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어내자

by 김똥남

모든 것에 대한 의욕이 반감, 아니 0으로 수렴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보통 3년 주기로 3년차, 6년차 그리고 9년차마다 직장 생활에 대한 의욕이 사라진다고 하던데, 과연 내가 그렇다. 첫 직장에서 만 2년의 시간을 채우고 3년차로 접어들던 해에 다른 회사로 옮겼었다. 만 4년의 시간을 더 채워 6년차가 끝나가는 이 무렵, 우발적으로 또 다른 회사의 경력채용 면접도 보고 왔다. 막상 합격하게 되더라도 심각하게 옮길지 말지 고민하겠지만, 일단은 기대감 때문인지 사업계획이니 뭐니 한 해의 업무 마무리를 해야하는 이 시점에 밀린 업무들에 집중이 도무지 되지 않는다.


오랜만에 마음에 들어온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가보려하는 것도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틈이 날 때마다 어떻게든 연락해보려고는 한다. 카카오톡 답장들을 읽지 않고 겉으로만 훑어보면서 어떻게 답을 할까 고민한다. 그리고 골치아픈 그 카톡들은 뒤로 제쳐두고 친구들과의 단체카톡방에서 농담따먹기나 하며 일을 한다. 결국 퇴근시간이 되어서야, 지하철에 올라탄 후에야 그 카톡이 기억나 다시 그 사람에게 답장을 한다, 바쁜 척하며. 이 정도면 정말 이 사람이 내 마음 속에 들어와있는건 맞는지, 내가 이 사람과 관계를 더 발전시킬 의지가 있긴 한건지 모르겠다.


내 일과 연애는 항상 제일 어렵고, 남들의 고민들은 너무나 쉽게 답이 보인다. 내게 답을 물어오는 친구들의 고민에는 언제든 쉽게 답변을 내려준다. 하지만 내 고민으로 옮겨오는 순간, 친구 얘기일때만 해도 보이지 않던 변수들이 왜 그렇게 많은건지 도무지 방정식의 해답이 쉽게 구해지지 않는다. 못살게 구는 팀장이나 상사들과의 관계라거나,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그 사람과의 관계라거나 그 모든 것들이 쉽지가 않고 하나하나 버겁고 피하고 싶다.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지배할 때마다 일부러 몸을 혹사시킨다. 내가 좋아했던 책들이나 피아노도 이런 상황에서는 생각이 꼬리를 물게 해 머리가 더 복잡해질 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순히 몸을 움직이고 무거운 무게를 들며 숫자를 하나둘씩 세다보면 약간은 진정된다. 고민이나 걱정들은 원체 성격이 급해 빈자리를 가만두질 못한다. 내가 담고있는 이 고민들이 사라지면 다른 고민들이 또 그 자리를 대신할테다. 그런 고민들은 담아둘 그릇이 멀쩡할 때나 의미가 있다. 고민이 그릇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간결한 그릇 한 켠에서 긴장감을 더해주는 포인트 정도로 있을 수 있도록 놔두고 싶다.


고민이 많더라도 잠시 지나가는 일일테다. 나는 허지웅 작가의 버티어내자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나를 잠식하지 않도록 버티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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