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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바꾸고 싶다면 SNS를 하라

우물 밖 개구리_다른 곳을 바라보다



결혼을 하고 나는 공부를 했기 때문에 맞벌이를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집안일은 여자의 몫 바깥일은 남자의 몫인 것처럼 자리를 잡았다. 그 후로도 잠시 잠시 일을 했기 때문에 전업주부로서 나의 삶과 외벌이의 남편의 포지션은 변함이 없었다. 첫째가 돌 때쯤 되었을 때  남편은 남중에서 근무했고 나는 바로 옆 여중에서 기간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같이 출근하고 같이 퇴근하고 월급도 같지만, 남편은 일하는 사람 나는 전업주부의 포지션의 변화가 없었다. 같이 일을 하는데 집안일에 식사 준비까지 다 내 몫인지. 주말에 남편은 당연히 늦잠을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아이를 돌보는 일 마저 당연히 엄마인 내가 맡았다. 이 문제로 몇 번 싸워 봤지만 변화는 없었다.      


가장 큰 사건은 아이가 입원을 하게 되면서이다. 일하러 나간 지 한 달쯤 되었는데 아이가 폐렴으로 입원을 했다. 근무 일수에 따라 나오는 연차가 있는데 나는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연차를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연하게 남편이 연차를 내고 아이를 케어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 계신 시어머니가 오시기로 했는데, 시어머니가 허리를 다치셔서 오지 못한다고 하셨다. 마침 친정엄마는 해외여행을 가셨을 때이다.      


너무 당황스럽고 학교에 죄송스러웠다. 다행히 학교에서 사정을 봐주셔서 며칠간 입원한 아이와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폐렴으로 한번 더 입원을 하게 된다. 두 번째도 남편이 아이를 케어하지 않았다. 아이 아픈 문제로 연차 내는 남교사가 없다는 것이다. 9년 전이니 지금보다 더 남자가 육아휴직 쓰는 분위기가 아니라고 하지만, 하루 이틀 연차를 쓰는 것이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일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나는 일하기 원했고 경력을 쌓고 싶었다. ‘나는 일해보고 싶다. 경력도 쌓고 싶고 당신이 잘 도와준다면 계약 1년 연장해서 근무하고 싶다’고 부탁했던 기억이 있다. 두 번의 입원 사건으로 1년 계약을 연장하지 못하고 원래의 계약시점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그때 일을 했었다면 아마 계속 이어서 기간제 생활을 했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맞벌이의 마인드가 준비되지 못했었다. 함께 벌어 빨리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아이가 더 중요하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라 남편과 나와의 ‘마인드’의 문제였다.      


그런데 아내가 8년 만에 다시 임용 시험을 친다고 하니 남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남편의 눈에도 아내가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였나 보다. 저녁 설거지는 남편이 매일 같이 해주었다. 그렇게 매일 저녁 설거지만 덜어도 살 것 같았다! 남편은 하던 일에 딱 한 가지 ‘저녁 설거지’를 도맡아서 해 주었을 뿐인데 나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이 배가 되었다. 전업주부인 내가 남편에게 '집안일을 반반 하자'는 요구가 아니다. 자신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은 본인 스스로 수습할 정도는 되어야 성인이라는 것이다. 따라다니면서 치워줘야 할 대상은 5세 미만의 아이뿐이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 크면 자신의 장난감은 스스로 정리하라고 가르치는데 어른 남자가, 본인으로 인해 일어난 정리정돈과 설거지 청소 등을 다 한 사람의 몫으로 미루는 것은 잘못되었다. 크게 많은 일이 아니라고? 맞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하는 사람만 늘 하는 것. 공간의 크기와 상관이 없는 기숙사 룸메이트와의 신경전 문제와 같다.      



다시 돌아와서, 작년 한 해 동안 아내의 임용시험 준비를 도와준다고 설거지 하나를 도맡아 해 주니 ‘마법’이 일어났다. 그 한 가지를 덜어낸 나의 마음은 훨씬 가벼웠고 남편의 고마움은 2-3배쯤 늘어났다. 남편 또한 그 한 가지를 맡아해 주면서 아내가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고, 아내가 더 열심히 집중해서 할 수 있는 모습을 보며 뿌듯하고 감사했을 것이다. 서로가 고마워하니 부부관계는 늘 좋았다. 이것이 ‘배려’의 모습 ‘성숙’의 모습인 것 같다. 상대가 원하는 것 하나 먼저 해주는 것그거면 되는 것이었다.      


얼마 전 나는 ‘사업자’를 내었다. 집에서 하는 일이다 보니 장점은 아이들을 케어하기 좋았고, 단점은 (출근을 하지 않다 보니) 남들에게는 일하는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남편이 나를 '일하는 아내'로 대우해 주기 시작했다. 사업자를 내기 전 아무 소득이 없었을 때도 내가 글을 쓴다고 하면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나가고 카페에서 조용히 혼자 일 하라며 카페에 데려다주곤 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아니! 변한다! 그것도 좋은 방향으로!!     


왜 이렇게 남편이 나를 생각해주고 지지해주고 도와주는지 생각해 보았더니, 내가 하는 일이 티가 나서이다결혼 생활 내내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침구정리로 시작해서 남편 출근, 아이들 등원 후 온 집안을 정돈하고 청소하며 항상 남편이 퇴근할 때는 항상 정돈된 모습으로 맞이했다. 매일 저녁 준비를 했고 한 그릇 요리지만 정성 다해 준비했다. 루틴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지만 가정주부로서의 내 삶에 나는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대충 한 일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 너는 너' 였는데 남편이 변했다. 행동이 있는 배려자로!


남편은 경상도 남자이지만 말을 예쁘고 부드럽게 한다.  퇴근하면서 집에 있었던 내게 인사한다 “여보! 오늘도 고생했지!” 이 말은 내가 남편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내게 하는 인사이다. 이 부분은 정말 너무 감사하다. 그런데, 이 인사처럼 행동을 했을까?(이하 생략) 

"고생했지?!" 하며 알아주는 말을 하고서 왜 도와주는 행동은 없을까? 말로만 나의 고생을 알아주었다. 지인들은 그랬다 ‘말이라도 해주는 게 어디냐고’     


맞다. 말이라도 예쁜 게 어딘가. 그러나 앙꼬 없는 찐빵은 먹기 싫다! 


그랬던 남편이 아내의 삶을 sns를 통해서 보기 시작했다. 내 아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제삼자로 아내의 삶을 보게 된 것이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았을 것이고 본인도 몰랐던 아내의 삶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아, 아내가 이런 일을 하며 살았구나, 이렇게 많은 일을 해내며 살고 있었구나, 많은 부분 최선을 다해 살아왔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아내들에게 sns를 꼭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다른 사람보다 내 남편이 변한다. 정말이다.  나를 뽐내고 나를 드러내자! 내가 알리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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