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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Jul 10. 2023

10화 – 충격적인 관계가 있었다

첫사랑과 끝사랑 사이 어딘가(소설)

 다음 날 하교 후 나는 정혁이와 치킨집에 갔다. 내가 효진이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할 거라는 걸 정혁이도 눈치를 챘는지 정혁이는 우리가 자주 가던 분식집이 아닌 치킨집에서 저녁을 먹자고 했다.      


 닭은 정혁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다만 정혁이는 비정상적으로 닭가슴살만을 좋아한다. 물론 치킨을 먹을 때도 그렇다. 정혁이는 닭다리와 닭날개를 모두 나에게 양보하고 가슴살만을 먹는다. 잘 이해는 안 되지만 내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전혀 없다.      


 한참 동안 대화 없이 치킨을 폭풍 흡입한 우리는 마지막 조각인 닭목이 2개 남았을 때 첫 대화를 시작했다.     

 “그래서 범인은 알아냈어?”

 “물론이지. 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것까진 아니지만 서랑고의 명탐정인 내가 범인을 못 찾을 리가 없잖아. 게다가 누구 부탁인데.”

 “범인이 누군데?”


 미래나 다른 친구였으면 더 뜸을 들였겠지만 정혁이는 이런 걸 질색한다. 그래서 내 대답도 정혁이에게 맞춘다.


 “효진이야.”

 “효진이라고?”


 정혁이는 정말 놀란 듯했다. 평소 얼굴에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정혁이 얼굴이 이렇게 깊은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걸 방금 처음 알았으니까.     


 “응. 효진이가 체육 시간에 운동장에 안 가고 교실에 몰래 남아 있다가 스스로 자기 바이올린에 껌을 바른 것 같아. 복도 CCTV도 확인했고, 목격자 증언도 확보했어.”

 “아...”     


 정혁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운동하는 몸에 좋지 않다며 탄산은 입에도 안 대던 정혁이가 목이 탔는지 내 앞에 있던 콜라를 벌컥벌컥 마셨다.     


 “효진이가 범인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목격자.”

 “목격자가 누군데?”

 “왜?”


  미래라고 바로 말해줄 수도 있었지만, 정혁이가 어떤 입장인지 몰라 일단 말하지 않았다.

 정혁이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콜라를 한 잔 더 마시고 내게 말했다.   

  

 “내가 효진이 사건에 왜 집착하는지, 효진이랑 어떤 관계인지 설명해 줄게.”     

 정혁이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렇다.     



 정혁이는 효진이와 한 집에서 같이 살고 있었다. 둘이 동거하는 사이냐고? 한 집에 같이 살고 있으니 틀린 말도 아니긴 하다. 둘은 이종사촌이었다.


 정혁이의 이모이자 효진이의 어머니는 헌신적인 가정주부 스타일이었다. 이모부는 음료 관련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에너지 음료 붐이 일어나면서 사업이 대박을 쳤다. 효진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명품은 다 그때 산 것이라고 한다.     


 효진이 아버지는 사업이 바쁘다는 핑계로 집에 잘 안 들어왔는데,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일 때문이 아니라 두 집 살림을 차려서였다. 효진이 아버지는 효진이가 사달라는 건 다 사줬다. 효진이는 아버지의 부재를 명품으로 보답받고 싶어 했던 것 같고, 효진이 아버지는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는 미안함을 딸에게 돈으로 갚고 싶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잘 나가던 사업은 금방 망해갔다. 에너지 음료 붐은 급격하게 식어버리고 아메리카노 열풍과 함께 카페가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잘 나가던 사업은 빚덩이로 바뀌었다. 그 와중에 효진이 아버지가 두 집 살림을 차린 것이 발각됐다. 그런데도 효진이 어머니는 이제라도 효진이 아버지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려고 하셨다. 다시 열심히 일하면 빚도 갚을 수 있을 거라고 효진이 어머니는 믿었다. 하지만 효진이 아버지는 두 집 살림을 하던 그 여자와 함께 해외로 도피해 버렸다. 효진이 어머니와 효진이를 그대로 남겨두고. 그 많은 빚과 함께.     


 건물을 두 채나 가지고 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여유 있던 정혁이 아버지는 이런 효진이네 사정을 듣고 금전적으로 도와주려고 했다. 하지만 효진이 어머니는 모든 것이 자신의 불찰이라며 차마 그 돈을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대신 한 가지 간곡한 부탁을 했는데... 그건 바로 효진이를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만 보살펴 달라는 것이었다. 효진이 어머니는 돈을 벌어야 해서 고등학생인 효진이를 챙겨주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효진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며 효진이만이라도 정상적으로 고등학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혁이 아버지께 부탁을 했던 것이다.     


 이종사촌인 정혁이와 효진이는 어려서부터 가까이 살면서 교류가 많았던 터라 효진이가 정혁이네 집에 들어가서 사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정혁이네 집은 넓어서 효진이를 위한 방 하나쯤은 남아 있었고.     

 그래도 혹시 효진이가 정혁이 집에서 살고 있다는 소문이 학교에 퍼지면 곤란할 수 있으니 둘은 등하교 시간을 다르게 하고 학교에서도 최대한 대화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바이올린 사건이 터지자 정혁이가 내게 범인을 꼭 찾아달라고 의뢰해 온 것이고.      


 “유준아, 나는 이 사건을 그냥 조용히 묻었으면 좋겠다. 내가 처음에 효진이 바이올린 상태를 봤을 때... 내가 범인 찾아서 진짜 죽여버리려고 했거든? 너 잘 알잖아. 내가 한 번 주먹 쓰면 어떻게 되는지.”


 물론이다. 너무너무 잘 안다. 저 주먹 때문에 우리 학교가 평화를 유지하고 있는 거다.  

    

 “솔직히 학교라는 공간에서 있을 만한 범죄는 아니잖아. 심지어 내가 있는 반에서. 효진이와 우리 반을 위해서 범인 어떻게든 찾아서 손가락 더 이상 못 움직일 때까지 때려주려고 했는데... 그 범인이 효진이라니...”


 정혁이는 내가 아껴두었던 마지막 콜라마저도 마셔버렸다.     


 “그래. 나도 바이올린에 붙은 그 많은 껌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너와 효진이의 관계를 듣고 또 한 번 충격을 받았고, 이 사건의 범인이 효진이 본인이라는 것에 제대로 충격을 받았어. 처음에는 범인을 알게 된 이상 이 사건을 어떻게든 제대로 종결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학교 분위기도 여전히 어수선하고, 이런 일이 또 발생하면 안 되니까.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 사건은 가해자도 효진이고 피해자도 효진이야. 누구를 굳이 처벌할 필요는 없다는 거지. 그리고 너도 집에서 같이 살면서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효진이의 멘탈 상태가 정상은 아닌 것 같아. 이런 상황에서 굳이 이 사건을 더 들쑤셔봤자 효진이만 더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어.”


 나는 어젯밤에 정리한 의견을 정혁이에게 말했다.     

 

 “내가 효진이랑 한집에 살면서도 효진이가 이렇게까지 무너져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 아버지한테 잘 이야기해서 효진이가 다시 정상으로 잘 돌아올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해야 할 것 같아. 그러니까 이 사건은 그냥 범인을 아무도 모르게 빨리 잘 정리했으면 좋겠어. 유준아, 부탁할게.”

 “내 생각도 너랑 같아. 이 사건을 아이들 머릿속에서 빨리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목격자 입단속은 걱정하지 말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유일하게 사건의 진범을 아는 미래가 있었다. 나는 정혁이와 헤어지고 미래에게 잠깐 볼 수 있냐고 연락했다. 다행히 미래가 아직 집에 가지 않아서 우리는 잠깐 만났다.     

 

 나는 미래를 만나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다. 미래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미래와 같이 탕수육을 먹고 대화를 나누면서 미래의 깊고 진실된 모습을 느껴왔다. 만약 미래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진범을 아는 사람이었다면 효진이 사건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미래가 다른 애들과는 다르게 생각이 깊은 애라서 내 뜻을 충분히 이해할 거라 믿었다.     


 미래는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줬고, 효진이와 정혁이의 상황을 이해한다고 했다. 내 생각에 동의한다면서 미래 역시 진범의 존재는 밝히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효진이와 미래가 교실에 마주쳤고 미래가 나간 후에 효진이는 바이올린에 껌을 칠했다. 현재 그 바이올린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범인이 밝혀진 바는 없다. 증거나 증인이 없는 상황에서 범인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범인을 알고 있는 사람이 딱 한 명 더 있다. 바로 범인인 진효진,      


 효진이는 본인이 자작극을 했다는 사실을 미래가 알 거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효진이는 체육시간 처음부터 끝까지 교실 안에 있었고 오직 미래에게만 그 사실을 들켰으니까.


 그런데 효진이는 왜 지금까지 미래에게 아무런 말이나 행동도 하지 않은 걸까? 미래가 언제라도 체육 시간에 교실에서 효진이를 봤다는 걸 실토한다면 자작극이라는 것이 밝혀져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할 텐데.      


 그 의문이 해결된 건 사건이 일어나고 한참 지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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