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휴리릭 Aug 09. 2023

21화 - 두 번째 눈맞춤에 도전하다

 “유준아! 근데 너 요새 좀 이상한 거 알아? 나랑 짝꿍 할 때까지만 해도 너 괜찮았던 것 같은데 요새 너 보면 너답지 않아.”

 “그렇게 보였어? 하긴... 너랑 짝꿍 할 때가 정말 평화로웠던 것 같다. 라영이 때문만은 아니지만 라영이랑 짝꿍하고 나서 뭔가 일이 많긴 했어.”

 “근데 단지 라영이 문제는 아닌 것 같아. 너 자신 스스로에게 뭔가 이상한 거 느껴지는 거 없어?”     


 미래는 예리하게 파고든다. 사실 정말 고민이 많다. 다만 그 고민을 이야기하고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다. 엄마는 내 편이 아니라고 느낀 지 오래다. 부모님을 제외하니 친구들밖에 없는데... 이런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을만한 친구가 마땅치 않았다. 좋은 친구가 없어서가 아니다. 정혁이도, 영만이도, 나라도 모두 좋은 친구고 날 위해 기꺼이 고민을 들어줄 친구다. 문제는 내 고민이 정말 심각하다는 것에 있다.


 왜 사는가... 무엇 때문에 사는가...     


 이게 내 고민이다.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니 당연히 공부가 될 리가 없었다. 공부를 해서 무엇할까...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를 가면 인생은 성공으로 끝나는 건가? 공부를 잘해도, 못해도 내 인생에 대한 길과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와의 갈등도 결국 이것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엄마는 내가 왜 공부를 잘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주지도 않고 내게 공부를 잘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물론 내가 공부를 잘할 때는  갈등이 존재하지 않았다. 엄마가 싫은 소리를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성적이 떨어지자 엄마는 바로 날 채근했고 난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분명한 건 난 엄마를 위해서 공부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그렇다면 난 무엇 때문에 공부를 하는 걸까? 공부를 잘할 때는 이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냥 공부했고 성적이 잘 나왔으니까. 이런 고민을 하는 애들은 다 공부하기 싫어서 핑계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성적이 떨어진 지금... 나도 핑계를 만들고 있다. 동기부여가 없는 행위는 절대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미래야!”

 “응?”

 “우리 눈싸움 한 번 안 할래?”

 “눈싸움? 갑자기 여기서 눈싸움?”

 “응! 진 사람이 후식 쏘기 어때?”

 “알았어. 시험 끝난 기념으로 한 번 하자. 대신 졌다고 울기 없이!”     


 시험을 잘 봐서 기분이 좋은 미래는 특유의 입술 내밀기와 함께 눈싸움을 준비했다.     


 눈맞춤 없이도 미래와 진지하게 대화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고민을 미래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 미래를 못 믿어서가 아니다. 혹시나 내 이런 심각한 고민을 듣고 미래가 조금이라도 힘들어지는 것이 싫다. 미래에게 계속 멋진 친구로 남고 싶은데 이런 고민을 털어놓을 수는 없다.     


 눈맞춤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상대방 폰 번호 마지막 뒤 2자리 수가 중요하다. 그 시간만큼 눈맞춤을 버텨야 눈맞춤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저번에 미래와 눈맞춤에 성공했을 때 우연히 시계를 봐뒀던 것이 법칙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25초가 지난 뒤에 시계 초침이 멈췄으니까. 미래의 폰 번호 뒷자리는 7125다.


 엄마와 첫 눈맞춤을 성공할 때 엄마의 폰 번호 뒷자리는 5707이었다. 그때는 내가 어려서 눈을 오래 뜨고 있기 어려웠겠지만 7초만 눈맞춤을 유지해도 눈맞춤 세계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확실하진 않다. 내 추측과 추리에 기반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오늘은 확실하게 테스트를 해보려고 한다. 미래의 폰 번호는 바뀌지 않았고 마지막 뒤 2자리는 25다. 내 추측이 맞다면 미래와 눈맞춤을 25초 동안 하면 눈맞춤 세계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25초. 내게 쉬운 숫자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저번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성공할 수 있다. 특히 이 중국집 룸은 이상하게 건조하지 않다. 이모의 섬세함이 느껴진다. 게다가 미래가 잠깐 화장실 간 사이에 인공눈물도 내 눈에 가득 넣어줬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래 미래야! 준비 시작!”

 혹시 미래가 먼저 포기해버리지 않도록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시작했다. 시작이라는 말과 함께 폰 스톱워치 버튼도 미래 몰래 눌렀다.     


 10초. 미래는 편안해 보인다. 하지만 난 위기가 벌써 찾아온다. 오늘 시험 볼 때 긴장하느라 눈에 힘을 바짝 주고 있어서 더 그럴 것이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이겨내야 한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얼만데 겨우 25초를 못 버티고 무너질 수 없다.     


 20초. 이제 5초 남았다. 미래가 내 옆자리에 앉던 그 순간을 떠올린다. 그 눈빛, 그 표정, 그 말투...      


 25초. 성공했다. 폰 스톱워치는 25초에서 더 이상 넘어가지 않고 있었다. 내 추측이 맞았다.

    

 “와 못하겠다! 내가 졌다.”

 미래는 그저 피식 웃는다.


 “눈이 다 뻑뻑하네. 미안한데 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눈 좀 씻고 와야겠어.”

 눈맞춤은 성공한 것 같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해둬야 한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예상대로 모든 것은 멈춰있었다. 음식을 나르는 미래 사촌 오빠의 무뚝뚝한 표정도, TV도 모두 그대로 멈췄다. 화장실에 가려 했지만 어차피 가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 적당히 시간이 지났다는 생각이 들 때쯤 다시 룸 안으로 들어갔다.   

  

 “미래야! 너 오늘 좀 예쁘네?”

 어차피 미래는 기억하지 못할 테니 한 번 던져본다.


 “갑자기 왜 이래.”     

 “미래야 있잖아. 사실 나 고민이 있어. 생각보다 심각한..?”

 내 표정을 읽었는지 미래의 표정도 확 바뀐다.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그래 유준아. 오늘 시험도 끝난 날이고 시간도 많으니까 우리 이야기 좀 하자. 나 너 이야기들을 준비 돼있어.”     

 미래는 눈을 반짝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근데 유준아 잠깐만. 내가 밖에 나가서 마실 거라도 좀 더 가져올게. 이야기가 길어질 수도 있잖아.”


 그건 절대 안 된다. 세상이 멈췄다는 걸 미래가 알아서는 안 된다. 그러면 내가 원하는 대화를 할 수 없다.     


 “괜찮아! 여기 물 있잖아. 이거면 충분해. 괜히 밖에 나가면 흐름만 깨져. 나 이야기 시작한다?”     

 이야기를 꺼내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내 이야기는 바로 시작됐다.     


 “미래야! 넌 공부가 즐거워? 왜 공부해?”

 미래에게 먼저 질문을 던졌다. 나의 가장 큰 고민에 대한 답을 미래는 들려줄 수 있을까...?   

  

 “공부가 어떻게 즐겁겠어. 그냥 하는 거지 뭐. 고등학생이니까 공부하는 거지. 아빠는 의사니까 환자를 진료하는 거고. 엄마는 주부니까 집안 살림하는 거고. 난 학생이니까 공부하는 거야.”

 “그런데 하기 싫을 때도 있잖아? 그리고 학생이라고 해서 꼭 공부를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당연히 하기 싫을 때 있지. 누구나 다 하기 싫을 때 있는 거 아닌가? 매번 즐거운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 그냥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거기에 대해서 심각하게 의문을 제기해 본 적도 없고.”


 미래는 마치 세상을 오래 산 할머니처럼 대답했다.


 “내가 만약 아이돌 연습생이었으면 매일 늦게까지 노래 연습, 춤 연습 하고 있었겠지.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미래가 아이돌이라... 그건 도무지 상상이 안 된다.

    

 “그럼 너는 공부가 괜찮아서 일반 고등학교에 온 거야? 아니면 그냥 남들 다 가니깐 온 거야?”

 “당연히 고민해 봤지. 그런데 내가 남들보다 특별히 잘하거나 더 좋아하는 건 찾기 어려웠어. 음악, 미술... 어렸을 때부터 여러 가지 것들을 해봤거든.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아이들과 함께 하는 거였던 것 같아. 어렸을 때부터 보육원 같은 곳에 봉사활동을 종종 갔었거든. 그때 정말 행복하더라구. 그래서 지금 내 꿈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야. 그 꿈을 이루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지?”


 채용 면접도 아닌데 미래는 내 질문에 막힘없이 또박또박 대답했다.  

   

 “유준아! 넌 꿈이 있어? 넌 왜 공부하는데?”

 드디어 내 고민에 대해 제대로 풀어놓을 때가 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20화 - 성적은 떨어져도 탕수육은 맛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