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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Jun 15. 2023

6화 - 범인은 어차피 둘 중 하나다

첫사랑과 끝사랑 사이 어딘가(소설)

 땡.땡.땡.   

  

 청소 시간이다. 나는 1등으로 교실을 나왔다. 오늘은 내가 청소당번이지만 영만이에게 부탁했다. 영만이는 엄청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의리가 있다. 영만이는 내게 너무 사건에 빠져들지 말라고 충고를 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따 아이스크림을 꼭 사라는 말도 잊지 않았고.     


 난 보안실로 달려갔다. 가장 명백한 증거물을 일단 내 눈으로 봐야만 할 것 같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오! 유준이구나. 오랜만이네. 잘 지내지?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학교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친해지면 손해 볼 것이 없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보안실 아저씨와는 중학교 때부터 알았다. 아저씨가 이번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 오면서 고등학교에서 또 보게 됐다.     

 

 “아저씨...저 부탁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어려운 건 아닌데 진짜 한번만 들어주세요.”

 “뭔데? 우리 유준이가 말하는 거라면 아저씨도 최대한 협조해야지.”

 “혹시 어제 저희 반에서 있었던 바이올린 사건 들으셨어요?”

 “껌 엄청 묻혔다는 그 사건? 대충 듣긴 했지.”

 “근데 범인이 누군지 전혀 감도 안 와요. 쌤들도 별로 관심 없는 것 같고. 그래서 말인데요.  어제 복도 CCTV 영상 한 번만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 이게 제 부탁이에요. 제발요.”


 명탐정은 증거로 승부한다. 모든 것이 기록되고 있는 요즘 범죄 증거를 확보하는데 가장 유용한 것 중 하나가 바로 CCTV다.     


 “유준아! 내가 웬만한 건 들어주고 싶은데 이 부탁은 들어주기 어렵네. 잘 알겠지만 학교 CCTV는 열람 권한이란 것이 있거든. 학생인 넌 당연히 그 권한이 없고. 권한이 없는 사람에게 CCTV영상을 보여줄 수는 없어.”

 “그래도 한 번만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 저 진짜 잠깐 보기만 하고 나갈게요. 네?”

 “그건 안 돼. 나도 먹고 살아야지. 널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이게 밖으로 알려지면 난 바로 잘려. 내 딸 이제 중학생 됐는데 내가 잘리면 큰일 나지.”


 아저씨는 생각보다 완강하게 내 부탁을 거절하셨다. 보안실에서 일하는 아저씨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래야겠지만, 난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유리가 벌써 중학생 됐어요? 대박! 시간 엄청 빠르네요!

 그런데 아저씨 생각해보세요. 유리가 이런 사건에 휘말렸어요. 유리가 수행평가 점수 잘 받으려고 바이올린을 학교에 가져갔는데 누가 거기다가 껌을 엄청 묻혀버린 거예요. 근데 범인은 아직 못 찾았고 학교에서도 별로 열심히 범인을 안 찾는 것 같단 말이죠. 그러면 아저씨 미쳐요 안 미쳐요?” 

 “학교를 엎어야지! 누가 우리 딸을 그렇게 흉측하게 괴롭혔는데 학교가 가만히 있다고! 어떻게든 당장 범인 찾아야지!”


 아저씨는 예상대로 내 떡밥을 덥석 물어주셨다.   

  

 “그쵸? 그러니까 한번만 보게 해주세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네?”

 “아.. 정말 미치겠네.”

 “그럼 이렇게 해요. 지금 교직원 회의하고 있어서 쌤들 다 회의실 가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여기 왔다는 거 아무도 몰라요. CCTV 영상 카피본 달라고 안하고 그냥 여기서 한 번만 볼게요. 네? 그러면 진짜 아무도 모르잖아요.”

 “휴... 알았어. 대신 진짜 보기만 하는 거야? 아주 빠른 속도로? 오케이?”

 “그럼요!”

 “3월 7일 2교시, 2학년 복도 CCTV 맞지?”

 “넵! 완전 감사합니다! 유리가 진짜 멋진 아빠를 뒀다니까요!”  

   

 학교 CCTV는 규정상 복도에만 설치되어 있다. 반에 설치되어 있었다면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복도 CCTV 영상으로 체육 시간에 우리 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반에 출입한 사람은 알 수 있다.          


 영상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건 병달이었다.    

  

 병달이 이 새끼. 병달이는 텅 빈 교실에 들어온 것이 처음이 아닌 듯 능숙하게 교실 번호 자물쇠를 열었다. 그리고 교실 안으로 들어가더니 순식간에 다시 나왔다. 병달이가 교실에 머문 시간은 정말 3초도 되지 않았다. 

 병달이가 뭘 가지고 나온 것 같아서 병달이 손을 자세히 보니 담배가 있었다. 병달이는 쉬는 시간에 교실 문 옆에 담배를 미리 숨겨놓고 체육 수업을 나간 것 같았다. 그리고 체육 시간 중에 몰래 교실에 들어와서 숨겨둔 담배만 후다닥 집어서 다시 나간 것이다. 정말 어지간히도 담배를 빨리 피우고 싶었나보다.    

 

 어? 누가 또 온다. 이번에는 누구냐... 차미래? 미래가 나타났다. 손에 약 들고 있는 거 보니 양호실을 들렸다가 온 것 같다. 그런데 교실은 왜 왔지? 아프면 양호실에 누워있을 것이지.    

  

 미래는 교실로 들어가더니 병달이와 다르게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미래가 교실 밖으로 나온 건 교실로 들어간 지 20분이 지난 후였다.      


 미래 얼굴을 봤을 때 잠을 잔 것 같지는 않은데... 잠을 자고 싶었다면 편안한 양호실 침대를  택하지 굳이 딱딱한 책상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20분이면 범행을 저지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CCTV에 찍힌 건 병달이와 미래 뿐이었다. 병달이는 교실에 머문 시간상 범행이 불가능하다. 병달이는 그저 담배가 고파서 교실에 들렀을 뿐이다. 그리고 병달이 성격상 이렇게 번거로운 방법으로 괴롭히지 않는다. 괴롭히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냥 대놓고 괴롭히지.     


 남은 건 미래밖에 없다. 우리 반 빈 교실에 들어갔고 교실에서 20분간 머문 미래. 모든 정황이 미래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다 봤어?”

 “씁쓸하네요. 아저씨는 이미 이 영상 봤죠?”

 아저씨는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대답했다.    

 

 “그 여자애 좋아하는 애냐?”

 “아뇨. 좋아하기 보다는 친해지고 싶은 애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충격적이네요.”     


 미래는 분명히 내가 모르는 단서를 가지고 있다 했다. 그 단서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이 CCTV 증거자료를 뒤집을만한 파괴력이 있을지 모르겠다.          


 수업이 늦게 끝나기를 바래본 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이래 처음이었던 것 같다. 세상 지루하던 국사 수업은 너무 빠르게 흘러가 버렸다.           


 “유준아, 가자.”

 어느 새 미래는 내 옆에 와 있었다.  

    

 “그래. 가야지.”     

 아까 처음 미래와 이야기 할 때만 해도 생각보다 대화가 잘 통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할 말이 없다.      

 교문을 벗어나서도 나는 그저 앞만 보고 걸었다. 머리는 미래가 교실에 출입했던 CCTV 영상만을 무한재생하고 있었다.     


 “조금 이르긴 한데 저녁 같이 먹으러 가자. 괜찮지?”

 심각한 나와는 다르게 미래는 밝아 보였다.     


 “그래.”

 “내가 잘 아는 중식당 있는데 거기 갈래?”

 “응. 아무데나 상관없어.”     


 원래 사람 많은 햄버거 가게 같은 곳에 가서 미래를 추궁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미래가 진짜 범인이라는 생각이 드니 오히려 그렇게 번화한 곳은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하고 한적한 식당이 미래의 자백을 받아내는데 더 좋을 것 같았는데 미래가 나를 데리고 간 중식당은 자백을 받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식당이었다. 식당은 입구에서부터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단독 3층 건물로 이뤄진 스케일부터 금빛칠을 한 외부 벽은 고급스러움이 가득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고풍스러우면서도 은은한 벽지는 손님의 품격을 올려주는 것 같았고.    

  

 “미래야! 너 돈 있어? 여기 많이 비싼 곳 같은데? 난 괜찮으니까 우리 다른 데 가자. 그냥 저기 편의점에서 김밥 먹을래?”

 “나 돈 있어. 내가 살 테니까 걱정하지 마. 우리 장유준 탐정님 추리 들으려면 이 정도는 사야지.”


 미래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날 데리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뭔가 형사와 범인이 바뀐 것 같은 기분이다.    

 

 “이모! 나 왔어!”

 “미래 왔구나! 옆에는 누구야?”

 “우리 반 반장. 오늘 내가 반장 대접하는 거니까 특별히 더 맛있게, 알지?”

 “오케이! 걱정 마! 너 온다고 해서 이모가 더 맛있게 준비해뒀지. 2층 룸에 세팅 다 해뒀어.”    

 

 비싼 걸 먹이고 내 입을 막아보겠다는 속셈이군. 하지만 나 같이 철두철미한 명탐정이 고작 밥 사주는 거 하나에 무너질 수는 없지!     


 하지만 이 생각은 룸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사라져 버렸다.   

    

 절대 지지 않겠다는 자존심을 내세웠지만 조용한 룸에는 내 몸을 온전히 포용하려고 준비된 큼직한 의자가 거만한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의자에 앉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인생이라는 걸 느끼게 해줄 것만 같았다. 비싸지만 가격 이상의 만족과 품위를 느끼게 해주는 식당이라고나 할까. 이미 식당의 분위기에 압도당한 내가 과연 미래를 추궁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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