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아닐지라도, 그대들의 나름대로의 작고 소중한 꿈들.
요즘 들어 꿈을 많이 꾼다. 진급이나 미래의 회사생활, 내 집 마련처럼 최근 내 머릿속을 많이들 헤집고 다니는 관심사들에 내 모든 지인들, 기억들이 이것저것 섞여 도무지 알 수 없는 내용들이 이어진다. 현실 속에서 고민하던 것들이 묘하게 잘 섞여나와서 깬 후에도 내가 자다 깬 건지, 혹은 어제의 기억이 남아있는지 헷갈려 잠시 현실로 로딩 시간이 필요하다. 출근길에 어젯밤 무슨 꿈을 꿨던건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꿈'들이 뇌에 남아 생물학적인 현상인 '꿈'으로 나오는걸 보자하니 똑같은 단어를 사용하는게 우연은 아닐꺼란 생각에서 여러 언어권에서도 두 현상에 대해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까지 이르렀고, 과거의 내가 잠시 가졌던 그 꿈까지 내 생각의 꼬리가 이어졌다.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부터 대학교를 졸업하기까지,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고, 단기적으로 내 삶을 바꿔줄 목표라고 생각했던건 무엇보다도 돈을 많이주는 대기업 입사였다. 단군 이래 한반도의 그 어떤 세대가 힘들지 않겠냐만은 그 당시에는 과거의 어느 세대보다 힘들다는 취업난을 뚫고 6년 전의 나는 우리나라 최고의 대기업들 중 한 곳에 입사했었다.
그 곳의 최종 합격 발표가 날 무렵인 2014년 11월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며칠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려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잠깐 잠이 들었다가도 발표가 나는 꿈을 꾸곤 했다. 최종 발표가 났던 날은 아무 것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정도로, 술을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단지 그 회사에 입사한 것만으로도 내 인생은 앞으로 구김없을 것이라, 아니 성공가도를 달릴 것이라 확신했었다. 몇 주의 그룹연수가 끝나고 잠시 휴가를 얻었을 때는 내심 자랑하고픈 맘에 마지막 수료식날에 지도선배가 손수 한 명씩 달아준 그룹 뱃지를 자켓에 그대로 달아놓은 채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의 경사이기도 했다. 누나가 결혼하던 날, 부모님과 함께 손님을 맞이할 때마다 아빠는 '얘가 이번에 어디 들어간 우리 아들이야'라며 한 마디씩 덧붙였다. 다른 그룹사에 오래 재직한, 아빠의 한 친구분은 몇기로 입사한건지, 연수는 어땠는지 등의 소위 말하는 ‘그 색깔의 피’가 흐르는 사람들만 공감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몇 마디 더 늘어놓고 가기도 했다. 서두에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지 않냐곤 했지만, 사실 그정도로 자랑스러워했던걸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는 거의 나에겐 '꿈'을 이룬 거나 진배없던 것 같다.
회사의 이름이 떡하니 찍힌 명함과 사원증을 자랑하고 다니는, 동기나 선배들이 낯뜨거워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는 일부러 내 입으론 오너 일가의 도덕성이라거나 대기업 집단의 이기심, 연루된 각종 사회적 이슈 등을 언급하며 그들과 내가 속한 집단을 깎아내리고 폄하하기도 했었다. 주위에서 내 명함을 추켜세워줄 때 어깨가 으쓱해짐을 내심 즐기면서도 동시에 일부러 흠을 찾아 깎아내림으로써 난 선배나 동기들과는 다른, 회사와 나를 분리해서 살아가는 쿨한 프로 직장인이라는 착각에 빠져있기도 했다. 그런 내가 진심으로 껍데기에 대한 자부심이나 열정이 사라지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핵심 업무를 수행하는 선배들처럼 나도 언젠간 중요한 보고를 올리고, 수십-수백억 규모의 업무를 처리하면서 내가 꼭 필요한 직원이라고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으나, 적응이 생각보다 빨랐던 탓인지 그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거의 매일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야근과 주말출근이 반복됐고, 갓 대학을 졸업해 뽀송뽀송하고 밝았던 내 피부는 푸석푸석하고 칙칙해졌다. 입사한지 만 2년이 되던 날, 결국 나는 퇴사했다.
물론 퇴사 결심까지는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쿨한 척했지만 어떻게 들어온 회사고 어떻게 갖게 된 명함인데, 힘들어 죽을 것 같아서 바로 놓고 싶으면서도 다른 손으로는 계속 이 끈을 잡고있고 싶었다. 회사에서 새롭게 만나게된 인간관계도 떠나보내기 너무 아쉬웠다. 퇴사에 대한 명분을 찾기 위해 내가 왜 이 회사에 들어온건지부터 차근차근 돌아봤다. 근데 이상하게 왜 이 곳에 입사하는게 목표였는지에 대한 물음에는 계속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가성비가 좋은 선택일 뿐이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고등학교에서 문과로 갈 지, 이과로 갈 지 선택할때에도 어느 진로를 선택하는게 더 효과적일지 고민했고 대입에서도 어떤 대학이나 학과로 진학하는게 이후에 더 효율적인 길인지 고민하고 결정했다. 대학교 졸업을 준비하고 취업을 준비할 시점에서는 더이상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고등학교와 대학, 그리고 전공으로 내가 나아갈 길이 상당히 좁혀져 있었기 때문에. 아, 물론 그 좁혀진 길들은 대부분의 선배들이 바라는 길이기도 했거니와, 그 중에서도 나름 발라내고 발라내 나름대로의 최선의 목표를 정하기도 했었던 결과기도 했다. 확실한건 내가 좋아하는 공부인지의 여부나 내가 하고싶은 일인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고, 내가 밟아온 과정에서 최대한 효율적으로 시간을 써서 이룰 수 있는 그다지 수고스럽지만은 않은 목표였다.
그러고 보면 우리 한국 사람들의 인생에는 압박이 많다. '선택'의 문제들에 당위성과 명분을 부여해 '의무'로 만들고 살아간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그 정상적인 노선에서 삐뚤빼뚤 움직이는 것을 죄악시하고 남들보다 늦게 달리는 것에서 죄책감을 느끼며 산다. 그러다보니 남들의 기대에 맞춰 선택한 노선이 내가 갈 길이 아님을 알고난 후에도 바꾸기 쉽지 않다. 정년퇴직의 부담이 덜한 전문직 분야를 제외하고는 어떤 분야에 남들보다 '늦게' 들어간다는 것은 온갖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가 충분히 고민해보지 못했지만 등떠밀려서 대다수가 가는 노선을 선택한 이후에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였던 것들이 생존의 문제로 바뀌어 의무감에 그 길을 떠나지 못하게 되더란거다. 나 역시 그런 뻔한 한국사람이었다. 우리는 자동차 한 대 고르면서도 디자인은 어떤지, 승차감과 하차감은 어떤지, 성능은 어떤지, 브랜드는 어딘지, 또 유행을 타는거라던가 너무 뒤처졌는지까지 많은 시간을 고민한다. 길어야 십년 정도 탈 자동차 하나 고르는데도 많은 고민과 시간이 쓰이는데, 하물며 80년 살아갈 인생을 좌지우지할 선택에 있어서 생각과 고민들은 어떨까. 나는 충분히 고민이 필요했을 시기에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를, 타고 달려오던 노선을 별 생각 없이 그대로 타고 달렸었고, 안내방송을 제대로 듣지도 않은 채 속단하고 다시 정거장으로 뛰어내렸었다.
우리는 주위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을 다니다 퇴사하고 본인의 길을 찾은 진기주 배우나 방송인 김민아씨처럼 치열했던 대기업에서의 삶을 겪어본 후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되어 퇴사하고 새로운 길을 찾았다는 그런 특별한 후일담을 많이 본다. 퇴사 후의 내 인생도 그렇게 특별한 반전이 있었다면 좋겠지만, 인생은 컨텐츠 속의 클리셰처럼 흘러가지도 않을뿐더러 나는 그 사람들처럼 난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확실히 깨달은건 노동의 댓가로 받은, 작고 소중하고 귀여운 내 월급을 쓸 시간 정도는 있어야하지 않겠냐는 것이었고 내 다음 선택은 단지 약간의 저녁시간이 보장되는 또 다른 삶의 현장이었다. 그러고 나서야 삶에 여유를 줄 수 있는 취미도 시작해보고, 운동으로 몸도 키워보고, 미뤘던 책들도 읽어보고, 이렇게 글도 써보며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뭐였는지, 하루 8시간 일한 후에 다시 시작되는 내 삶에 대한 약간은 뒤늦은 고민을 하며 나름의 작은 꿈을 이제야 다시 꾸기 시작하는 중이다. 앞서 거론한 진기주 배우, 방송인 김민아씨처럼 spotlight를 받아 화려해진 주인공의 삶도 멋지지만, 도시 야경의 일부분을 자랑스럽게 담당하고 있는 건물의 창 하나하나의 빛, 가로등들의 빛, 자동차의 빛으로 살아가는 삶도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우리의 꿈이 꼭 주인공일 필요는 없다. 단역이나 스태프에 그치더라도 작은 우리 나름대로의 꿈과 주인공의 꿈이 합쳐져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다. 목적을 잃고 갈피를 잡지 못해 빛을 내지도 못하는 도시의 마천루보다는 작게나마 꿈을 꾸고 스스로 빛을 내서 도시 야경에 빛을 보태는, 한 작품의 마침표를 함께 찍는 작은 존재는 나 스스로에게든 우리 모두에게든 더 가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