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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Jun 07. 2023

5화 - 범인은 바로 이 안에 있다

첫사랑과 끝사랑 사이 어딘가(소설)

 2교시 체육시간을 떠올려보자. 체육 쌤은 여느 때처럼 공을 던져주며 자유 시간을 줬다. 난 당연히 신나게 축구를 했고. 골대 바로 앞에서 후지산 폭발슛을 날린 영만이에게 욕을 열심히 날렸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난 헤트트릭을 했고 우리팀은 이겼지만. 그런데 대체 그 체육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난 체육시간에 축구에 몰두하느라 다른 애들이 체육시간에 뭘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범인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 반 모든 친구들의 알리바이를 확인해야 한다. 일단 나와 같이 축구 하던 애들은 알리바이가 있으니 제외. 하지만 축구를 하지 않은 나머지 애들은 한명씩 알리바이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최대한 많은 증인과 증언이 필요했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공놀이를 하지 않고 등나무 아래 그늘에 앉아있던 애들을 탐문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숫자가 10명은 돼 보였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명탐정의 시작은 확실하고 꼼꼼한 조사다. 수수께끼는 내가 푼다.     


 현선이와 함께 등나무 아래 앉아있던 친구들의 전수조사를 끝냈다. 그리고 그걸 토대로 추리한 결과, 용의자는 2명으로 압축됐다.    

  

 먼저 임병달. 내가 굳이 말을 섞고 싶지 않은 놈이라 현선이가 대신 병달이의 알리바이 조사를 하고 왔다. 나쁜 일에 이 놈이 빠질 수는 없다. 나쁜 일이 있는 곳에 언제나 거짓말처럼 병달이가 있다.    

  

 어라? 근데 병달이는 분명 축구하고 있었는데... 병달이 말로는 축구를 하던 중에 몰래 담배를 피우러 갔단다. 이게 가능한가? 스포츠 정신이라고는 1도 없는 놈이다. 아오!     


 다음으로 미래. 등나무 아래 있었던 친구들의 증언에 따르면 체육 시간에 미래가 가장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웠다. 미래는 몸이 안 좋아서 양호실에 간다고 선생님한테 말하고 운동장을 떠났다고 했다.      


 차미래는 내 앞자리에 앉았는데도 아직 한번도 제대로 말을 못 나눠봤다. 미래의 평상시 인상은 살짝 차가워 보인다. 게다가 키도 커서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면이 있다. 쉬는 시간에도 대개 자리에 앉아 있고 다른 친구들하고도 말을 많이 나누는 것 같지 않다. 낯을 가리지 않는 나조차도 미래는 좀 어렵다.      


 진짜 신기하게 모든 반에 이런 친구는 있다. 이런 친구들만 특별히 뽑아서 반을 나눈 것도 아닐 텐데. 아니면 반에서 가장 조용한 친구가 모두 미래처럼 되는 건가.     


 지금 이런 건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미래한테 가서 확인해 봐야 한다. 미래가 범인이라고..? 아무리 노력해도 상상이 잘 안 된다. 저렇게 조용한 아이가 바이올린에 껌을..? 싸이코패..? 아니야. 내가 미래랑 안 친할 뿐이지 미래에게 악감정은 전혀 없다. 무죄추정의 원칙. 탐정의 기본으로 돌아가자.      

    

 다음 날 나는 등교하자마자 나보다 먼저 교실에 와 있는 미래에게 가서 말을 걸었다.   

  

 “저...안녕?”

 “안녕 반장.”

 “내가 반장이긴 한데 내 이름은 유준이야.”

 “알아. 그래도 반장 자격으로 온 것 같으니 지금은 반장.”

 “너 원래 이렇게 말 잘했어?”

 “못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근데 왜 말을 안 했어? ”아무도 말을 안 걸어주던데? 내가 굳이 먼저 말 걸고 싶지는 않았고. 반장인 너도 나한테 말 안 걸었잖아. 난 반정선거 때 너 뽑았는데.”

 “아 미안.. 진짜 미안.”

 “이런 걸로 사과할 필요는 없고. 근데 왜? 효진이 때문에?”

 지금 미래와 제대로 처음 이야기를 나누는 건데, 미래는 뜸 들이는 것도 없이 내게 바로 용건을 확인했다.     

 “응. 맞아. 미안하지만 너의 알리바이를 확인해야겠어.”

 “그럴 줄 알고 내가 준비해 뒀어.”

 “뭐야 너? 완벽한 계획 범죄?”


 나는 진심을 담아 물어봤지만 미래는 웃음을 터뜨렸다. 

    

 “너 추리소설 그만 봐야겠다. 너 1등으로 들어왔다면서 공부 안하고 소설만 보니? 전교 1등 다시 안 할 거야? 안하면 내가 하고.”

 미래는 미리 준비한 것처럼 날 몰아붙였다.


 “좋아. 그럼 체육시간에 어디서 뭐했는지 말해줘.”

 “난 몸이 안 좋아서 체육 쌤한테 말하고 양호실에 갔어. 거기서 약 받아서 먹고 잠깐 쉬었다가 운동장으로 돌아갔어.”

 “그래? 근데 조금 이상한데? 양호 쌤은 네가 양호실에 5분 정도만 머물다가 갔다고 했어. 혹시 몰라서 내가 어제 양호 쌤을 찾아가서 물어봤었거든.”     


 양호실을 갔다는 친구가 미래라고 해서 양호쌤을 먼저 만났다. 미래와 대화를 하는 건 아직 어색하고 어렵다는 느낌이라 사전 정보가 필요했으니까. 미래에게 먼저 말을 걸 용기가 쉽게 안 나는데 내가 가진 정보마저 너무 없으면 정말 힘들 것 같았으니까.     


 “애들 말로는 네가 자리를 비운 시간이 30분 정도는 됐다고 했어? 맞지? 자, 나머지 25분 동안에는 어디서 뭘 하셨을까?”     


 미래와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는 미래가 범인이라는 건 전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저렇게 조용한 아이가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미래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의심은 아주 조금씩 자라났다. 미래는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고 활기찼으니까.      


 그러고 보니 우리 반 2등이 미래였구나. 꼴에 반 1등이라고 2등이 누군지조차 몰랐다니... 미래는 여러모로 내게 충격을 계속 안겨주고 있다.     


 “그게... 묵비권을 행사해도 될까?”

 “묵비권? 일이 점점 커지는 구만. 네가 굳이 유력한 용의자를 자처하는 것 같은데.”


 땡.땡.땡.     


 하필 이 타이밍에 1교시 시작 종이 울렸다.      


 “이따 학교 끝나고 잠깐 보자. 나도 학원 빠지고 시간 내는 거니까 너도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어. 정황상 내가 유력한 용의자지만 난 네가 모르는 결정적인 단서를 알고 있거든.”

 “진짜? 알았어. 이따 봐. 수업 잘 듣고.”     


 학원을 안 가면 엄마에게 엄청 혼나겠지만, 어차피 지금 이 상태로 학원을 가도 공부가 될리 없다.           

 하루 종일 수업을 어떻게 들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러다 전교 1등은커녕 반 1등도 못할 것 같다.           

 사실 내가 효진이 사건에 집착했던 건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정혁이 때문이었다.     


 효진이 사건이 발생하고 난 다음 날, 평소 학교에서는 말수가 많지 않던 정혁이가 나를 따로 불렀다. 내가 정혁이를 알고 친해진 이후로 정혁이가 학교에서 이렇게 나를 따로 불러낸 것은 처음이라 정혁이가 어떤 비밀 이야기를 할까 기대했었다.      


 “유준아, 효진이 바이올린 사건. 누가 그런 것 같아?”

 정혁이는 대뜸 이렇게 물어봤다.     


 “글쎄. 아직은 너무 단서가 없네. 근데 왜?”

 “범인을 꼭 찾아야 해. 범인 찾는데 내 도움 필요하면 말해줘. 내가 다 도와줄게.”

 “꼭 찾아야 해? 왜?”


 내가 평소 알던 정혁이와 너무 달라서 생각해봤다. 효진이 사건의 범인을 찾는데 정혁이가 왜 이렇게 적극적인지...     


 “너 혹시 효진이 좋아해?”     


 효진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면 정혁이가 굳이 효진이 사건에 이렇게 발 벗고 나설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정혁이는 원래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놈이다. 물론 정의 실현을 위해 병달이와 같은 양아치들의 불량스러운 행동을 정혁이가 모두 없애버리긴 했지만 이 사건은 그것과는 결이 다르니까.     


 “효진이 안 좋아해. 그런 건 아닌데 여하튼 범인 꼭 찾자. 범인 찾고 나면 내가 나중에 이유를 설명해 줄게. 꼭 찾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거든.”


 정혁이의 효진이에 대한 집착. 좋아하는 것이 아닌 다른 이유에서의 집착. 그 다른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남의 일에 무관심한 정혁이가 이렇게까지 나서서 범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할 정도면 이것만으로도 내가 이 사건에 집착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나는 정혁이의 가장 친한 친구니까. 정혁이는 폭력의 위험으로부터 나를, 아니 우리 학교를 든든하게 지켜줬다. 이제는 내가 정혁이에게 보답할 차례다.     


 내가 효진이 사건에 집착하는 두 번째 이유는 내 스스로와의 자존심 싸움 같은 것이었다. 평소 추리 매니아로서 만화책과 소설책을 통해 수많은 범죄를 접해왔다. 물론 현실은 조금 다르겠지만, 그래도 이건 추리 매니아로서 내가 반드시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론은 충분히 섭렵했으니 이제 드디어 실전에 투입될 차례다.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어. 범인은 바로 이 안에 있어.”


 <소년탐정 김전일>이라는 만화에서 주인공인 김전일이 범인의 트릭과 정체를 모두 파악하고 나서 하는 이 말을 꼭 한 번 해보고 싶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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