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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Aug 14. 2023

23화 - 미래 생각이 났다

 시험이 끝난 다음 날, 대부분 느슨해져 있는 지금... 나의 공부욕은 불타오른다. 수업 시간에 한 단어도 놓치지 않고 집중한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는 이번 시험 오답 분석부터 들어간다. 갑자기 공부 스케줄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1등은 원래 내 자리였다는 걸 라영이 옆에서 꼭 증명하고 싶다.      


 그런데... 기말고사 때도 내가 라영이 짝꿍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고 보니 세 번째 짝꿍을 정하는 시간도 가까워오고 있었다.     


 미래에게 반 1등을 제대로 축하해주지 못한 것 같아 뒤늦게 미래에게 카톡을 했지만 미래는 읽지 않았다. 1등 한 기념으로 축하 파티라도 했을지 모를 일이다. 어쩔 수 없다. 미래에게는 미안하지만 난 다시 새로 시작해야 한다. 시험 끝난 다음 날이지만... 그래서 아직 대부분 그 분위기에 취해 놀고 있지만... 나는 오답 노트 작성부터 시작한다.      


 어느 부분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알아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시험이라는 건 물론 실력이 기본 바탕이 되지만 운이라는 요소를 절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운이라는 것도 확률을 높여야 할 필요가 있다. 5개 중에 1개를 찍는 것과 2개 중에 1개를 찍는 건 확률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최상위권의 순위를 결정하는 건 바로 이 한 문제의 찍기에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번 중간고사는 어땠는가... 일단 2개가 아니라 3개 중에 찍어야 하는 문제가 두 문제나 있었다. 요행으로 33%의 확률을 뚫고 한 문제를 맞혔지만, 다른 문제는 틀렸다. 3개 중에서 한 개를 찍는다는 건 사실상 그냥 운에 맡기는 것과 다름없다. 이 두 문제 모두 일반사회 과목이다. 선행학습이 되어 있는 과목도 아니고 암기를 필수로 하는 과목이다. 그만큼 내 공부량이 부족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일반사회 선생님이 재미없다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 미래는 일반사회를 만점 받았으니깐. 난 일반사회 앞쪽 범위는 다 맞았다. 최근에 배운 곳에서 두 문제를 모두 틀렸다. 미래의 옆자리에 앉아있을 때 확실히 공부도 더 열심히 한 건 맞는 것 같다.      

     

 그렇게 독서실에서 한참 이번 시험에 대한 분석을 하고 집으로 출발한 시각이 독서실 마감 시간인 밤 12시였다. 오래간만에 집중해서 공부하고 맞이한 밤공기는 상쾌했다.     

 

 현재 스포츠는 분석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축구도, 야구도 모두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상대를 이기기 위한 전략을 수립한다. 내 공부도 마찬가지다. 냉정한 분석과 비판이 있어야 다음 시험을 이길 수 있는 전략을 세울 수 있다. 이제 다시 반 1등, 아니 전교 1등을 목표로 간다.   


 ***

       

 멀리 우리 집이 보인다. 다행히 불이 꺼져있다. 밤 12시까지 버티면서 공부하기를 잘했다. 오늘 기분 좋게 공부했는데 엄마를 만나면 하루가 다시 엉망이 될 것만 같았는데 다행이다.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건 오늘보다는 내일이, 내일보다는 모레가 더 나을 것 같다.

     

 살.금.살.금. 조용히 문을 열고 내 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장유준! 엄마랑 이야기 좀 하자.”

 헐... 엄마는 불을 끄고 안 주무시고 계셨다. 나와 대화를 하기 위한 전략인가? 난 완벽하게 상대의 전술에 당했다.      


 “알았어. 근데 나 좀 씻고.”

 얼른 욕실로 들어갔다. 잠시 시간을 벌었다. 어차피 맞아야 할 매라면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하지만... 그냥 매가 너무 싫다. 분명 오늘 하루가 괜찮았는데...     


 씻고 나와서 옷을 입고 있는데 폰 진동이 울렸다. 엄마를 만나고 와서 읽을까 하다가 궁금한 마음에 확인해 봤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연락해 올 사람이 없는데...     


 “유준아! 톡을 이제 봤네. 축하 고마워! 다음 시험에는 더 멋지게 경쟁하자. 오늘 엄마랑 싸우지 말고 ㅎㅎ (이미 싸웠나?ㅠ) 잘 자고 내일 학교에서 봐☆”     


 미래는 절대 읽씹 하지 않았다. 미래의 따뜻함이 담긴 폰을 들고 거실로 갔다. 이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적과 대결을 펼쳐야 한다.    

      

 “장유준! 너 이리 와봐!”     

 엄마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최대한 고개를 푹 숙이고 터벅터벅 걸어갔다. 내 방에서 거실까지 딱 세 걸음이면 되는데 그 세 걸음을 최대한 느리게 걸었다.      


 공부를 많이 못해서 성적이 떨어진 건 맞다. 스스로 반성도 많이 했다. 하지만 이게 엄마한테 사과할 일인 줄은 잘 모르겠다. 엄마를 위해서 공부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래! 너무 쫄지 말자!     

 “아들! 이 성적이 말이 돼?”

 엄마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듣고만 있었다.     


 “전교 3등도 아니고 반 3등? 이게 진짜야? 전교 수석으로 입학한 애가 반 3등을 한다고? 대체 뭐가 문제야? 학원을 바꿔줄까? 아니면 반 분위기가 별로야? 반을 바꿔줄까?”   

  

 엄마는 무슨 학교 이사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한다. 학교 이사장이라도 멀쩡한 학생의 반을 바꾼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 하지만 여기서 대꾸해 봤자 엄마의 화만 돋울 거라는 걸 경험으로 잘 알기에 계속 침묵하기로 한다.     


 “장유준! 말 좀 해보지? 왜 이렇게 된 거지?”

 이유를 말하자면 많다. 하지만 그걸 구구절절 다 설명할 수 없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엄마는 다 핑계라고만 생각할 것이다.     


 “내가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겠다. 진짜 내가 너 때문에 창피하다 창피해.”

 반 3등이 창피하다고? 그럼 나보다 성적이 낮은 친구들의 엄마들은 어떻게 살지? 그리고 솔직히 나 전교 수석 입학했을 때 엄마가 한동안 목에 힘 잔뜩 주고 다닌 건 왜 생각 안 해주시지? 억울하다.     


 엄마랑 이제 눈맞춤을 할 수도 없다. 엄마가 폰을 바꾸면서 번호도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엄마의 폰 뒷자리는 07에서 72로 바뀌었다. 72초 동안 눈을 안 감는 건 불가능하다.    

 

 “엄마. 내가 제일 힘들어. 나도 생각하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해. 나중에 이야기하자.”

 어쩔 수 없이 회피하는 쪽을 선택했다. 오늘 모처럼 기분이 좋았는데 엄마랑 대화를 하면 그 좋았던 기분이 다 날아갈 것만 같다.      


 “장유준! 너 진짜 이럴 거야?”

 엄마의 화난 목소리를 뒤로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문도 잠갔다. 당분간 집에 일찍 들어오는 건 피해야겠다.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공포의 대상이 됐다. 좋은 시절에는 누구나 따뜻하고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암흑기가 찾아왔을 때 사람은 본색을 드러낸다. 차라리 무뚝뚝하고 무관심한 아빠가 훨씬 낫다.      


 아빠는 며칠 전 용돈 좀 달라는 여동생의 애교에 5만 원을 바로 꺼내주셨다. 초등학생에게 5만 원이라니... 우리 아빠도 미래 아빠 못지않은 딸바보다. 그 장면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는 내게도 만원을 주셨다. 고등학생인 나에게는 무려 만원을 주셨다.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짜장면 한 그릇은 건졌다. 동생이 얄미우면서도 고마웠다. 어쨌거나 동생이 없었으면 만원도 없었을 테니까. 물론 그 만원이 끝이었다. 아빠는 내게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전교 2등을 해도 제대로 된 칭찬 한 번 안 해주던 아빠라서 익숙해졌다. 괜찮다.     


 하지만 엄마는 아빠와 완전히 다르다. 엄마는 원래 직장을 다녔다고 한다. 나를 낳고도 계속 직장을 다녔지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육아 휴직은커녕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배려를 전혀 안 해줬을 시절이었으니까. 엄마는 일찍 출근해서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고 한다. 엄마는 어떻게든 버티고 싶었었나 보다.     


 난 친척집을 전전하면서 키워졌다. 할머니, 이모, 이모할머니까지... 내가 거쳐 간 집만 해도 다섯 군데는 된다. 엄마 얼굴을 제대로 보는 건 주말뿐이었다. 하지만 그 주말도 엄마는 피곤해서 휴식이 필요했겠지.


 결국 엄마는 동생을 낳고 직장을 그만두셨다. 그 이후로 나와 동생을 키우는데 엄마의 인생을 바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서울대를 가는 것으로 인생을 보상받으려고 한다.     


 휴. 미래 생각이 났다. 미래에게 카톡 할까 했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라 참았다. 미래의 얼굴이 스치운다.          


 ***


 “야! 김라영! 너 잠깐 나 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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