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겨울의 초상

by 김똥남

첫눈이 내렸다. 어설픈 초겨울의 진눈깨비가 아니라 온 서울 시내를 폭신하게 덮는 함박눈이었다. 휘날리는 눈발을 보며 잠시 머리로 내리는 눈을 느끼고 있자면, 빠른 속도로 내 머리를 두드리는 비와 달리 그다지 밉지 않다. 난 대구에서 나고 20년간 자랐다. 한반도가 많이 작아 날씨의 편차가 크게 없다지만, 그래도 나름 따뜻한 도시라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눈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가, 눈을 참 좋아했었다. 눈만 내리면 밖으로 뛰어나가 눈을 뭉치고, 눈사람을 만들었었다.


스크린샷 2020-12-14 오후 9.28.46.png 첫눈 오는 날과 첫사랑의 커넥션, 영화 <건축학개론>


아직도 첫눈을 생각하면 약간은 설렌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나 첫눈과 사랑을 이어놓은 클리셰들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괜시리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첫눈을 구경하고 있자면 내일이면 얼어버릴 도로와 회색빛으로 질퍽거릴 출근길에 대한 걱정은 나도 모르게 잠시 내일로 미룬다. 거리의 자동차나 담장들 위에 소복하게 쌓인 눈들을 보고있자면 나도 모르게 손을뻗어 한번씩 쓸어담아보거나 조금은 손이 시릴지라도 양 손으로 뭉쳐 모양을 잡아보기도 한다. 그제야 또 한 해가 가는구나-하고 실감한다.


올해도 첫눈과 함께 겨울이 왔다. 코트로 멋내기 좋았던 가을은 눈 깜빡할 새 지나가고 지난히도 길 겨울이 또 찾아왔다. 아침 어스름을 헤치며 현관문을 열고 나올 때 코를 소독하는 듯한 겨울의 냉기와 그 차가운 냄새, 주머니에 손을 꽂고 다리만 부지런히 움직여 지하철역으로 빨려들어가는 롱패딩 시민들, 지쳤던 하루를 위로해주는 퇴근길의 붕어빵과 오뎅 냄새. 날씨, 사람들, 그리고 길거리 풍경 하나하나까지 이제 겨울이라고 말한다.


스크린샷 2020-12-14 오후 9.30.49.png <Snowman, Sia>의 M/V 한 장면


이번 겨울은 예전만 못할거다. 거리의 바삭한 붕어빵 장사는 있겠지만, 집까지 가져와 살짝은 눅눅해진 붕어빵을 베어먹어야 할테다. 겨울 아침의 냉기는 느낄 수 있겠지만, 마스크에 가려져 시원한 겨울 냄새는 맡지 못할테다. 먹고살기 위해 출퇴근길을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은 여전하겠지만, 우리의 겨울을 조금은 더 따뜻하게 해줬던 함께하던 분위기는 없을테다. 그래도 하얗게 온 세상을 잠시나마 포근하게 덮어주는 눈, 목숨이 다할때까지 내 곁에만 있어줄 눈사람처럼 최소한의 겨울의 낭만은 있을거다. 우리는 그 생각만으로도 다시 돌아올 새로운 봄을 기다릴 수 있을거라 생각해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더 이상 당연하지 못한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