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by 김똥남

너랑 조잘조잘 얘기하며 데이트할 때면, 항상 '만약에'로 모든 대화를 시작했었다. 난 그게 참 좋았다. 네 질문을 듣고나서 상상하는 내 머릿속엔 항상 너와의 미래가 있었고, 네 머릿속에도 나와의 미래가 있었을테니까. 내 일방적인 대시로 만들어낸 관계였고, 관계가 안정되기까지 마음 졸였던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네 머릿속에 내가 들어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항상 행복했다. 그 질문들은 '만약에 로또 당첨이 된다면' 같은 정말 시덥잖은 것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아니 이제는 우리가 아닌 너와 내가, 만약에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간다면 어떨지, 만약에 결혼해서 첫차를 산다면 어떤게 좋을까처럼 미래를 생각했던 것도 얘기했었다. 애기를 생각하면 당연히 싼타페를 사야한다던 나와, 멋진 차를 원해서 스팅어가 사고싶다던 너는 투닥투닥 말싸움도 하기도 했었다. 둘만의 논쟁으로 끝나지 않아 네 친구에게 누가 맞는건지 문자로 물어보기까지 했고, 내 편을 들어준 네 친구 때문에 네가 시무룩했던 것도 기억난다. 너와의 수많은 대화 중, 유독 그 대화는 너무 귀여웠던 기억으로 남아 아직도 길거리의 현대, 기아차 전시매장을 지나갈때면 물끄러미 그 차들을 쳐다보다 지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것들도 얘기했었다. 그땐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장난스레 얘기했던, '만약에 너와 내가 헤어진다면'까지도.


그 날은 딱 작년 이맘때, 더운 날이었다. 너와 난 시원한 만화방에서 보드게임과 만화책, 그리고 커피와 함께하다 나오는 길이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서로의 집에서 밤을 함께 보내는 것이 그때 너와 나의 암묵적인 룰이었고, 그 날은 내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너와 난 만약 헤어지게된다면 그 후 삶이 어떻게 변할 지에 대해 서로의 일상을 상상해서 말했었다. 그때 너와 나는 사소한 것들로 매주 한 번 이상씩은 충돌을 하던, 서로가 너무 힘들던 시기였다. 네가 하필이면 그 주제를 꺼냈던게 사실은 그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대화들이, 특히 나 이후의 네 삶이 어떨지 얘기했던 것이, 정확히는 기억이 나진 않는다. 하지만 너 이후의 내 삶이 어떨지에 대해서 네가 상상해서 말해줬던건 너와 헤어진 그날 이후로부터 지금까지도 계속 머릿속에 남아 맴돌고 있다. 항상 함께 했었던 주말은 나 혼자가 될거고, 가끔 친구를 만나 내가 좋아하는 커피나 마시며 시덥잖은 얘기를 떠들다 집으로 혼자 들어올 수도 있을거라고. 또, 내가 늘 원했던, 아침잠이 많은 너와 함께하는 주말 오전의 한산한 영화관의 조조영화를 나 혼자 보고 나올수도 있고, 아니면 헬스장에서 아침 운동을 끝낸 후 오늘 했던 것처럼 만화방에 가서 한가로이 만화책을 읽으며 간단한걸 시켜먹으며 주말을 한가로이 보낼 수도 있을거라고도. 그리고 아직까지 머릿속에 낙인처럼 남아있는 가장 강렬했던 마지막 그 부분, 헤어진 후 처음 몇주간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겠지만 곧 다시 외로워질거고 네 생각이 날거라고 했던 것까지 말이다.


그 얘기를 나눈 후에도 우린 어김없이 매주 한 번 이상씩은 사소한 것으로 싸웠고, 다시 화해하길 반복했었다. 그러다 몇달 후, 난 결국 네게서 도망쳤다. 항상 좋기만 하던 관계가 언제부터 그렇게 삐걱거렸는지, 왜 결국 우리는 매번 똑같은 원인으로 싸움에도 불구하고 갈등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해 결국 이별에 닿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조금 더 빨리 결혼을 원했던 네게 나 혼자 느끼고 있던 자격지심때문일지도 모른다.


너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항상 갖고 있었고, 너보다 한 살 어린 남자친구도 그 원인 중 하나였다. 네가 입버릇처럼 칭얼거리던 단골 멘트는 '넌 나보다 어리잖아.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도, 남자 나이와 여자 나이는 달라. 넌 이제 한창일 나이고, 난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나이야.'였다. 그럴 때마다, 내가 주위 또래보다 저축도 많이 해놨으며 안정적인 직장을 가졌으니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이유로 '내가' 결혼을 미룰 일은 없다며 너를 달래는 일상들은, 아주 유치하지만, 내 가치를 스스로 재확인하는 시간들로 싫지만은 않은 시간들이었다. 난 매번 똑같은 말이지만 뉘앙스를 달리하며 결혼을 보채는 널 달래는데 이골이 나있었고, 그 날은 너와 나의 현재 상황을 말해주며 널 달래려고 했다. 아니, 사실은 너와 내가 준비해놓은 것들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보여주며 조금 더 노력해야한다고, 내가 결정권을 쥐고 있는 양, 널 채찍질하려던 아주 저급한 심보였다.


하지만 결혼이란 것은 당사자들의 결합 뿐만 아니라, 새로운 두 가족의 결합이라고 했던가? 막상 열고보니 내세울 것이라고는 몸담고 있는 회사의 이름뿐인 사회 초년생의 주머니 상황은 너를 끔찍히도 아끼시며 여유있는 부모님이 든든하게 버티고 계시는 네 주머니 상황과는 많이 달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 부모님이 나를 끔찍히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며, 내게도 끝없는 사랑을 베풀지 않았다는 것도 절대 아니다. 어쨌든, 네게 휘둘렀던 미숙했던 내 채찍은 바로 내 얼굴로 돌아왔고 얼굴이 화끈해졌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헛똑똑이였다. 항상 솔직히 부족함을 인정한 너와 달리 난 내 부족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그리 잘나지도 않은 대학 졸업장 한 장과 명함 한 장 따위로 부족함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네 인정이 필요했다. 우리가 많이 싸우기 시작했던건 바로 그 때부터였다. 헤어지기 전까지, 너와 난 말 그대로 '항상' 싸웠다. 10월, 너와의 1주년 기념일, 즐겁기만 했어야할 여행날 전에도 싸웠고, 애써 상처를 봉합하고 떠난 여행에서 돌아오면서도 못내 서운해 또 싸웠다. 그리고 또 울며 붙잡았다. 너와 나의 대화에는 더이상 '만약에'는 없었고, 서로에 대해 매일 생기는 서운함, 말싸움, 그리고 해결이 되지 않는 갈등만이 끊임 없었다. 12월, 너와 난 잡고 있던 서로의 손을 놨다.


얼마 전, 작년 그 날 이후로 한 번도 가지 않았던 만화방엘 다녀왔다. 에어컨 바람을 쐬며 잘 쉬다 나오는 길, 네가 말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네가 만화방에서 나오며 '만약에'하고 말했던대로, 난 너와 헤어진 후 정말로 주말이 되면 헬스장엘 가거나 조조영화를 보며 지낸다. 그리고 가끔 친구들과 커피도 마시며 이런저런 시덥잖은 얘기로 하루를 채운다. 요즘은 가끔 소개팅을 할 때도 있다. 아, 최근엔 친구들과 밴드도 시작해서 네가 항상 내가 쳐주길 원했던 피아노도 열심히 치고 있다. 우리가 항상 했던 '만약에'처럼, 만약 네게 내 자격지심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친구 커플들과 더블 데이트를 할 때면 으레 서로에게 하는 소리지만, 정말 잘 어울린다던 우리의 관계가 조금 더 지속될 수 있었을까. 네가 계속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가자고 했을 때, 만약 내가 이런저런 핑계대지 않고 정말 인사를 드렸다면 어땠을까? 만약 우리가 정말로 결혼까지 할 수 있었다면, 우린 싼타페와 스팅어 중, 어떤 차를 골랐을까.


내 일상은 늘 그랬듯, 평온하면서도 나 혼자 바쁘게 잘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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