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풀어놓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가져야 한다. 피곤하면 아무리 맛있는 걸 먹어도 감흥이 떨어지고, 술 한잔에도 금방 감각이 마비된다. 그 지역의 음식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다는 것은 내겐 여행의 의미 중, 절반 이상을 날려버리게 되는 일이다. 아무리 기차에 타고 쭉 앉아서 오더라도, 아무리 조금만 운전을 하더라도 새로운 곳에서 평소 하지 않던 행동들을 한다는 것은 피곤하기 마련이다. 체력이 조금이라도 충전됐다면 택시를 타고 나간다.
강릉이 아무리 먹을 것이 많다지만, 바닷가 근처로 갔으면 해산물은 먹는게 그 동네에 대한 나만의 예의다. 다른 지역에서 가져온 해산물이나 양식 어종들이 보편적일지라도 부족한 부분은 겨울 바다의 분위기나 강릉 특유의 관광지 분위기가 보충해준다. 바닷가 근처의 비싸고 호객행위가 많은 횟집도 관광지의 분위기가 있어서 좋고, 강릉에서만 삶의 터전을 일궈온 아저씨들이나 갈법한 허름한 노포도 그 나름의 분위기와 믿음이 가는 맛이라 좋다. 어디든 다 좋으니 해안 도시의 분위기를 해산물, 술 한 잔과 함께 즐기자.
서울 한복판처럼 언제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술 한 잔을 즐기되, 입에 남은 해산물의 비릿함을 씻어낼 정도로만 마시자. 술은 어디까지나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보조해주는 수단에 그치는 것이 좋다, 특히 여행지에서는. 숙소로 돌아오는 길, 조금 미리 택시에서 내려 겨울 밤바다의 바람을 맞으며 걸어 들어올 수 있다면 강릉의 겨울밤은 완벽하게 마무리된다.
짧은 여정의 마지막 날이다. 다음 날은 느지막히 일어나 최상의 컨디션으로 체크아웃하고 나오자. 여행만큼이나 중요한건 휴식이다. 전날, 위의 공간이 부족해 밀어넣지 못했던 음식 중 하나를 식사로 선택하자. 아침부터 헤비한 식사가 싫다면, 안목해변의 카페거리로 가는 것도 좋다. 차가운 바닷바람으로 몸을 깨우고 카페인과 빵으로 정신도 깨워주자. 평소의 서울에서 보기 힘든 해변은 아무리 걸어도 지나치지 않다. 차에 타기 전, 안목해변을 한 번만 더 걷자.
강원도, 특히 강릉은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도시다. 바닷가도 충분히 예쁘지만 시간이 허락한다면 마지막은 아랫쪽을 넓게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곳으로 들러야 한다. 운이 좋아 눈이 덮힌 설원을 볼 수 있다면 그 이상 좋을 수 없다. 강원도의 겨울바다와 설원, 커피, 그리고 음식까지 여유롭게 즐겼다면 충분히 성공적인 여행이다.
거리를 걷고, 음식을 즐기고, 여유를 즐기는 것 모두 극히 평범하고 일상에서도 가능하다. 하지만 가끔은 빌딩으로 둘러싸인 강남의 콘크리트정글과 빌딩 사이로 휘몰아치는 차갑고 인공적인 바람들에서 벗어나야 한다. 주위 무엇 하나 가리는 것 없는 탁 트인 강릉의 겨울바다와 겨울바람, 그리고 친숙하지 않은 지역이 주는 신선함은 콘크리트 정글에서의 내 삶을 조금씩이나마 연장시켜주는 원동력이 된다.
피부가 찢길듯한 강원도의 겨울 바람과 서늘함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자연스러운 추위를 즐기는 거, 이런 것도 가끔씩은 괜찮지 않을까. 정말로, 이번 겨울에는 강릉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