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주말

by 김똥남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사무실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나와 천천히 집으로 걸었다. 수요일부터 쏟아질거라고 하던 장마는 금요일 오후까지도 비소식은 없고 기분나쁘게 습한 공기만 내 주위를 에워쌌다. 장마 전야의 꿉꿉함에 압도당해 사무실을 나선 지 30분만에 녹초가 된 채로 집에 도착했고, 일주일간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해치우고 헬스장에서 불금을 보내려던 야심찬 각오는 까맣게 잊었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장마에 꿉꿉함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집에 오자마자 에어컨 뚜껑을 열었다. 10분이면 될 필터청소를 한 달 째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끝냈다. 남다른 게으름으로 벌써 세달 째 미뤄왔던 겨울 외투도 마지막 할인 찬스로 전부 세탁소에 맡겼다. 마지막으로 일주일 동안 고생한 나를 위해 피자를 주문했고 배달을 기다리는 30분 동안 요가매트를 거실에 깔고 잠시 운동을 했다. 온전히 나만을 위한 주말이 그제서야 시작됐다.


지난 주 금요일, 딱 이때쯤, 서울에 같이 올라왔던 고등학교 친구들과 거의 반년만의 만남이 있었다. 그 단체 카톡방에는 열댓명이 있지만, 늘 이런저런 시덥잖은 잡담을 늘어놓고 자주 만나던 친구들은 대여섯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리저리 자주 만나지 못했던, 군대나 교환학생 따위의, 2~3년 정도를 제외하면 아무리 못해도 분기별로 1번 씩은 보던 친구들이었다. 갓 스무살, 서울에서 혼자 살기 시작해 어찌할 지 아무 것도 모르던 우리는 어느새 10년 째 타향살이에 익숙해졌고, 어리숙했던 대학생들은 어느새 어엿한 의사선생님이, 회사원이 돼있었다.


평소엔 얘기는 잘 하지 않아도 모임에는 늘 꾸준히 나오던 친구가 갑자기 연락이 없었다. 모인 친구들끼리 음식을 기다리며 웃고 떠들다, 갑자기 왜 안나왔을까 생각이 들어 장난스레 친구 하나가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뇌출혈이었다. 졸업 시험을 한 달 앞둔 작년 11월,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진지 올 6월까지 반년을 병상에서 의식도 찾지 못한 채로 누워있다고 했다. 모두 말문이 턱 막혔다. 학군이 좋지 않은 지역에서도 최고 대학에 떡하니 입학할 정도로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도 곧잘했었고, 마음씀씀이도 흠잡을 데 없어 싫어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친구였다. 전화는 친구의 어머님께서 받았고, 담담한 목소리로 근황을 전해주셨다.


술 한 방울 없는 식사자리에서 카페로 장소를 옮겼다. 갑작스런 친구의 병세에 대한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대화 주제는 건강으로 옮겨갔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 고혈압, 체중 문제로 이야기가 계속 됐다. 친구에 대해 얘기하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주어를 뺀 채로 그 얘기로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기약없는 다음에 만나자는 약속을 뒤로한 채, 각자의 집으로 돌아섰다.


4캔 만원, 편의점 수입맥주와 피자로 내 온전한 주말을 축하하려던 계획에서 맥주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피자 두어조각과 같이 딸려온 치즈 오븐 파스타로 적당히 배를 채우고 다시 움직였다. 약간은 거북함이 느껴지는 포만감을 줄이려 세탁이 막 끝난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탁탁 털어 널었고 청소기를 돌려 털어도 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러그의 머리카락들을 빨아들였다. 그리고 에코백에 갈아입을 옷, 화장품을 주섬주섬 챙겨넣고 야밤의 헬스장으로 향했다. 두어시간이 지나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제야 비가 한두방울씩 내리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한두방울씩 머리를 두드렸지만 오히려 머릿속은 더 상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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