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은 너무 어려워
오늘은 육아빠이팅의 세 번째 이야기, ‘치열했던 2주간의 기록’입니다.
와이프가 출산 후 산후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아기와 함께 왔습니다. 저는 코로나 때문에 산후조리원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고, 2주 만에 아기를 만난 것이죠. 양가의 도움을 받기가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당연히 산후도우미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불안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시는 분 말고 자차나 도보로 이용하시는 분을 찾았는데, 바로 오실 수 있는 분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고민 끝에 어쩔 수 없이 2주간 저와 와이프 둘이서 아기를 보기로 하고, 자차를 이용하는 산후도우미 분을 2주 뒤에 오시는 걸로 했어요. 그리고 이 결정이 제 인생에서 가장 치열한 2주를 보내게 합니다.
1. 처음은 너무 너무 어렵다.
누구나 처음 하는 일은 서툴고 어렵죠. 개학하는 날, 회사 입사 첫날... 설렘도 있지만 두려움과 걱정도 많잖아요.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시간도 걸리고. 그런데 아기를 보는 일은, 게다가 이제 막 태어난 완전 신생아를 돌보는 일은 너무 너무 어렵고 긴장의 연속이었어요. 출산 전에 책 보면서 공부도 많이 했고, 중요 내용들을 노트로 만들어 두기까지 했는데... 다 소용없었어요.
일단 아기가 울면 당황스러웠어요. 뭐가 문제지? 기저귀는 조금 전에 갈아줬고, 젖도 먹은 지 얼마 안 됐는데... 온도가 안 맞나? 주요 항목들을 다 체크해봤는데 아무래도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죠. 답을 못 찾으니까 일단 안아줬어요. 계속 울고 있는데 생각만 하고 있을 수 없으니까요. 근데 안아준다고 해서 항상 달래지지는 않더라구요. 그냥 이유 없이 울 수도 있다고 듣긴 했는데, 생초보 아빠는 아기가 몇십 초만 울어도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아기가 깼을 때 부모가 안아주는 것과 같은 특별한 반응을 한다면 다음에도 그렇게 해 주기를 기대하게 된다."라는 문구도 공부해서 잘 알고 있었는데, 저는 도무지 못하겠더라구요. 안아주는 걸 아기가 이게 특별한 반응으로 느끼더라도 어쩔 수 없다 생각했어요. 미래를 생각할 여유는 없었으니까요. 지금 충분히 힘드니까요.
그리고 청각이 정말 예민해지더라구요. 아기가 조금이라도 울거나 소리를 내면 바로 깰 정도로요. 원래 청각이 예민한 편인데 조그만 소리에도 계속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보니 2주간 잠을 어떻게 잤는지도 모르겠어요. 아기 울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리기까지 했어요. 거실에 있다가 아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놀라서 아기 침대로 가보면 아기는 너무 잘 자고 있더라는...
2. 잠을 자고 싶다
제 인생에서 잠을 정말 못 잤던 때가 딱 2번 있었어요. 고 3 때는 잠을 최대한 아끼며 공부를 해보려고 했고, 대학교 1학년 때는 잠을 최대한 아끼며 놀려고 했죠. 그리고 이 치열했던 2주간 그 시절만큼이나 잠을 못 자게 돼요. 제 의지와는 무관하게 말이죠.
“수면 문제는 아기를 병원에서 집으로 데리고 오는 날부터 부모들을 괴롭히는 주범. 육아는 수면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
미리 예습한 책에 이런 문구가 있었어요. 저는 잠을 남들 평균만큼 자거나 그보다 적게 자는 편이었고, 밤에 일찍 잠이 들지 못하는 스타일이어서 큰 걱정은 안 했었거든요. 근데 그건 제가 평범하게 살고 있을 때만 적용되는 것이었어요. 물론 각오는 하고 있었죠. 근데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어요. 수유 텀은 정말 짧아서 밤중에도 계속 깨서 모유를 줘야 하고, 아기를 돌보는 것 말고도 나머지 집안일도 해야 하잖아요? 도와주시는 분이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었죠. 그렇게 2주 동안 하니까 나중에는 정말 눈을 뜨기 힘들 때도 가끔씩 찾아오더라구요. 와이프랑 이야기해서 둘 중에 한 명이라도 조금씩 자자고 합의를 했어요. 안 그러면 둘 다 쓰러질 것 같아서... 혼자만 고생하면 안쓰럽고 미안해서 둘 다 같이 깨어있으려고 했는데... 안 되겠더라구요. 친척이나 친구라도 부르고 싶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신생아가 있는 집에 오기 부담스럽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이를 악물고 버텼어요.
3. 무조건 내가 건강해야 한다.
잠도 잘 못 자고, 먹는 것도 부실하니 제 몸이 축나기 시작하더라구요. 혹시 목젖에 구내염 생긴 걸 경험해 보신 분 있나요? 제가 원래 피곤하면 구내염이 잘 생기긴 하는데, 이때는 입 안의 평범한 곳이 아닌 목젖에 구내염이 생기더라구요. 음식물이 통과하는 길목에 구내염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으니 안 그래도 먹을 힘도 별로 없는데, 더 먹기 힘들게 만들더라구요. 그래도 먹긴 먹어야겠고, 날 위한 즐거움도 필요해서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엄청 먹었답니다. 그런데도 살이 빠지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죠.
그리고 허리. 육아 시작한 지 이틀 째만에 허리가 엄청나게 뻐근한 걸 느꼈습니다. 나름 스쿼트부터 시작해서 아기를 안을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실전에 들어가니 몸이 바로 무리를 느끼더라구요. 신생아라 가볍긴 해도 3kg 정도 되는 아기를 계속 안고 있으니 허리가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죠. 아찔했어요. 이러다 내 허리가 고장 나서 몸을 못 쓰면 아기랑 와이프를 어찌해야 할지 앞이 캄캄하더라구요. 급하게 파스 붙이고 근육 진통제를 먹었어요. 다행히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더라구요. 시간이 지나면서 아기를 안고 다니는데 몸이 익숙해지는 게 느껴졌어요. 제 몸도 깨달은 거겠죠. 주인이 이걸 하루 이틀하고 끝낼 것이 아니라는 걸. 계속해야 한다는 걸. 그래서 거부하지 않고 도와주기로.
4. 이론과 현실의 괴리
출산 전에는 육아 책을 보면서 미리 예습했고, 치열했던 2주 간은 책을 볼 여유는 없어서 유튜브 영상을 열심히 찾아봤어요. 근데 실제 아기를 보면서 느낀 건... "왜 남들한테는 저렇게 쉽지?"였어요. 유튜브 보면 귀에다 ‘쉬~쉬’ 몇 번 해주면 울던 아기도 울음 뚝 그치고 새근새근 잘 자더라구요. 그래서 똑같이 내 아기한테 해줬는데... 왜 내 아기는 안 될까? 알려준 대로 아무리 해봐도 잘 안 되더라구요. 결국 내가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름의 규칙과 방법을 찾아낼 수밖에 없었어요. 문제는 아기가 완전 신생아라서 이유 없는 울음이나 소리 지르는 것도 많았다는 거죠. 조금 더 여유 있게 대처하자고 계속 다짐했는데, 막상 울음소리 들으면 반사적으로 바로 달려가고 있는 저를 발견했죠.
제가 예습하면서 미리 적어뒀던 육아 노트입니다. 이걸 보고 아기의 상태를 추측하고 대처하려고 했는데, 이론은 이론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다시 봐도 정말 현실감 없는 노트 같아 보입니다.
* 울음으로 알 수 있는 것 *
1. 언제 우는가?
- 먹고 난 후에 울면 가스나 식도 역류가 문제
2. 어떤 모습으로 우는가?
- 다리를 가슴으로 끌어올린다면 가스
3. 어떻게 하면 그치는가?
- 가스 : 트림을 시키거나 / 다리를 잡고 자전거 타기 동작
- 똑바로 앉혀서 그친다면 : 식도 역류 가능성
- 식도 역류 : 침대 매트리스 올리기 / 트림시키면서 등 두르지 않기 / 등의 왼쪽을 둥그렇게 원 그리듯 쓰다듬기
5. <부부의 세계>와 BTS
아기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자서 시간이 생겼을 때, 당연히 잠을 자서 수면 보충을 하는 것이 맞을 텐데... 사람이 그렇게 잘 안 되잖아요? 정말 피곤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놀다가 자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능. 마치 불금에 눈이 감기지만 그래도 토요일이 빨리 찾아오는 걸 막기 위해 어떻게든 안 자고 버티는 것처럼요. 마침 그 시기에 <부부의 세계>라는 드라마를 방영했어요. 인기가 많아서 재방송을 하도 많이 해줘서 틈날 때마다 챙겨봤어요. 사람이 힘드니까 자극적인 것이 재밌더라구요. 아기랑 와이프가 잘 때, <부부의 세계>를 보면서 투게더 아이스크림 먹을 때 참 행복했습니다. ㅎㅎ
와이프는 밤에 일어나서 계속 수유를 해야 하는데, 한밤중에 자다 일어나서 2,30분을 깨어 있어야 하니 얼마나 졸리겠어요? 그때 와이프를 깨워준 것이 BTS 였습니다. 밤에 수유할 때는 제가 유튜브로 BTS 영상 세팅부터 했어요. 그걸 보면서 와이프가 잠들지 않고 수유를 잘 끝내는 거죠. 원래 와이프가 BTS 팬이긴 했는데, 그 시절 덕분에(?) 아미가 되었죠. 저도 잠을 자긴 했지만, 와이프가 틀어놓으니 계속 BTS 노래를 듣게 돼서 결국 저도 남자치고는 BTS에 대해 꽤 많이 아는 수준이랍니다. 멤버 이름 정도는 기본이고, 담당 파트, 본명까지도 안다는...(이래서 와이프님의 주입식 교육이 참 무섭습니다...)
6. 초예민 보스
아기가 울면 달래기도 너무 힘들고, 재우기도 너무 힘들다 보니 아기를 건드리는 모든 것들에 완전 예민해지더라구요. 예를 들어, 앞 집이 대문을 쾅 닫는 소리는 엄청나게 거슬리고, 행여라도 이 소리 때문에 아기 깰까 봐 괜히 앞집 사람을 원망하게 되고(실제로 몇 번 깼다는...). 층간소음부터 시작해서 아파트 관리사무소 안내 방송까지. 모든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했어요. '아기가 자고 있으니 벨 누르지 말라'라고 대문 앞에 붙여뒀는데도, 굳이 벨 누르는 사람도 있었네요. 몸과 마음이 편하고 여유로웠다면 이렇게 예민해지지 않았을 텐데, 그땐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있다 보니 많은 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잠을 못 자는 것은 부모로서 치러야 하는 신고식의 일부다.”
이것도 어느 책에서 봤던 문구입니다. 치열했던 2주의 시간을 보내면서 잠을 못 자는 것을 포함해서 정말 호된 신고식을 치렀습니다. 그 2주를 보내고 다행히 산후도우미 분이 오셨습니다. 저는 출산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했는데, 회사가 그렇게 편하게 느껴진 건 입사 후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 시절을 잘 버텼기에 아들이 잘 컸고, 이제는 잠도 충분히 자고, 이렇게 글도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네요. 그 치열했던 2주를 추억하며 넉넉한 잠을 청하러 가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