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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Jun 22. 2023

7화 - 탕수육 하나에 범인과 탐정이 바뀌다

첫사랑과 끝사랑 사이 어딘가(소설)

 먼저 나온 음식은 탕수육이었다. 조금 더 화려한 음식이 나올 줄 알았는데 흔한 탕수육이라 처음에는 조금 실망했다. 하지만 탕수육의 비주얼을 제대로 봤을 때 내 생각이 틀렸음을 직감했다.     


 탕수육은 고기 색깔부터 확연히 달랐다. 보통 탕수육은 튀김가루를 입힌 뽀얀 색깔인 경우가 많은데 여기 탕수육 색깔은 어두운 색에 가까웠다. 튀김가루로 고기를 싸는 느낌이 아니라 튀김가루는 아주 살짝 덮어져만 있어서 고기 본연의 색깔이 두드러진다고나 할까.     


 소스 빛깔은 홍시 색깔과 비슷했다. 그 영롱한 주황빛 소스 안에 야채와 과일이 각기 저마다의 색을 간직하고 있었다. 탕수육 소스에서도 식당 특유의 고급스러움은 한결같이 유지되고 있었다.     


 미래와 찍먹과 부먹을 논하기도 전에 나도 모르게 탕수육 한 점을 집어 소스를 고이 찍었다. 난 찍먹파다. 미래에게 예의를 차리기에는 내 배와 본능이 탕수육을 강하게 원하고 있었다.  

   

 “와!”

 외마디 짧은 비명이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터져 나왔다.     


 “이게 진짜 탕수육이야? 우리가 흔히 먹는 탕수육?”

 “응.”


 미래는 이런 내가 매우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대답했다.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맛이야. 탕수육에서 이런 맛이 나다니... 와! 진짜 인생 오래 살고 볼 일이네...”

 그리고 탕수육을 한 개 더 입에 넣었다. 황홀함 그 자체다. 야들야들한 고기에 적절히 느껴지는 기름의 흔적. 그리고 그걸 감싸고 있는 주홍빛 황금 소스까지.


 “그렇게 맛있어? 난 어렸을 때부터 많이 먹어봐서 잘 모르겠는데. 이모가 확실히 요리를 맛있게 잘하긴 하지. 그래서 이렇게 큰 식당도 차렸고.”

 “근데 여기 이모가 친이모야?”

 “응 맞아. 우리 엄마의 언니.”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했다. 탐정놀이는 잠시 던져두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탕수육과 짜장면, 군만두까지 폭풍 흡입했다. 미래는 이런 내가 신기했는지 아니면 불쌍했는지 모르겠지만, 내게 굳이 말을 걸지 않고 내가 편하게 다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탕수육 더 시켜줘?”

 “아니 아니. 내가 그렇게 식탐이 많지는 않아.”

 “근데 유준아... 나 탕수육 딱 3개 먹은 건 알아?”

 “응? 3개 밖에 안 먹었어?”

 “응. 나 3개 먹었는데 더 먹을 탕수육이 없더라. 탕수육만 없는 게 아니라 아예 건더기가 없어. 당근도, 파인애플도, 그 어떤 것도.”     


 역시. 완전 범죄를 꿈꾸던 소녀답구만. 나를 몰아붙이는 능력이 보통이 아니다.       

    

 “됐고. 우리 이제 시작하자.”

 “그래, 난 준비됐어.”     


 탕수육을 너무 많이 먹어 느끼함이 가득 채워진 내 배는 탄산을 원하고 있었지만, 여기 온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래의 페이스에 말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미래를 취조하는 건데... 음식은 원래 탐정인 내가 제공하는 건데..? 뭔가 뒤바뀐 것 같다. 어서 제자리로 돌아가야겠다.     


 “자, 일단 사실 확인부터 하나씩 해보자. 넌 그 날 체육시간이 시작하자마자 바로 양호실을 갔지?”

 “응. 맞아.”

 “왜 갔지?”

 “아프니까 갔지.”

 “어디가?”

 “양호 쌤한테 다 들은 거 아냐? 감기기운이 있었어.”

 “양호실에 가서 약을 받은 후에는 어디로 갔지?”

 “교실로 갔어.”

 “왜 운동장이 아니라 교실로 갔지?”

 “힘들었으니까. 쉬려면 운동장보다는 교실이 낫다고 생각했어.”

 “쉬려면 교실보다는 양호실이 더 편하지 않아?”

 “양호실에 하필 남희가 누워 있더라고. 내가 작년에 걔랑 이래저래 앙금이 쌓인 것이 있거든. 걔랑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교실로 간 거야. 이건 양호쌤한테 물어봐도 확인 가능한 사안이고.”    

 

 미래는 너무도 침착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근데 교실은 어떻게 들어갔어? 문이 잠겨 있었을 텐데.”

 “자물쇠 비밀번호 다 알잖아. 이런 쓸데없는 거 하지 말고 딱 하고 싶은 말만 해줬으면 좋겠다.”  

   

 오, 이 박력은 뭐지. 또 말려들고 있다.     


 “알았어.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 네가 했어? 네가 효진이 바이올린에 껌 붙였어?”

 “미안하지만 난 아니야.”


 예상보다 더 단호하게 미래는 아니라는 답을 했다. 표정과 동작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다. 눈동자를 왼쪽으로 굴린다거나 손으로 테이블을 만지거나 무릎을 긁거나 해야 하는데... 소설이나 만화에서는 용의자들이 그렇게 하던데... 미래는 아까부터 정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다시 공격에 나설 차례다.    

 

 “근데 미안하지만 내가 사실 사건당일 체육시간 복도 CCTV를 봤어.”

 “...”

 “범죄가 가능한 건 교실이 비어있던 체육시간 뿐이라는 건 잘 알지? 그런데 그 체육시간에 우리 교실에 출입한 사람은 병달이랑 너, 딱 둘 뿐이었어.”

 “병달이도 교실에 왔었어?”

 “응. 근데 병달이는 담배 가지러 간 거야. 교실에 머문 시간이 정말 3초도 안 됐어.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알지?”

 “용의자가 나밖에 없다는 뜻이네.”

 “그렇지. 똑똑하네.”

 “내가 네 칭찬받을 만큼 그렇게 공부 못하진 않아. 네 바로 밑에 있거든.”


 미래는 자신이 궁지에 몰렸다는 걸 알 텐데도 전혀 무너지지 않고 굳은 자세를 유지했다.      


 “미안하지만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어. 3층에 있는 우리 교실에 출입할 수 있는 방법은 교실 문을 통하는 것밖에 없지. 그리고 그 문을 통과한 사람은 단 2명. 그 중 1명은 범행 불가능. 나머지 1명이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이 나오지.”


 너무 쉬운 이야기였지만 마치 어려운 밀실살인이라도 푼 것처럼 나는 미래를 쏘아붙였다.     


 “아니, 미안하지만 여기에는 소름 돋는 반전이 있어.”

 “반전? 뭔데? 너 교실에서 뭘 본거야? 유령 같은 거? 아니면 살인 로봇?”

 “나이가 몇 갠데 아직도 유령 이야기나 하고.”

 “진짜 뭔데? 넌 뭘 알고 있는 거야?”

 “그냥 말해주면 재미없지. 근데 난 네가 모르는 결정적인 단서를 알고 있다고 했잖아.”


 미래는 승리를 확신한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미래의 눈망울은 더 커졌고 그 눈 속에는 확실함이 있었다.     


 “난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거든.”     

 미래는 진정 밀당을 할 줄 아는 사람 같다. 내 추리를 한 번에 엎어버리고는 이제 나를 약 올리기 시작했다.     

 “조건이 뭔데..? 어떻게 하면 말해 줄 거야?”

 “근데 넌 왜 이렇게 효진이 사건에 집착하는 거야? 효진이 좋아해?”


 미래는 갑자기 화제를 바꿨다.     


 “으잉? 좋아하기는 무슨... 그냥 반장이니까?”

 미래는 내 말을 믿는 얼굴이 전혀 아니다. 그렇다고 아직 친하지도 않은 미래에게 정혁이 이야기를 섣불리 할 수는 없다.


 “근데 범인을 봤어? 우리 반이야 아니야?”

 “내 소원 하나만 들어줘. 그러면 알려줄게.”

 “소원? 뭐 이런 걸로 소원씩이나... 알았어. 대신 너무 어려운 건 하지 말고.”

 “내 소원이 뭐냐면...”


 미래는 다시 한 번 입술을 살짝 내밀고 내 눈치를 봤다.  

   

 “네 얼굴 좀 천천히 봐보자. 한 1분 정도만?”

 맛있는 걸 사달라고 하거나 가방 들어주는 그런 소원일 줄 알았다. 그런데 내 얼굴을 본다고? 대체 왜? 내 얼굴이 잘생긴 건 알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여자는 처음이다. 심지어 범인을 추궁하는 이 자리에서...     

 “1분씩이나? 내 얼굴 봐서 뭐하게.”

 “네가 말 안 걸어줘서 네 얼굴 제대로 본 적이 없어. 오늘은 밥이라도 먹으니까 봤지.”

 “봤으니까 됐잖아.”

 “네가 하도 탕수육을 열심히 먹는 바람에 네 정수리 밖에 못 봤어. 제대로 네 얼굴 좀 보자.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얼굴을 보고 싶어. 반장선거 때 네 얼굴이 박보검 정도 되는 것처럼 말하길래 진짜 궁금했거든.”   

  

 미래는 별 걸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1분 정도야 뭐. 참 특이한 성격 같지만 범인이 누군지 너무 궁금하다. 내 잘생긴 얼굴 1분 보여주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알았어. 대신 꼭 범인이 누군지 말해줘야 해.”     

 미래는 대답도 없이 이미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나도 미래의 얼굴을 제대로 본 건 지금이 처음이다. 미래가 저렇게 생겼었구나...    

  

 하얗고 맑은 피부에 짙은 쌍거풀이 있는 큰 눈, 눈에 비해 작지만 오똑한 코. 입은 큰 편인 것 같은데 입술은 얇은 편이라 얼굴과 조화가 잘 되는 것 같았다. 미래 입술을 바라보고 있을 때 미래가 입술을 살짝 내밀었고, 그 입술을 보고 있던 내 얼굴은 나도 모르게 살짝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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