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당연하지 못한 것들

by 김똥남

1.

2020년 6월,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박보검의 어딘가 안타까워 보이는 멘트 후에 2019년부터 인기 있었던 각종 영화, 드라마의 아역배우들이 나와 이적이 지난 4월 유튜브로 발표한 <당연한 것들>을 불렀다. 영화 <기생충>은 워낙 유명해져서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슬기로운 의사생활>, <동백꽃 필 무렵>은 무한도전 종영 이후 본방 사수를 거의 하지 않게 된 나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본방사수하며 정말 재밌게 본지라 오랜만에 보는 소담이, 우주 그리고 필구가 너무 반가웠다. 어쨌든, <당연한 것들>이란 노래는 사실 처음 듣는 노래인데다 백상예술대상은 관심에 둔 적도 없어 해당 공연이 있었는지도 몰랐고, 알 수 없는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끌려다니다 오리지널 버전보다도 아역배우들의 공연 버전으로 처음 듣게 됐다. 당연히 기교도 없고 서툴렀지만 진심을 꾹꾹 눌러담은 노랫말 한 마디에 넋 놓은채 몇번이고 돌려봤다. 많이들 알고 있겠지만, <당연한 것들>은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던 평범한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야 알게됐다는 노래다.


2020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중, <당연한 것들, 이적>
본래 별 게 아닌게 가장 소중한거예요.

공연의 간주 부분에서는 2019년 여러 작품들에서 나왔던, 코로나 사태를 예상하고 넣은 장면은 아니겠지만, 지친 모두를 위로하고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고 말하는 여러 장면들이 나와 괜시리 마음을 더 울린다. 그리고 우리가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특별한 것들이 아니라 아무런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당연한 것들이라는걸 상기시킨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한국에 퍼진지도 벌써 10개월, 정말로 당연하게 여겨졌던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변했다. 같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던 일상은 가림판과 사회적 거리두기 좌석에 밀려났고, 돗자리를 깔고 앉아 봄꽃이나 가을 단풍을 즐기던 주말의 일상은 장범준의 벚꽃 엔딩이나 약간은 쓸쓸한 가을 발라드들로 대체됐다. 주말 오후에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 퇴근 후 친구들과의 약간은 늦은 저녁과 술자리들도 없어졌다. 오랜만에 보는 대학 동기들과의 송년회니, 팀 진급자 회식이니, 크리스마스 준비니 하던 연말의 들뜬 분위기도 올해는 없다. 내가 알던 당연한 것들은 이제 없다, 일단 올해까지는.



2.

나는 대학생 때부터 서울에서 혼자 살아서 보통 설, 추석, 그리고 계절별로 한 번씩, 연 5-6회 가량은 본가에 내려간다. 누나 가족이 부모님 바로 옆 단지에 살아 대구에 내려갈 때마다 조카들도 같이 놀아주다 온다. 첫째 다현이는 이제 4살이라 말을 제법 잘 한다.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단어를 배워오는지, 뭐가 그리 궁금한지 같이 있는 단 1초도 쉬지 않고 재잘재잘 떠든다. 다현이 손을 잡고 아파트 단지를 걸으며 이건 뭐냐, 저건 뭐냐는 질문에 하나씩 답을 하다보면 나도 도무지 뭔지 모를 질문도 나와 말문이 턱 막히고 그냥 대충 얼버무리고 지나간다. 올 가을쯤, 그렇게도 말을 잘 하는, 아니 말이 많은 4살배기 다현이가 집을 나설 때 해맑게 하는 말에 마음이 아팠다.


엄마, 마스크 안쓰면 못나가.

그렇게도 하고싶은 말이 많은데 하루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으려면, 집 안에만 갇혀 있으려면 얼마나 힘들까싶어 안쓰럽다. 점점 이후 세대로 갈수록 포기해야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다. 마스크 없이 다니고 뛰어노는 것이 당연했던 내 유년기는 지금 아이들에겐 꿈만 같은 옛날이야기가 되었고, 대학교 캠퍼스 아무 곳에나 앉아 벚꽃을 구경하며 늦은 시간까지 꽃놀이를 하며 눈과 코, 그리고 입 전부로 만끽했던 봄은 어느새부터 많이 날리는 미세먼지가 방해하더니 이제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즐길 수가 없게 되어 화석학번들의 술자리 대화 전유물이 되어버렸다.


항상 모든 세대는 각자의 삶의 무게가 가장 무겁다. 나 역시도 우리 세대의 삶의 무게가 가장 무겁다고 생각했다. 나로 하여금 말할 것 같으면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인 에코세대에 딱 해당하는 나이로 어딜 가든 무한 경쟁에 내몰린 세대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근 20년간 가장 응시자수가 많았던 2011학년도 대입수능을 치렀던 세대이며, 한창 입시 준비를 했어야 할 고등학생때는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세계 경제가 위기에 봉착해 사정이 안좋아진 집에서 눈치를 보며 자라던, 그리고 신종플루로 단축수업이다, 뭐다 고생을 했던 세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할 2015년 무렵에는 메르스로 전세계가 들썩거리고 THAAD 배치로 인해 한국의 대기업들과 경제'만' 얼어붙어 나름 고생하며 취업 준비를 했었다. 하지만, 가장 활발해야할 시기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로 멈춰버린, 뛰어놀 자유를 박탈당한 아이들과 성인으로, 새내기로서 엠티든 미팅이든 두근거릴 기회를 박탈당한 대학생들을 보면 나름 막차를 탈 수 있었던 우리는 그래도 사람 나름이겠지만 그다지 수고스럽지 않게 한 단계씩 즐기며 밟아올 수 있는 세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3.

중국 우한 지역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가 전세계로 퍼져나간지 약 10개월, 금방 지나가는 해프닝 정도로 생각했던 전염병이 나름 청정지역 중 한 곳으로 분류되던 우리 나라에서도 3차 유행에 접어들어 지금까지는 없었던 속도로 크게 확산되고 있다. 나름 큰 위기였던 1, 2차 유행때도 확진자 증가추세가 일 300명선을 크게 넘지 않다가 이제는 600명을 넘는데다, 도대체 어디서 확진되었는지 모를 깜깜이 확진자, 아무 증상도 없어 저도 모르게 바이러스를 퍼뜨릴 지도 모를 무증상 확진자가 나타나고 있어 최소한의 필수 활동만 하더라도 감염될 여지가 있기까지 하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어 사람 빽빽한 2호선 지하철을 타고 왔다갔다하는 수많은 임직원들 덕에 계속 우려됐던 우리 회사 사옥에도 그동안 확진자가 나오지 않다 처음으로 확진자가 발생했고, 재택근무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주 2회에서 주 3회, 그리고 이제는 한 주에 하루를 제외하고는 전부 얌전히 집에만 머무르고 있다. 회사 동료들과 장난스레 던지던 '1호 확진자만 아니면 된다'는 농담도 이제는 모두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꺼내는 사람이 없다. 이제 단체활동 뿐만이 아니라, 정말로 잠시 멈춰야 할 때다.


아, 얼마 전에는 대구 집에서 반찬들을 바리바리 싸서 보내줬다. 밖으로 나가서 괜히 코로나 걸려 주위에 민폐 끼치지 말란거다. 10년 전, 처음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할 때 엄마가 바리바리 싸줬던 반찬들이 기억났다. 하나하나 반찬통에 정리해서 냉장고에 넣으며 약간은 코끝이 찡했다. 세상은 이토록 빠르게 변해가는데, 당신 아들은 웃기게도 아직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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