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 빨아 주실 분 구합니다!
기저귀 세탁소
기저귀 빨아 주실 분 구합니다!
아기가 잠든 밤, 기저귀를 솔로 문질러서 똥의 흔적을 지운다. 기저귀만 누가 대신 빨아 주면 좋겠는데. 당연히 그럴 사람은 없다. 남편과 집안일을 분담해서 하고 있는데 기저귀 세탁은 암묵적으로 내 일로 정해졌다. 요리 및 세탁이 내 담당인데, 기저귀 세탁도 세탁 범주에 들어갈 것 같고, 천기저귀 사용을 주장한 쪽도 남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저귀 세탁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똥이 문제다. 소변 기저귀는 그냥 세탁기를 돌리면 그만인데 똥기저귀는 똥을 먼저 털어내고 솔로 똥 자국을 지워내야 한다. 깜박하고 똥이 묻어 있는 기저귀를 그대로 오래 방치하면 약간 발효된 냄새가 나면서 빨래 시간이 더 힘들어진다.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안 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정도의 일이다.
천기저귀를 사용한다고 하면 빨래는 어떻게 하냐는 사람이 많다. 기저귀 세탁 관리가 부담스러워서 다회용 기저귀는 못 쓰겠다는 사람도 있다. 그냥 지나가며 한 말일 수도 있지만, 세탁 문제가 해결되면 천 기저귀를 고려해볼 사람도 있지 않을까.
기저귀 세탁을 대신해 주는 곳이 있다면?
천기저귀 수거 세탁 업체를 만드는 거다. ‘(베짱이들을 위한) 천기저귀 세탁소’라고 이름을 지어보았다. 기저귀를 세탁해서 깨끗한 상태로 배달해 주면, 우리는 우아하게 기저귀를 제때 갈아주기만 하면 된다. 귀찮은 세탁은 기저귀 세탁소에서 대신해 준다. 사용한 기저귀는 냄새가 나지 않도록 고안된 특수통에 모아놓는다. 똥만 털어내고 세탁은 따로 하지 않는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냐고? 미국·캐나다 등에서는 이미 이런 ‘기저귀 서비스(diaper service)’ 업체가 있다. 업체가 한두 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별로 꽤 많은 사업체가 운영되고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기저귀 서비스를 이용하여 편하게 천기저귀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저귀 서비스의 이용 방법이다.
1. 프리폴드 기저귀와 팬티형 기저귀 중 선택하여 서비스를 신청한다.
2. 업체에서 출산 예정일 전에 깨끗하게 세탁한 천기저귀를 배달해 준다.
3. 아기가 태어나면 그날부터 이용이 시작된다.
4. 사용한 기저귀를 애벌빨래 없이 기저귀 통에 모아둔다.
모유나 분유를 먹는 아기 똥은 그대로 놔두고, 이유식을 먹는 아기 똥은 변기에 털어낸다.
5. 업체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수거하면서 세탁한 기저귀를 배달해 준다.
+ 추가 비용을 내면 손수건도 같이 이용할 수 있다. (업체에 따라 다름)
비용은 한 달 10만 원 정도이다. 업체에 따라서 일주일에 두 번씩 수거 배달하는 곳도 있는데 대부분 주 1회 수거 배달한다. 내가 기저귀를 따로 구매하지 않고, 기저귀 업체에서 관리하는 기저귀를 이용하는 것이다. 다른 아기가 사용한 기저귀랑 같이 세탁되고, 내 기저귀가 따로 관리되진 않는다. 다른 아기가 똥 싼 기저귀를 어떻게 써?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고온으로 세탁 및 살균 관리한 재사용 기저귀가 일회용 기저귀보다 안전하다.
기저귀바우처를 기저귀 서비스 업체 이용권으로 지급하면 어떨까. (우리나라에는 기저귀바우처 제도가 있는데, 저소득층 영아(0~24개월) 가정에 기저귀 구매비용 월 6만 4천 원을 국민행복카드 바우처 포인트로 지급하고 있다.) 그럼 가정에서는 세탁 부담 없이 아기에게 좋은 천기저귀를 쓸 수 있고, 쓰레기 양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쓰레기 처리 문제로 전 세계가 고민하고 있다. 이런 친환경 사업체가 앞으로는 국가 지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육아는 엄마나 아빠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어쩌면 지금은 일회용 기저귀를 쓸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회용 제품을 사용하고, 천기저귀를 사용하는 것이 어쩌면 그만큼 여유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내가 정말 힘든 상황에 부닥쳐있다면, 그때도 천기저귀를 사용할 수 있겠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렇게 사회 구조적으로 육아 보조 시스템이 갖추어지면 좋겠다.
기저귀 세탁소는 아기 기저귀뿐 아니라 성인용 기저귀 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다. 똥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내 아기니까 똥도 만지는 거지만, 내가 눈 똥도 내가 만지기 싫다. 엄마는 90이 넘은 할머니를 집에 모시고 있는데, 할머니도 얼마 전부터 거동이 불편해지셔서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하고 있다. 할머니가 쓰는 일회용 기저귀는 다 쓰레기가 된다. 엄마는 이 쓰레기가 다 어디로 갈까 답답하다고 하지만 할머니 기저귀 세탁까지는 못하겠단다.
기저귀 세탁소가 몸이 불편한 성인들을 위한 기저귀 세탁 서비스를 한다면 어떨까. 요양병원에서 천기저귀를 사용하면 어떨까. 환경적인 부분에서도, 노인들 건강에도 좋을 것이다. 내가 꿈꾸는 시스템이 바로 실현 가능한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천기저귀 세탁소가 생긴다면 성공할 수 있을까? 당장 우리 동네에 개업한다면 내가 이용할까? 기저귀 바우처 대상이 아닌 나에게는 비용의 문제도 있고, 일주일 치 기저귀를 모아두는 것도 내키지는 않는다. 세탁도 못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용 부담이 크지 않다면 우리 엄마는 할머니 기저귀를 위해 이용할 것이다.
기저귀 세탁 서비스가 있다면 주변에 천기저귀 사용을 권유하기에도 좋을 것이다. 지금은 육아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주변에도 천기저귀를 쉽게 권하지 못한다. 내 동생도 아기를 출산했지만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한다. 나는 몇 번 추천하고는 출산 후 피곤해 보이는 동생과 제부의 얼굴을 보며 더는 말하진 못했다.
기저귀 서비스는 비용, 다른 아기와 기저귀를 공유한다는 것 등 사람에 따라 걸림돌이 될 요소들이 많다. 그렇지만 이런 시스템이 생긴다면 천기저귀에 대한 접근이 좀 쉬워지지 않을까? 지역마다 기저귀 세탁소가 생기는 날을 꿈 꿉니다.
제가 천기저귀 세탁소 운영하면 이용하실 분 있으면 손들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