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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Jul 17. 2023

13화 - 미래의 아버지를 만나다

첫사랑과 끝사랑 사이 어딘가(소설)

 난 어렸을 때부터 눈이 건조했다. 습한 여름에는 괜찮다가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눈이 빡빡해졌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인공눈물 같은 건 존재하지 않을 때다. 엄밀히 말하면 존재했겠지만 내 주변에서 아무도 그런 걸 쓰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날씨가 건조해서 그런가 보다 했지. 엄마한테 눈이 건조하다고 말하면 티비 그만 보고 일찍 자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눈을 보호하려는 노력 대신 오기와 끈기를 가지고 열심히 텔레비전을 봤다. 만화는 왜 그리도 재밌던지... 일요일 아침 일찍 나를 깨울 수 있는 건 만화뿐이었다. 그걸 보겠다고 아침 8시에 일어나서 졸린 눈을 비비며 끝까지 만화를 봤으니깐.      


 이런 상황에서 내게 눈싸움 같은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하더라도 10초를 넘기기가 어려웠다. 하물며 30 초라니... 물론 정확하게 세본 건 아니지만 그쯤 되는 것 같다.    

  

 처음으로 엄마와 눈맞춤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건 그때가 한여름이었고, 난 세수를 하고 난 직후였고, 티비를 보는 대신 야구를 하는 것에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엄마를 한 번 이겨보겠다는 못된 승부욕도 있었고.     


 고등학생이 된 지금, 문제는 정말로 내 눈이 건조해졌다는 것에 있다. 원래도 눈이 건조한 편인데 공부량은 늘어났다. 게다가 봄이라는 계절은 건조의 끝판왕 계절인데 가습기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교실에 오랜 시간 앉아 있는 환경은 눈에 매우 치명적이었다.      


 ***     


 “미래야”

 “응?”     


 오늘따라 너무 눈이 빡빡해서 도무지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다.  

    

 “혹시 인공눈물? 뭐 그런 거 알아? 오늘따라 눈이 너무 건조해서. 오늘 건조주의보인가 그렇다던데. 인공눈물 쓰면 괜찮다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얼핏 들은 것 같아서.”

 날 실없는 사람으로 쳐다볼 것 같았던 미래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낸다.     


 “이거?”

 미래는 길쭉하게 귀엽게 생긴 걸 내 눈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이거 눈에 뿌리면 조금 괜찮아질 거야. 일회용이니까 한 번 쓰고 버리면 돼. 여기 꼭지 부분은 눈에 닿으면 안 돼. 처음 한 방울은 버린 후에 쓰도록 하고!”

 미래는 전문가처럼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인공눈물을 한 방울 넣으니 살 것 같은 기분이다. 내 눈에 오아시스랄까...


 “눈 뜨지 말고 눈을 감고 있어 봐. 눈물이 눈에 잘 스며들도록.”

 눈을 뜨지 못해서 미래의 얼굴을 못 봤지만 매우 인자한 의사 선생님 같은 표정이었을 것 같다.     


 “근데 이거 비싼 거 아냐? 한 번 쓰고 버리는 건 너무 아까운데...”

 미래는 서둘러 인공눈물 뚜껑을 닫아줬다.


 “원래는 한 번 쓰고 버리는 게 맞아. 세균에 감염될 위험성이 있으니까. 그래도 이번에는 우리 둘 다 손 깨끗한 상태에서 썼으니까 괜찮을 것 같지만. 인공눈물 나한테 많이 있으니까 편하게 써. 필요하면 또 줄게.”     

 미래 덕분에 오아시스는 마르지 않았다.     


 “나도 눈이 건조한 편이라서 항상 가지고 다니거든.”

 “그런데 인공눈물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미래는 대답 대신 제안을 했다.

    

 “눈이 계속 건조하면 나랑 병원 한 번 갈래? 검사해보면 눈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거든.”

 “그래?”

 “너 어제도 눈 빨개져서 힘들어하던데? 조만간 시간 한 번 내서 가자.”     


 미래는 내 경쟁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 성적으로도 그렇고, 공부하는 모습을 봐도 그렇다. 하지만 미래는 진정으로 날 위해주는 것만 같다. 내가 눈이 침침해서 수업을 잘 못 듣는 것이 낫지 않나? 이건 너무 못된 생각인가...?      


 괜히 혼자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옆에 앉은 미래를 봤다. 미래의 큰 눈망울과 하얀 피부는 내 못된 생각을 혼내주는 것만 같았다.   

  

 ***     


 미래를 따라 병원에 간 건 바로 그다음 날이었다. 미래는 오늘 밖에 시간이 안 된다며 나를 끌고 갔다. 1반과의 절체절명의 축구 시합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 없으면 안 된다던 친구들도 미래의 단호한 눈빛에 바로 포기했다. 이런 줏대 없는 것들... 오늘 나 없이 이길 수 있나 보자.     


 미래와 함께 간 병원은 일반 안과가 아니라 시내에 있는 종합병원이었다.


 “근데 검사가 그렇게 어려운 거야? 이렇게 큰 병원까지 와야 해? 나 막 수술받고 그래야 되는 거야...?”

 어렸을 때부터 엄살이 심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던 나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잘 따라와.”

 이럴 때면 미래는 내 짝꿍이 아니라 선생님 같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원 꼭대기 층에 도착한 우리는 복도 끝을 향해 걸었다. 이 층은 사무실과 원장실 밖에 없는 층인 것 같은데... 대체 왜 여기로 가는 거야... 궁금했지만 아까 미래가 보여줬던 단호한 표정이 떠올라 군말 없이 따라갔다. 아, 혹시 미래가 날 옥상에서 미는 거야...? 미래의 큰 그림..? 갑자기 호흡이 가빠져온다.     

 이런 내 못된 생각을 깨는 노크소리와 함께 미래는 바로 문을 열었다. 아직 대답을 못 들었던 것 같은데 미래는 거리낌 없이 문을 열었다.     


 “아빠! 나 왔어!”

 “우리 딸 왔구나. 시간 딱 맞춰서 왔네.”


 아빠..? 갑자기 아빠라고..?

 아직 상황 파악은 잘 안 되지만 일단 아빠라고 하니 인사부터 드려야겠다.


 “안녕하세요. 미래 친구 장유준이라고 합니다.”

 “응. 네가 유준이구나. 공부도 잘한다더니 얼굴도 잘 생겼는데!”


 아빠라는 분은 매력적인 중저음 목소리로 나를 반겨주셨다. 심지어 키도 나보다 훨씬 크다. 미래가 키가 큰 건 이유가 있구나... 내가 미래보다 더 크다고 말하고 싶지만 저번에 이모 탕수육 집에서 거울에 얼핏 우리 둘이 비친 모습을 봤을 때 우리 둘은 막상막하였다.     


 “아빠! 일단 검사받고 다시 올라올게!”

 “그래! 내가 지금 연락해 둘게. 다녀와.”     


 미래는 다시 나를 끌고 엘리베이터로 이동한다. 그런데 방금 나온 방은 분명 원장실이었다. 그렇다는 건... 미래 아빠가 이 병원의 병원장?! 이렇게 큰 병원의 병원장이라고?!     


 “미래야 저기...”

 “뭐가 궁금한지 아는데 일단 검사부터 받자. 예약 꽉 차 있는데 겨우 시간 만든 거니까 서둘러줘.”


 미래는 오늘 하루 종일 단호박이다.


 시력검사는 떠있는 풍선을 보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꽤 많은 기계로 검사를 했다. 눈에 바람이 들어오는 것도 있었고, 빨간색 불빛을 뚫어지고 보고 있어야 하는 것도 있었다. 선생님이 눈을 감지 말고 계속 뜨고 있으라고 하는데 너무 힘들었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아버릴 뻔했지만 미래의 단호한 목소리가 또 들려올 것 같아 축구할 때보다 더 최선을 다했다.     


 겨우 검사를 마치고 의자에서 동영상 강의를 듣고 있는 미래 옆으로 갔다.


 “다했어? 이제 아빠 만나러 올라가자.”

 “근데 너희 아빠가 이 병원 병원장이셔?”


 아까부터 너무너무 궁금했던 질문을 이제야 했다. 이번에는 대답해 주겠지.


 “응. 맞아. 어제 우연히 네 눈에 대해 말하게 됐는데 널 굳이 여기로 데려오라고 하시더라고.”

 내가 미래에게 특별한가..? 병원장이나 되시는 분이 친히 나를 불러주시고... 미래는 내 표정에서 궁금함이라도 읽었다는 듯 설명을 덧붙였다.     


 “내가 남자에 관해서 먼저 이야기한 걸 우리 아빠가 처음 들으셔서 그런 것 같아. 우리 아빠가 약간 딸바보 스타일이거든... 나랑 좀 안 어울리지?”     

 확실히 미래가 애교가 많거나 그런 스타일은 아닐 것 같다. 그래도 미래 같은 딸이 있으면 아빠로서 좋긴 하겠다.     


 “우리 아빠가 겉으로는 다정해 보여도 너 엄청 경계하고 있을지 모르니 참고해.”

 난 미래랑 그냥 짝꿍일 뿐인데... 그래도 괜히 긴장된다.     


 “왔구나. 여기 앉아서 음료라도 한 잔 하자.”

 미래 아버지는 인자한 표정과 함께 우리에게 자리를 권했다.   

  

 “아빠가 검사 기록 한 번 훑어봤는데 특별한 문제는 없다. 사실 한창 건강할 너희 나이 때에 문제가 생기진 않아. 굳이 문제를 찾아보자면...”

 갑자기 병원장님이 내 눈을 빤히 쳐다본다. 아... 어쩌지.   

  

 “유준이라고 했나?”

 “네. 맞아요.”

 “눈을 자주 깜빡이나?”

 “음... 제가 그런 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내가 너 들어올 때부터 봤는데 눈을 거의 깜빡이지 않더라고. 뭐 여기 온다고 긴장하거나 그럴 일은 없을 테고...”


 ‘아니요! 긴장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대답 대신 눈을 한 번 크게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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