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일 동안의 아름다운 여정

설렘과 긴장이 함께 했던 긴 여정

by 휴리릭

오늘은 육아빠이팅의 두 번째 이야기, ‘280일의 여정’입니다.


살면서 이보다 간절하게 두 줄을 원하던 때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와이프가 임테기를 들고 들어가고 기다리던 그 시간은 짧지만 참으로 긴 시간이죠. 두 줄도 다 같은 두 줄이 아니더라구요. 한 줄은 선명하고, 한 줄은 희미할 때... 이건 한 줄일까 두줄일까 걱정 반, 기대 반. 선명한 두 줄이 그렇게 간절할 때가 인생에서 또 있을까 싶습니다. 저도 몇 번의 실패 끝에 선명한 두 줄을 확인했고, 본격적인 280일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남편과 아빠의 입장에서 설렘과 긴장으로 가득했던 280일을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1. 해야 할 일들


임신이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의욕은 가득한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도 일단 제 기준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어서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봤습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어요. 너무 정보가 많고, 사람들마다 의견도 각양각색. 그래서 저는 육아를 하고 있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몇 가지 조언을 들었습니다.

제 280일의 키워드는 '과잉보호'라고 해도 될 것 같아요. 와이프는 늘 '과하다'라는 말을 했지만, 저는 거기에 굴하지 않고 철벽 보호를 하려고 했어요. 예를 들어, 와이프가 병원 검진 가는 날이면 최대한 휴가 내서 같이 따라갔어요. TV 보면 자상한 남편이 와이프를 병원에 데려가고 옆에 있어주는 거 하잖아요. 그게 내심 부러웠거든요. 그리고 집안일도 열심히 했고요. 정말 돈, 시간, 체력을 아낌없이 사용했어요. 출산 전까지 돈은 그렇게 많이 들어갈 일이 없어서 괜찮았지만, 시간과 체력은 나이에 반비례한다는 걸 느꼈어요. “아, 내가 몇 살만 어렸더라면...”. 의욕은 가득했지만,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는 않더라구요. 물론 이 생각은 출산 이후에 더 강렬해집니다 ㅎㅎ 임신 계획을 조금 미루고 자유를 조금 더 누리겠다는 제 계획의 결과물이라 딱히 누굴 탓할 수도 없는 현실이 씁쓸했죠. 출산 전, 여유 있을 때 공부도 많이 해두려고 했는데, 아직 경험하지 못한 일을 책과 영상으로만 배우려고 하니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도 나름대로 육아 노트도 미리 만들어 두고 열심히 공부하고 외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아기 태어나고 현실이 되니 정말 머릿속이 하얗게 되더라는...


2. 입덧


남편의 입장에서 내가 와이프 대신 경험해줬으면 하는 것들이 있었어요. 대표적인 것이 입덧인 것 같아요. 제 와이프는 냄새 덧을 심하게 했어요. 음식 냄새를 못 맡는 거죠. 한동안 부엌 근처도 잘 가지 못했답니다. 그 기간 동안 가스레인지는 켜보지도 못했구요, 냉장고 문은 아주 짧게 열었다 닫았어요. 밥은 제가 퇴근길에 포장해서 오거나 아니면 배달. 이미 완성된 요리만 겨우 먹는 정도였어요. 삶은 계란, 고구마 같은 걸로 겨우 영양 보충하고. 딱히 해결 방법은 없고 그저 시간이 흘러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기만을 바래야 하는 거라 참 어렵더라구요. 그렇게 좋아하던 치킨도 한동안 입도 대지 않고, 이틀에 한 번은 죽을 먹었답니다. 구워 먹는 고기도 정말 좋아했었는데, 고깃집 가서 속이 한 번 안 좋은 걸 경험한 이후로 한동안 아예 식당을 못 갔어요. 신기한 건 그럼에도 살이 빠지지 않고 잘 유지되거나 찐다는 거?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한동안 쉽지 않은 시기를 보냈지요.ㅎㅎ 전 집에서 마음껏 못 먹으니 대신 회사에서 먹는 점심만큼은 최대한 잘 먹으려고 했어요. 내 욕심만큼 캐어해 주기 위해서는 결국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회사에서는 절대 대충 먹지 않고 좋은 걸로 열심히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와이프한테 미안하니깐 점심에 뭐 먹었냐고 하면 그냥 밥 먹었다고 얼버무렸어요. 사실 찜닭 먹었는데... 사리까지 추가해서...


3. 태교


엄마는 임신 순간부터 출산까지 아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아빠는 출산 때까지 연결되는 지점이 없더라구요. 그나마 아빠가 할 수 있는 건 배를 잘 쓰다듬어 주고, 말 걸어주는 거? 그래서 태교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일 밤마다 태교책도 읽고, 하루 있었던 일도 이야기하고, 시도 읽어주고... 안 하던 걸 날마다 하려니까 쉽지 않더군요. 책도 같은 책만 읽으면 제가 지루해서 다양하게 읽었어요. 탈무드, 고전, 창작동화까지... 라디오 방송하듯이 태교를 했던 것 같아요. 문제는 와이프도 같이 듣고 있으니까 약간 민망한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는 거? 그래도 꿋꿋하게 했어요. 아빠가 되려면 뻔뻔해져야 할 때가 있구나 하면서요. 책 읽어주는 것 말고 일상 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어려움이 있었죠. 퇴근하고 바로 귀가하던 시기라 일상 이야기라고 해봤자 회사 이야기밖에 없는데, 회사 이야기가 얼마나 즐거운 이야기가 많이 있겠어요? 괜히 회사 스트레스를 가져올까 봐 수위 조절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죠. '나도 이제 어른이 되어야 하구나. 징징대기보다는 품어주고 감싸줄 수 있는 가장이 되어야 하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구요.

태교는 아기를 위한 일이라 생각하며 출산 전날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해줬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도 이렇게 좋은 이야기, 내가 하루를 보내는 이야기를 들려줘야지 했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는 걸 그때는 몰랐죠. ㅎㅎ


4. 성별에 대한 궁금증


임신을 하고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성별이었어요. 병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16주 차 즈음에 성별을 확인해준다고 했고, 저희 역시 그 시기에 확인을 받았습니다. 제가 1화 <준비>에서 적었지만, 51대 49 정도로 딸을 조금 더 원했어요. ‘딸바보’는 많은 아빠들의 소망이죠. 16주 차가 되기 전인데 신기하게도 어른들의 눈에는 성별이 보이나 봐요. 저희 어머니를 포함해서 주변 많은 어른들이 몇 가지 물어보시고 관찰하시더니, 다 아들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전 "그래요?"라고 쿨하게 대답하면서도, 내심 반전을 기대해 봤습니다만, 결과는 아들이었습니다!ㅎㅎ 키우다 보니 아들의 장점도 엄청 많은데 그건 나중에 또 이야기할게요.


5. 갈등의 지점


280일 동안 무조건 와이프가 우선이고, 와이프를 위해준다고 다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도 사람이다 보니 와이프랑 의견 충돌이 생겼던 지점이 있었어요. 대표적인 예가 운동입니다. 와이프는 집순이 스타일로 평소에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병원에 가니 의사쌤이 순산을 위해서는 운동을 열심히 해두는 것이 도움이 될 거라고 하더라구요. 문제는 이거였어요. 의사쌤은 운동을 100 정도 하면 좋겠다고 말했거든요. 근데 와이프는 50 정도 하다가 그만하더라구요. 저는 조금 더 했으면 좋겠는데, 와이프는 '내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하다'라고 말하니 더 할 말이 없었죠. 그래도 조금 더 다독여서 60 정도까지 하던 날도 있긴 했는데, 대부분의 날을 의사쌤이 말해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어요. 근데 출산할 때 보니까 아무 문제없더라고요? 순산을 하고 와이프가 "거봐 내 말이 맞지?"라고 하는데 정말 할 말이 없더라는... 내가 괜히 와이프가 어떤 몸 상태인지도 모르면서 의사쌤 말만 듣고 무리를 시킬 뻔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몸도 무겁고 출산 생각에 이런저런 걱정이 많았을 와이프에게 내가 괜한 짐을 더 올려줄 뻔했구나 하고 진하게 반성했습니다.

육아용품을 사는 데 있어서도 부딪히는 지점이 있었어요. 저는 아기가 사용하는 것이고, 신생아니까 무조건 새 걸로 사주고 싶었는데, 와이프는 입에 직접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면 싸게 중고를 사자는 주의였죠. 제가 최대한 아껴 쓰면서 새 제품을 최대한 많이 사주기로 일단 합의했었는데, 모빌은 결국 제가 차로 옆 동네까지 건너가서 중고제품을 사 왔어요. 새 제품이랑 가격 차이가 많이 나서 안 사면 안 된다고 와이프가 압박을 해서... 아기가 커가면서 필요한 물품과 장난감이 워낙 많아 다 새 것으로 살 수 없다는 걸 지금은 깨닫고, 새것과 중고를 적당히 잘 조화시키려고 하고 있지만, 그때는 아기를 위해서 내 의견을 포기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던 시절이었답니다.


6. 코로나가 망쳐버린 내 시뮬레이션


와이프가 진통을 느끼는 순간부터 출산, 산후조리원 생활까지 제 머릿속으로 열심히 시뮬레이션을 돌렸어요. 그런데...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모든 계획과 시뮬레이션은 무의미해집니다. 그때 일주일에 한 번씩 주말마다 출산교실을 다니고 있었거든요. 근데 하필 마지막 수업을 하기 전에 코로나가 터졌어요. 코로나 초창기라 사람들이 별로 신경 안 쓰긴 했었는데, 전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수업을 불참했습니다. (마지막 시간에 선물을 몰아서 다 준다고 했는데...) 그것뿐만 아닙니다. 산후조리원은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게 해서 출산 3일째 만에 와이프랑 아기와 2주간 생 이별을 했답니다. 집에 가도 할 일이 없으니 회사에서 없는 일도 찾아 야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코로나가 아직도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네요. 하루빨리 마스크를 벗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산후도우미를 부르는 것도 원래는 조리원에서 나와 집에 오면 바로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어떤 분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더라구요. 아기가 너무 어린데 함부로 외부인을 집에 오라고 하기가 부담스러우니까요. 대중교통으로 왔다 갔다 하시는 분은 아무래도 불안해서 도보나 자차를 이용하는 분을 찾았는데, 일정이 안 맞아서 결국 집으로 돌아와서 2주 뒤에야 산후도우미가 오게 되었어요. 그리고 산후도우미 분이 없는 그 2주 동안 저랑 와이프랑 둘이서 극한 육아를 경험하게 됩니다...


7. 280일의 아름다운 여정


긴장과 설렘 가득했던 280일이었습니다. 혹시나 무슨 일 생길까 노심초사할 때도 있었지만, 엄마 배를 차는 아기의 힘찬 발동작을 느끼며 아빠가 되는 희망이 가득하기도 했습니다. 벌써 작년 일이 되었는데, 그때는 280일이 참 길게 느껴질 때도 많았지요. 남편의 입장에서 대신 입덧을 해줄 수도 없고, 대신 아파줄 수 없어 안타까울 때도 많았습니다. 이 글을 빌어 와이프에게 고생했고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제가 280일 동안 가끔씩 일기를 썼는데, 그 일기 중 일부를 옮겨 적어보면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도 임신과 출산, 육아로 열심히 살고 계시는 많은 부모님들께 감사와 존경을 표합니다. 저도 더 성숙한 부모, 더 멋진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임신 17주 차.

짜랑아! 사실 네가 태어날 날이 다가올수록 조금은 두려운 것도 있단다. 아빠는 어른이 되지 않고 마냥 어리고 철없게만 살고 싶은 마음이 많았거든. 결혼을 했어도 철없이 사는 건 가능했었는데 이제 네가 태어나고 나면 난 정말 아버지로서, 너의 보호자로서 더 성숙한 어른이 되어야겠지? 조금 두렵긴 하지만, 잘할 수 있을 거라 믿고 노력하고 있단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엄마랑 아빠가 열심히 노력할 테니까 넌 그저 건강하고 밝은 아이로 잘 자라주기를 바라본다!"



이전 01화출산을 위해선 몸과 마음의 준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