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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Jul 06. 2023

9화 – 나와 너무 다른 세상 속의 너를 만나다

첫사랑과 끝사랑 사이 어딘가(소설)

 “미래야! 잠깐만! 나 먼저 나갈 테니까 천천히 짐 챙기고 있어.”     


 혹시 몰라서 미래보다 먼저 문을 열고 바깥 홀을 봤다. 우리가 있던 룸만 시간이 흐르고 바깥은 여전히 멈춰있으면 안 되니까. 다행히 세상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푹 쉬던 찰나 미래 이모와 눈이 딱 마주쳤다.     


 “유준이라고 했지? 많이 먹었어? 맛은 어땠어?”

 살짝 당황했지만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제가 지금까지 먹어본 탕수육 중에 가장 맛있었어요! 진짜 이 세상 최고였습니다! 저 다음에 부모님이랑 같이 한 번 또 올게요! 집에 가서도 계속 생각날 것 같아요.”

 “그래그래! 부모님이랑도 오고 미래랑도 언제든지 와.”

 “아... 그러고 싶은데 제 용돈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가격이라. 헤헤.”

 “별 걱정을 다한다! 유준이 너 혼자 와도 이모가 돈 안 받을 테니 생각나면 언제든지 와! 사실 미래가 이 식당에 남자친구 데리고 온 건 처음인데 그런 소중한 친구에게 이모가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어!”


 이모는 내게 인자한 미소를 보내주셨다.     


 인심은 곳간에서 나온다고 했던가... 고급스럽게 장식된 이 식당, 그리고 우아함과 이 식당을 소유한 이모는 4만 원짜리 탕수육도 선뜻 공짜로 줄 수 있는 넉넉함을 지니고 계신다. 정말 멋있다.    

 

 “대신 미래 좀 잘 챙겨줘. 너 공부도 잘한다면서? 미래도 진짜 열심히 하거든. 공부 계속 잘해서 형부 따라가야 할 텐데. 유준이 네가 미래랑 친하게 지내면서 공부도 같이 하고 그래. 같이 공부할 장소가 필요하면 여기 룸에서 공부해도 되고. 짜장면 냄새는 좀 나겠지만 그래도 한 번씩 분위기 전환이 필요할 때는 괜찮을 거야.”

 “네! 걱정 마세요! 제가 미래 잘 챙길게요!”


 이모가 주신 탕수육을 먹으면 머리 회전도 잘 될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나도 모르게 탕수육을 또 먹는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을 때 뒤에서 미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모! 유준이랑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열심히 해? 내 뒷담화라도 하는 거야?”

 “미래야! 이모는 유준이 마음에 든다. 얼굴만 잘생긴 줄 알았더니 넉살도 있고 성격도 좋네! 우리 집안에 들어와도 되겠는 걸?”

 “뭔 소리래. 유준아! 빨리 가자. 이모 나 간다!”

 “안녕히 계세요. 조만간 또 오겠습니다! 탕수육 진짜 최고예요! 최고!”      

    

 3월 초는 아직 쌀쌀하다. 꽃샘추위라더니 정말 한겨울 못지않은 칼바람이 불어온다. 엄마가 아침에 옷 하나 더 입고 가라는 걸 싫다고 했는데... 한창 열을 올리고 이야기하다가 나와서 그런지 더 몸이 시리다.     

 

 “미래야! 안 추워?”

 “너 혹시 추워?

 “춥기는 무슨. 이 정도 날씨면 반바지 입고도 다닐 수 있지.”

 “계속 허세 부릴래 아니면 내가 주는 손난로 받을래?”


 미래는 가방에서 손난로 하나를 꺼내며 가진 자의 미소를 보여줬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건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지. 꽃샘추위에 손난로는 못 참지!   

  

 “근데 너 아까 홀에서 뭐 봤어? 엄청 조심스럽게 문 열던데?”

 “아냐. 이모님 식당은 문도 고급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조심스러워지더라고.”  

   

 아직 내 비밀을 들키고 싶진 않다. 미래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미래야! 이제 집으로 갈 거지?”

 “응. 그래야지. 넌?”

 “내가 집까지 바래다줄게. 탕수육 값은 해야지.”

 “오, 좋은데?”

 “훗! 이 정도는 남자의 기본 매너지!”


 너무 비싼 밥을 얻어먹은 것 같아서 민망했는데 이렇게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으면 몇 시간 거리라도 데려다줄 수 있다.     


 “네가 좋다고.”

 “응?”

 “얼른 가자. 더 추워지기 전에.”     


 미래랑 이야기를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미래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니, 내가 여자를 모르는 건가...           

 미래를 바래다주는 길.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어갔다. 처음에는 꽤 춥다고 생각했었는데 미래와 대화가 잘 통해서인지 걷는 동안은 별로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만 미래 왼쪽 눈 아래에 붙어 있는 속눈썹을 떼주고 싶어서 조금 괴로웠을 뿐. 미래 얼굴에 손을 올릴 만큼 친한 사이는 아직 아니니까.    

 

 문제는 한참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미래의 집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미래가 혹시 티비에서 나오는 그런... 뭐랄까 언덕을 한참 올라가야 나오는 그런 집인가 하는 생각도 잠깐 해봤다.

    

 그렇게 10분을 더 걸었을까... 드디어 걸음을 멈춰 선 곳은 우리 도시 주민이라면 모를 수 없는... 최고급빌라 단지였다. 넓은 부지에 가구수도 몇 개 되지 않는다는 초호화빌라. 보안이 너무 엄격해서 절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는 바로 그곳이다. 날이 어두워진 저녁인데도 밖에서 보기만 해도 럭셔리함이 느껴졌다.


 이런 곳에는 대체 누가 사나 궁금했었는데 생각보다 가까운 사람이 살고 있었다.    

 

 “우리 집 다 왔어. 데려다줘서 고마워!”

 “여기서 학교 다니려면 꽤 멀지 않아?”


 난 부러운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써 만든 질문을 하나 던졌다.  

   

 “차로 가면 갈만해.”

 “버스로 다니는 거 아니었어?”

 “아... 평소에는 데리러 오셔. 기사분이.”     


 학교에서는 체육복이나 교복만 입고 있으니 전혀 몰랐다. 책가방으로 부를 과시하기도 어려울 테니. 미래 이모가 운영하는 식당이 정말 크고 고급스럽다는 생각은 했지만, 미래의 집도 그럴 줄은 몰랐다.    

  

 미래에게 무언가 말을 더 하고 싶었지만, 내 앞에 펼쳐진 호화로운 풍경이 나를 짓누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우리 집은 평균적으로 살고 있고, 나는 그것에 대해 특별히 불만 없이 살고 있었다. 사실 우리 집을 포함한 학교 근처 아파트들은 다 비슷비슷해서 비교를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정말 차원이 다르다. 안에 들어가서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여긴 하나의 성과 같다. 평범한 밖과 확연히 구분되는... 임금이 사는 그 성. 아마 미래의 집은 궁궐 같을 것이다.     


 돈은 당연히 좋다. 하지만 돈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내 잘생긴 얼굴과 100억 중에 어떤 걸 선택할 거냐고 물으면 난 두 번 고민하지 않고 잘생긴 얼굴을 선택할 거니까.


 하지만 이건 내가 돈이라는 어마어마한 존재의 무서움을 못 느껴봐서라는 걸... 눈앞에 펼쳐진 미래의 집을 보고 깨달았다. 미래가 사는 집, 미래를 태워다 주는 자동차와 운전기사, 비싼 이모 탕수육을 고민하지 않고 바로 사 먹을 수 있는 패기... 너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매우 씁쓸했다.


 사람들은 예로부터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것으로 크게 3가지를 이야기했다. 권력, 명예, 부. 불과 1,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부는 이 셋 중에 가장 낮은 순위였다. 사람들은 부자보다는 권력이나 명예를 가진 자를 더 부러워하고 존경했다.      


 하지만 이 구도가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예전에는 권력과 명예를 쥐면 부는 따라오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사법고시에 패스해서 부잣집 여자와 결혼을 하거나 정치인이 다양한 방법들로 부를 축적하는 식으로 권력과 명예를 가진 자들이 부까지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모든 건 전산화되고 기록되고 있고, 권력과 명예만으로 부를 얻는 건 전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판사라는 직업은 권력과 명예를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직업으로 얻는 월급만으로 부자가 되기는 어려워진 것이다.

     

 반면 부를 가진 자는 권력과 명예를 가질 수 있게 됐다. 돈이 많다는 것만으로 사람들의 부러움과 질투를 샀다. 부를 가졌다는 건 그만큼 자유를 가졌다는 것이다. 남들이 집안일하고 온라인 쇼핑몰에서 최저가를 찾을 시간에 부를 가진 자들은 그 시간을 온전히 자신을 위해 쓸 수 있으니까. 진정한 부자는 기회비용 같은 건 고려하지 않고 그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을 테니까.   

  

 건물주는 세입자 위에 군림했다. 수십, 수백 장에 달하는 서류를 꼼꼼하게 살펴보며 공정한 재판을 하는 것보다 아무 직업 없이 매달 거액의 임대료를 받으며 골프를 치러 다니는 사람에게 우리는 더 많은 존경과 부러움을 보내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라고만 여겼던 이 고급빌라가 사실은 오늘 나와 저녁을 같이 먹고 학교에서 내 앞에 앉아있는 친구가 사는 곳이라고 하니 씁쓸함과 부러움의 감정이 동시에 몰려온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오늘 탕수육은 정말 최고였다는 거다. 언제 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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