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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Jul 01. 2023

8화 - 눈맞춤 세계의 법칙을 확인하다

첫사랑과 끝사랑 사이 어딘가(소설)

 황급히 시선을 미래의 눈으로 옮겼다. 미래는 아까부터 큰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민망했지만 태연한척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나 역시 미래를 뚫어지게 봤다.     


 “아직 1분 안 지났어? 너무 오래 쳐다보는 거 아냐?”

 “나 59분에 시작했거든? 아직 59분인데?”

 “그렇네. 1분이 왜 이렇게 길지.”     


 미래를 더 쳐다볼 자신이 없는 나는 할 수 없이 천장을 봤다. 천장은 이런 벽지였구나... 이게 뭐람.   

  

 시간은 정말 더디게 흘러갔다. 미래는 1분만 내 얼굴을 본다고 했지만, 정말 한참동안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이제는 조금 민망해져서 그만하라고 말할까도 싶었지만, 범인의 정체를 듣기 위해 조금만 더 참기로 했다.  

   

 “됐어! 이제 충분히 봤다. 마음에 들었어.”

 “뭐가? 근데 진짜 너무 오래 본 거 아니야?”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몇 분이나 지났나 폰을 확인했다.     


 ‘어? 근데 왜 아직도 59분이지?’     

 폰은 여전히 59분이었다. 체감상 최소한 3분은 지났어야 되는 시간이었다.   

       

 그 때 불현듯 예전에 엄마와 눈싸움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도 지금처럼 시계가 멈췄는데... 그렇다면 티비도 멈추려나?     


 “미래야! 잠깐만! 잠깐이면 돼!”     

 난 황급히 문을 열고 밖을 봤다.    

  

 세상에나... 모든 것이 멈춰있었다. 사람도, 티비도, 공기도... 모두 다. 엄마와 함께 겪었던 그 날과 똑같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어렸을 때 그 날은 엄마와 단둘이 있어서 다른 사람도 멈춘다는 걸 몰랐다는 것이다. 나와 눈싸움을 한 상대를 제외한 모든 것이 멈추는 것이 이 눈맞춤 세계의 법칙인 것 같았다.     


 난 얼른 문을 닫았다. 오늘 제대로 처음 이야기를 나눈 미래에게 내 이상한 능력을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미안! 밖에 시계 좀 확인하느라고. 여기 뭔가 전파가 안 터지나 본데? 아직도 59분이야.”

 혹시나 미래가 폰 시계가 멈췄다는 걸 알고 밖에 나가볼까봐 미리 선수를 쳤다.     


 “전파가 안 터지면 전화는 안 되더라도 시계는 될 텐데... 이상하다.”

 “이따 밖에 나가서 확인해 보면 되겠지. 여하튼 이제 빨리 범인 말해줘. 누구야?”     

 얼른 화제를 돌렸다. 언젠가는 멈춘 시간이 다시 풀리겠지. 그 때까지 시간을 끌기에는 이만한 소재가 없다.      

 “사실은... 그게...”

 미래는 뜸을 들였다.   

   

 “효진인 것 같아.”

 “효진이? 효진이라고? 효진이가 자기 바이올린에다가 직접 껌을 묻혔다고?”

 정말 생각하지도 못한 이름이 튀어나와 깜짝 놀랐다.      


 미래는 조금 괴로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내가 양호실에서 우리 반 교실로 갔을 때 당연히 아무도 없는 줄 알았지. 체육시간인데 텅 빈 교실에 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잖아. 그래서 내 자리에서 가서 편하게 쉬고 있었어. 그런데 한 10분쯤 지났을까... 

 교실 뒤쪽에서 무슨 소리가 나더라고. 처음에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계속 소리가 나길래 갑자기 덜컥 무서워졌어. 뒤에서 소리는 계속 나는데 내 자리는 맨 앞자리라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려면 고개를 뒤로 돌려야 하는데 섬뜩해서 고개가 안 돌아가더라고... 

 그래도 너무 궁금한 거야. 대낮에 학교인데 뭐 이상한 것은 없겠지 싶어서 겨우 고개를 돌려 뒤를 봤더니 사람이 서 있는 거야. 나 그 때 진짜 소리 지를 뻔 했어. 내가 웬만한 거에 잘 안 놀라는데 그 때는 정말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어.”     


 미래는 그 때를 생각하며 소름이 끼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근데 사람이 너무 놀라면 소리도 안 나오는 거 알지? 진짜 숨이 멎은 상태로 3초 정도 지났을까... 그 사람 얼굴이 익숙하더라고. 흐릿하던 얼굴이 또렷해지는데... 그 얼굴이 바로 효진이었어.”

 “그럼 효진이는 원래 어디 있었던 거야? 처음에는 교실에 아무도 없었다며?”

 “아마 내가 교실 자물쇠 여는 소리를 듣고 교실 뒤에 있는 사물함 옆쪽에 숨어 있었던 것 같아. 난 맨 앞자리니까 뒤는 안보고 바로 자리에 가서 앉았고. 효진이는 내가 금방 나갈 줄 알고 일단 숨었던 것 같아.”

 “효진이는 복도 CCTV에는 없었는데... 그럼 효진이는 처음부터 체육시간에 운동장에 안 나오고 교실에 있었던 거야?”

 “효진이가 언제 교실에 들어왔는지는 모르겠는데 CCTV에 효진이가 없다면 네 말이 맞겠지.”

 “하긴 체육쌤은 원래 출석 같은 거 안 부르니깐. 효진이는 같이 다니는 친구가 없으니 효진이가 체육 시간에 안 나왔다는 건 아무도 몰랐을 테고.”

 “그렇지.”     


 미래는 그 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숨이 막히는지 크게 심호흡을 했다.   

  

 “효진이한테 여기서 대체 뭐하고 있었냐고 물어봤지. 그냥 몸이 안 좋아서 쉬고 있었다고 하더라고. 근데 여자로서 느낌이랄까... 전혀 아파보이지 않았거든.”

 “그래서 네가 먼저 교실에서 나왔어?”

 “솔직히 무서웠어. 내가 원래 겁이 별로 없는 편인데... 내 인생에서 손꼽히는 무서웠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 도무지 효진이랑 그 넓은 교실에서 둘이 못 있겠더라고. 그 때 효진의 눈빛은... 뭐랄까. 정말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거든. 그래서 서둘러 교실 밖으로 나왔지.”

 “분명 그 때까지 바이올린은 멀쩡했을테고?”

 “응. 바이올린 케이스가 열려져 있는 상태였던 걸 내가 봤거든. 효진이가 바이올린 확인하는가 보다 했는데...”

 “그렇다면... 네가 나온 뒤로 교실에 들어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결국 교실에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은 효진이밖에 없었다는 결론이 나오네. 효진이가 텅 빈 교실에서 바이올린 케이스를 열고 껌을 묻히려 했는데 하필 네가 들어왔고. 그래서 바이올린 케이스는 열려 있었던 거고. 네가 나간 후에 효진이는 아마 껌을 묻혔겠지.”

 “응. 이번 사건은 효진이의 자작극인 것 같아.”     


 범인을 알게 되니 마음이 더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심난해졌다. 차라리 미래가 범인이었으면 몰아붙이기라도 했을 텐데... 효진이의 자작극이라니.      


 마음이 답답해서 밖에 나가 바람을 쐬고 싶어졌다. 아, 근데 잠깐! 시간! 시간이 멈췄었지... 범인을 찾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      


 황급히 시계를 봤다. 시계는 8시0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멈춘 시간이 다시 흐르면서 1분이 지난 것이다.     

 몇 분이 지나야 눈맞춤 세계가 끝나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눈맞춤 세계가 끝나는 것이 법칙인 것 같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범인을 알았으니 이제 가자. 마음이 심난하네.”

 “뭐? 범인을 알았다고? 유준이 네가 어떻게?”

 미래는 깜짝 놀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응? 갑자기 왜 그래? 우리 지금까지 범인 이야기 하고 있었잖아.”

 “무슨 소리야? 난 아직 내가 알고 있는 걸 너한테 말 안 했는데? 내가 네 얼굴 1분 보는 소원 들어주면 범인 말해준다고 했잖아.”     


 분명 방금까지 효진이가 범인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아까 기억을 다시 떠올려보자. 효진이는 범인을 말하기 전에 내 얼굴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한참동안 내 얼굴을 봤고, 그 때 시간이 멈췄다는 걸 알았다.     

 시간이 멈춰있는 동안 미래가 교실에서 효진이를 봤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가 끝났을 때 멈춘 시간이 다시 흐른다는 걸 알았다.     


 눈맞춤 하고 있던 시간 동안의 기억은 눈맞춤이 끝나면 사라져 버린 것 같다. 그 시간은 나만 기억하고 있을 뿐 눈맞춤 상대는 기억을 못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엄마랑 눈맞춤 했을 때도 나중에 내가 TV가 고장났었다는 이야기를 엄마한테 했더니 엄마는 갑자기 뜬금없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냐고 했었다.      

 그렇다면 이건 오히려 기회다. 미래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니 내가 명탐정이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수수께끼는 이미 풀렸어. 훗.”

 “진짜?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다고?”

 “응. 물론이지.”

 “그 범인이 나라고 말하려는 거야?”

 “아니. 범인은 네가 아냐. 진범은 따로 있지. 진범은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완벽한 밀실 범죄를 완성했어. 장유준이라는 서랑고등학교 최고의 명탐정이 있는 반에서 사건이 벌어지지만 않았다면 이 사건은 영원히 미제 사건으로 남았을 거야. 하지만 이걸 어쩌나. 이 명탐정님은 이미 범인이 누군지 알아버렸는 걸.”

 “진짜? 범인이 누군데?”

 “범인은... 우리 반에 있지. 그리고 소름 돋는 반전이 있고. 넌 범인이 아니야. 범인은 교묘한 방법으로 널 유력한 용의자로 만들었지. 오늘은 여기까지만 말해주겠어.”

 “뭐야. 너 진짜 진범 아는 거 맞아?”     


 굳이 대답하지 않고 여운을 남겨뒀다. 진범이 효진이라는 걸 알게 된 이상 그 다음을 생각해야 했으니까. 현 시점에서 효진이가 범인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나와 미래, 이렇게 둘 뿐이다 미래가 굳이 먼저 세상에 진범을 밝힐 것 같진 않다. 내가 이 진범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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