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결혼이라는 것 자체가 귀해진 건지, 아니면 제가 나이가 들고 인간관계가 좁아진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인 결혼식 자체가 오랜만이었습니다.
결혼식에 한 번 다녀오려면 최소 3,4시간 정도는 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결혼식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많이 왔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최근에 결혼식장에 가면 아이들을 보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특히 초등학생 이전의 영유아는 정말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이 자체가 귀해지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아이의 돌발행동(?)이 눈에 띄는 부담도 생겼습니다. 아이가 어리다면 결혼식을 축하해 주러 왔지만 아이를 보다가 정작 결혼식은 제대로 못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축의금 부담도 있을 겁니다. 코로나를 전후해 예식장 식대를 포함한 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결혼식에 가서 식사를 하려면 축의금을 얼마를 해야 할지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됩니다.
아이들 스케줄이 많아진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주말에 다녀야 할 학원도, 배워야 할 것들도 많다 보니 그걸 빠지고 결혼식장에 오는 게 쉽지 않겠죠. 5살만 되어도 이미 주말에 여러 곳을 들려야 하는 코스를 짜놓은 부모들이 많다고 하니까요.
결혼식 사회를 봤습니다
이번 결혼식은 일반 하객이 아닌 사회자로 참석했습니다. 제 결혼식 때 멋진 축하 동영상을 만들어줬던 후배가 제게 사회를 부탁하더라구요. 결혼식이라는 인생의 가장 큰 행사에 저를 사회자로 불러주면 전 당연히 하겠다고 대답합니다. 제 친한 사람의 결혼을 더 크게 축하해 줄 수 있는 영광스러운 자리니까요.
제가 결혼식 사회를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제가 소개를 시켜줘서 결혼한 커플부터 시작해서 꽤 여러 번 사회를 봤습니다. 제가 대학교 때부터 각종 모임에 열심히 참여하고 사회 보는 걸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결혼식 사회를 보는 것까지 이어진 것 같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결혼식 축가도 딱 한 번 한 적이 있네요.
친하게 지내던 그룹 내에 한 명이 결혼하게 되었는데, 그 친구가 저와 다른 여자애를 콕 집어 축가를 요청했습니다. 무려 듀엣곡을 말이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고 이 그룹 사람들끼리 노래방을 자주 갔었긴 했지만 그건 몇 년 전의 일이었거든요. 게다가 직장 생활을 한 이후로부터는 노래를 부를 기회가 급격하게 줄어들다 보니 노래 실력도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구요.
그냥 일반 행사라면 괜찮은데 결혼식 축가라고 하니 부담이 됐습니다. 일생에 가장 큰 행사를 망치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섰죠.
신부가 될 친구는 노래도 지정해 줬습니다. 서인국과 정은지가 불렀던 ‘응답하라 1997 OST’ <우리 사랑 이대로>라는 곡으로 딱 정해줬습니다. 가사는 축가에 딱 맞게 달달하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언젠가 우리 (먼 훗날) 늙어 지쳐가도 지금처럼만 사랑하기로 해
내 품에 안긴 채 눈을 감는 날 그날도 함께해
먼 훗날 삶이 힘겨울 땐 서로 어깨에 기대기로 해요
오늘을 기억해
근데 저와 같이 지목을 받은 친구는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그 정도 노래는 별거 아니라며 걱정 말라고 하더라구요. 듀엣곡이라 서로 합을 맞춰봐야 했지만 친구는 너무 바빴습니다. 결국 결혼식 전에 딱 한 번 만나서 노래를 맞춰봤습니다. 그것도 코인노래방에서 말이죠.
“너희 노래 실력은 내가 익히 잘 아니까 걱정 마. 잘 부르는 걸 기대하는 게 아니라 의미 있는 노래가 나한테 필요한 거야. 그러니 마음 편히 가지고 불러줘!”
신부의 말대로 저와 함께 노래를 불러야 하는 그 친구는 정말 마음을 편히 가졌고, 결혼식 전날 음주까지 하시고 결혼식 30분 전에야 식장에 도착했습니다. 근데 정작 노래는 제가 더 못한 것 같네요. 음이 높아 음이탈을 조심하느라 정작 박자와 감정을 놓쳐 버린 것 같았어요.
다만 제 노래 실력과는 별개로 제가 축가를 부르는 동안 신부가 눈물을 흘리길래 ‘내 노래가 그 정도인가..?’라는 생각을 잠깐 해봤네요.
저는 축가보다는 사회를 보는 게훨씬 마음이 편한 것 같습니다.
결혼할 운명은 있다..?
제가 결혼식 사회를 봤던 커플들은 평범한 커플도 있지만 특별한 커플도 있었습니다.
이번 결혼식은 사귀고 나서 딱 10년을 채우고 결혼식을 하는 커플이었습니다. 10년을 연애하면 어떤 기분일지, 그렇게 10년을 연애하고 결혼하면 어떨지 상상조차 잘 되지 않네요.
예전에 잠깐 사귀었다가 헤어졌는데 그 뒤로 8년 만에 다시 만나서 결혼을 한 커플도 있습니다. 남자가 연하거든요. 처음 사귈 때는 남자가 스무 살이라 여자 눈에는 남자가 어린애처럼 보였나 봅니다. 남자가 맨날 게임하느라 여자친구를 챙기는 것도 조금 소홀히 한 것 같구요. 그런데 8년이 지나고 다시 만났더니 듬직한 남자이자 직장인이 되어있었던 거죠. 심지어 게임을 안 하는 대신 요리를 잘하는 남자가 되어 있었답니다!
한쪽 집안의 격렬한 반대로 결혼을 못하고 5년을 연애만 하다가 결혼한 커플도 있습니다.
자식이 더 좋은 조건의 사람과 결혼하기를 바라는 건 부모의 공통된 마음이겠죠. 하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이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조건을 결국 이겼습니다.
제가 소개를 시켜줘서 결혼한 커플도 있습니다. 소개팅은 아니고 몇 명이서 같이 만나는 자리에 제가 초대를 했었거든요. 둘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서로 호감이 있는 듯했는데 흐지부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 1년 정도 지났을까요... 신기하게도 비슷한 시기에 이 둘이 저에게 상대의 안부를 물어보더라구요. 제가 바로 연락해서 다시 만나보라고 다리를 놓아졌고 그렇게 둘은 결혼을 했습니다.
이런 걸 보면 정말 결혼할 운명이라는 것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우연과 인연과 의지가 합쳐져야만 결혼이 가능한 경우도 많으니까요. 아주 조금이라도, 아주 살짝이라도 틀어졌으면 이뤄지지 못했을 사람들도 많이 있으니까요.
웃음이 가득했던 결혼식
사회를 봤던 결혼식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결혼식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선생님인 친구 결혼식이었습니다. 몇 년 전이라 지금과는 또 다를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선생님 결혼식에 학생들이 많이 오곤 했었습니다. 이 결혼식에도 교복을 입은 하객들이 30명은 되어 보이더라구요.
와... 정말 학생들은 다르더라구요! 진짜 이런 결혼식 사회라면 돈을 주고서라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정말!
학생들은 웃음에 정~~말 관대했습니다. 제가 말만 하면 빵빵 터지고, 까르르 웃더라구요. 전에 사회 봤던 대본과 크게 다르지 않은데 하객이 조금 바뀌었다고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멘트가 꼬여도, 축가 음이탈이 생겨도, 이 학생들은 그저 웃어줬습니다. 다소 진지한 결혼식을 많이 보다가 세상 유쾌하고 즐거운 결혼식을 진행해 보니 이게 진짜 결혼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결혼도, 출산도 전보다 쉽지 않은 시대가 된 건 맞는 것 같습니다. 결혼을 해도 재산을 별도로 관리하고 10원 단위까지 더치로 계산하는 요즘 부부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 <눈물의 여왕>이라는 드라마에서도 나왔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정말 사랑한다면, 영원히 내 사람으로 두고 싶다면 결혼을 통해 법적으로 묶어(?) 두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능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렇기에 결혼이라는 제도가 이렇게 오랜 역사동안 이어져 온 것 같기도 하구요.
물론 결혼은 현실이라 연애 때의 환상이 깨지는 경우도 많고, 서로에게 실망하고 상처 주는 일도 생깁니다 당연히. 하지만 결혼은 가족이 되는 것이고이런 게 가족이니까요.
놀라운 우연과 인연의 연속이라 생각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어서 오세요! 유부의 세계로! 환영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