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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흥준 May 13. 2021

영화 이야기 1_플로리다 프로젝트

무지개를 찾으러 가자, 우리

힘차게 뛰어가며 친구를 부르는 한 사내아이, 그리고 그 외침에 장난스레 ‘왜’를 계속 외치며 파스텔 톤의 벽에 기대어 있는 두 아이. 뛰어가던 아이는 퓨처 모텔에 새 차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전하고, 세 친구는 퓨처 랜드 모텔에 달려가 새 차에 마음껏 침을 뱉으며 논다. 영화에선 가슴을 들썩거리는 신나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 영화의 포스터엔 “2018년 우리를 행복하게 할 가장 사랑스러운 걸작”,“디즈니월드보다 신나는 무지개 어드벤처”라고 적혀있다. 이것만 보기에는 철없는 세 아이의 요란 법석한 모험 이야기와 그 속의 우정과 사랑이 담겨 있는 흔한 서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흔한 서사를 가진 영화가 아니다. 전혀 유쾌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오히려 전혀 슬프지 않은데 눈물이 나오게 만들고, 찝찝하고, 이상하고, 고민을 만드는 영화이다.

 

 이상한 영화는 ‘무니’라는 어린 여자 아이가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무니는 플로리다  올랜드의 매직캐슬 모텔에서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는 6살짜리 꼬마 아이다. 무니의 엄마 핼리는 ‘어른답지못하고 철없고, 경제적으로 돈을 벌지 못한다. 매직캐슬 모텔과 퓨처 랜드 모텔에는 핼리와 무니 말고도 많은 소위 우리 사회의 ‘정상성담론에서 비정상화 되는 사람들이 살아간다. 마약에 빠진 엄마 대신 할머니와 살아가는 아이,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아가는 아이가  모텔촌에 살아간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모여 철없고, 순수하게 놀이를 해가며 살아간다. 그런데  아이들의 얼굴, 전혀 슬픔이 묻어 나오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불행한 환경과 상관없이, 당차고 활기차게  동네방네를 떠돌아다니며 사고를 친다. 쓰러진 나무를 바라보며 쓰러진 채로도 자라고 있는  나무가 좋다는 어른스러운 말도  번씩 한다. 하지만 슬픔이 묻어 나오지 않는 그들의 얼굴은 오히려 훔친 물건을 팔아 끼니를 때우고, 성매매를 해서  돈으로 집세를 내는 그들의 끝없이 비참하고 참혹한 삶의 슬픔을  크게 드러내는 듯하다. 


이러한 감독의 스타일은 작품 전체에서 나타난다. 매직캐슬, 퓨처 랜드란 희망적인 모텔 이름과 모순되는  속의 삶들, 파스텔톤의 동화 같은 분위기의 영화 배경, 아이들의 순수한 놀이에 숨겨져 있는 자본과 세상의 속물적이고 가식적인 모습들. 미국의 히든 홈리스 문제, 표준화된 양육관, 복지제도의 구멍  수많은 사회 문제가 영화 속에 담겨 있지만, 감독은 이것들을 철저하게 고발하지 않고, 아이들의 순수성으로 감추려는 듯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오히려 아이들의 순수성과, 영화의 마지막  없이 밝았던 무니가 젠시 앞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순간 처참히 파괴된 것이다. 우리는 무니의 눈물을 통해, 무니의 밝음 속에 숨어있던 어린아이가 겪어야 했던 비통함을   있었다.

 

그렇다면, 이 지나치게 동화적이고, 어쩌면 끔찍하게 현실적인 이 영화의 결말은 무엇인가. 나는 이 영화의 결말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마지막, 무니는 아동국 직원들의 손을 뿌리치고 어디론가 도망간다. 여기서 우리는 무니가 행여 사고를 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을 하지만 무니가 다다른 곳은 자신의 마음을 나눴던 친구 젠시의 집. 젠시의 앞에서 무니는 참았던 눈물을 터트린다. 젠시는 자신 앞에서 힘들어하는 친구의 손을 자신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힘껏 잡는다. 그리고 보이는 그들의 뒷모습, 그들이 뛰어 당도한 곳은 꿈과 희망의 디즈니랜드. 지나치게 동화적이고 어쩌면 끔찍하게 현실적이고 속물적인 디즈니랜드였다. 어린 젠시의 눈에는 그곳에 간다면 꿈과 희망이 넘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 곳에 꿈과 희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본과 욕망으로 점철된 거대한 성만 존재할 뿐이다. 결국 젠시와 무니가 뛰어간 곳은 일시적인 도피처만 되어 줄 뿐, 그 어떠한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끝까지 현실적인 결말 속에서 감독은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것일까.

 

‘손을 잡는 것’. 젠시는 힘든 친구의 손을 놓아버리지 않고 꾹 잡는다. 힘든 친구가 불편하고 경쟁에만 집중된 어른의 모습과 달리, 손을 잡음으로써 아픔을 나누고 공유한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손을 잡는 것’부터 시작이다.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그 삶 속의 아픔을 공감하며 애정을 나누는 것, 그것이 바로 훔친 향수를 팔아 끼니를 때우고, 성매매를 하여 번 돈으로 집세를 내는 그 고통스러운 현실을 바꿔 나갈 유일한 방안이라고 감독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가 어려운 이웃의 손을 찾아 잡을 때, 어쩌면 우리를 행복하게 할 가장 사랑스러운 무지개 어드벤처가 펼쳐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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