 극으로 보면 더 재미있게 와닿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이게 실제 연극으로 상연되었었는지에 대한 정보는 없었는데 얼마전 우연히 이 극이 오랜만에 다시 하게 되었다는 정보를 얻어서 마침 할인기간이기도 해 모처럼 연극을 보게됐다.

연극이 보기 힘든 이유 중 가장 큰 건 장소의 문제다. 대학로가 우선 멀고 가는 길도 힘겹지만 그건 둘째다. 극장들이 너무 협소하고 좌석들이 허술해서 갑갑하면서 숨이 막힌다. 연극판이 얼마나 열악한지 새삼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꽤나 많은 극장들이 대학로에 밀집해 있는데 외부는 괜찮아 보여도 내부는 참 어쩌란 건가 싶게 하나같이 한심한 모양새다. 관객으로서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차라리 그쪽에 아예 연극기지 같은 걸 마련해서 좀 더 쾌적한 극장 환경을 일괄적으로 만들어주면 안되나. 그럼 정말 더욱 자주 연극 볼텐데. 연극을 볼때면 젊은 배우들 대부분이 참 재주가 많다고 느낀다. 열악한 환경에 비해 그들의 재주가 아까워 보였다. 그래도 열정과 애정의 힘으로 저렇게 버틸텐데 싶게 열심히 하니까. 환경이 그렇고 돈이 되지도 않으니 연극의 질 자체도 떨어지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본다. 세상엔 힘겨운 상황에서도 믿을수 없게 존재감을 발하는 것들이 있는데 연극도 그렇게 버텨나가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뭐 연극계 전혀 모르고 가끔 보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게 감사한 사람의 감상일 뿐이다.

원작의 대사 자체가 어떤 서사도 없고 소쉬르의 언어학의 영향을 얘기하기 때문에 문학적으로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배우마다의 대사 분량이 엄청난데 행간으로 느껴지기에도 느리고 여유있는 톤이 아니라서 읽으면서 랩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런 걸 어떻게 공연으로 올리고 관객에게 이해시키려는건지 상당히 궁금했다.

문학과 연극이 다른 부분이 드러난다고 할까. 나름 많은 극적인 요소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유치하지만 어쨋든 재미를 주려고 넣은 대사들도 많았고. 역할을 부여하고 나름의 서사를 넣은 부분들도 인상적이었다. 꽤 긴 시간이었는데 그걸 맨땅에서부터 끌어나가는 느낌을 주고 있어서 이 극이 올라오기까지 많은 노고가 있었겠구나 싶은게 느껴진다.

처음부터 도발적인데 이해시키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관객이 이해를 못한다고 대놓고 모독을 하는 부분까지 정신이 없다. 이후부터 행위는 서사를 보여주고 있는데 대사는 원작의 잡소리를 계속 반복하는 극을 보여주고 있어서 나름 사람을 지루하지 않게는 한다. 마지막에 어떻게든 관객들을 모독하겠다는 의지로 욕설을 돌아가며 계속해서 하고 말로는 부족한지 몸짓으로도 반복하는데 거기서 불쾌함을 얻어 가는 것이 연극을 제대로 본 것일까 싶었다. 사실 그렇게 불쾌하지 않았다. 막판에 대야로 물까지 뿌리는데 그 역시 그렇게 불쾌하지 않다. 정보가 전혀 없었기에 앞쪽에 앉았다가 깜짝 놀라기는 했다. 옷 다 젖는줄 알고 걱정했는데 그렇게 많은 양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보다 그 극장의 미친듯한 에어컨 기능에 너무 추워 분노를 축적할 새도 없었다. 결론적으로 그렇게 모독감을 느끼지 못했다. 물론 모독감을 일부러 느끼려고 간 것은 아니다. 그런 건 사실 조금도 어디서도 누구에게서도 느끼고 싶지 않다. 받은 것보다 더한 분노로 인해 인류애를 땅끝으로 보내버리고 나중에서야 다시 일부를 되찾기까지 시간이나 걸리기 때문이다.

문학이 아닌 연극이었고 이 작품이 셰익스피어같은 고전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렇게 최근의 것도 아닌데 시대성을 그렇게 안일하게 처리해야 했나 좀 아쉬웠다. 그냥 현재의 이야기를 해도 되지 않았을까. 연극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모독감이 그저 의미없는 욕설뿐은 아니지 않나 싶은. 지금 시대에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모독, 모욕감 그런 부분에서 좀 더  심리적으로 다가왔으면 하는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위에 말했듯이 원작의 문학적 위상이 극으로서 살아있지도 않기 때문에 그런 변화를 준다고 해서 원작과 멀어진다는 염려를 하게 되는 상황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이미 원작과 같은 극은 아니었다. 좀 더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못한 부분이 컸다. 과연 배우들은 자신들이 하는 대사들을 모두 체화해서 그렇게나 반복하고 있었던 것인가. 욕을 듣는다고 바로 모욕감이 든다면 그건 어느 정도 분노조절장애에 가깝다. 사람은 대개 자기에게 직접적으로 닿는 욕이 아니라면 분노조절을 잘 하게 되어있다. 그게 나와 직접적으로 상관이 있거나 적어도 내가 쌓아온 상식에 대해 나를 조롱하려는 기분은 들어야 하는데 그런 와닿음은 부족했다. 극으로 표현하여 옮기기에 쉽지 않은 부분이긴 할 것이다. 원작은 문학으로서 이미 이런 형식이라는 것 자체가 독자에게 모독적으로 느껴지게 하고 있으니까.

여전히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다. 연극 한 편을 보았을 뿐인데도 이상하게 연극은 보고 나면 배우들에게 정이 들어버린 느낌을 받는다. 처음 시작할 때 같은 선상에서 시작하는 느낌이기 때문에 관객과 배우라는 거리까지 끌어올리기가 얼마나 힘겨운 일일지 직접 보면서 느낄수가 있어서 결국 그 지점으로 끌어올리는 배우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싶은 기분이다. 여튼 우리나라 연극판은 좀 더 인격적이었으면 좋겠다. 배우도 관객도 다 존중받았으면 좋겠다. 연예인들이 벌어들이는 그 이상한 수익구조는 왜 이런쪽으로는 내려오지 않는 걸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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