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연애소설] 그 돌아서는 뒷모습에...

뒷모습을 보며

by 휴리릭

창우는 오늘도 마음을 굳게 다집니다. 이제 수능까지 얼마 안 남았습니다. 수능이 다가온다는 건 예지를 만날 날도 가까워진다는 거니까요.


작년 이 맘 때쯤, 창우는 초등학교 반창회에서 예지를 오랜만에 봤습니다. 수능이 1년 남은 기념으로 오랜만에 얼굴을 보자고 만든 자리였죠. 초등학교 때 예지와 짝꿍을 하며 잠깐 좋아했었지만, 예지와 다른 중학교로 가면서 얼굴을 볼 기회가 없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보게 된 거죠.

몇 년 만에 만난 예지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창우는 예전 감정이 되살아 나는 것을 느꼈죠.



창우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예지를 다시 만나기까지 몇 년이 걸렸는데, 신기하게 반창회 때 예지를 만난 이후로 몇 번 더 길거리에서 예지를 마주쳤습니다. 그때마다 창우는 예지를 집까지 바래다줬어요. 고3이라 서로 바쁜 시기라 따로 만나기는 어려웠지만, 집까지 바래다주는 시간만큼 예지랑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니까요. 창우의 집과 예지의 집이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라서 예지도 특별히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구요.


autumn-gf4ea5378e_1920.jpg


예지의 집 앞에서 헤어질 때마다 예지는 수능이 끝나면 제대로 만나서 놀자고 했죠. 창우는 그 말을 남기고 집으로 걸어가는 예지의 뒷모습을 보며 다짐했어요. 진짜 공부 열심히 할 거라고. 수능 끝나고 자랑스럽게 예지를 만날 거라고 말이죠.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고3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어요. 슬럼프에 빠질 때도 있었고,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때도 있었죠. 하지만 큰 욕심 없이 평범하게 고등학교 생활을 하던 창우에게 예지가 남기고 간 추억과 흔적은 강렬했어요. 흔들릴 때마다 창우는 예지를 생각하며 마음을 굳게 먹을 수 있었거든요.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버텨서 멋지게 예지 앞에 서고 싶었어요. 예지 앞에 당당하게 서는 그날을 기다리며 창우는 다시 치열하게 공부했어요.


드디어 찾아온 수능날. 창우는 혼신의 힘을 다해 수능을 봤지만,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어요. 원래 계획은 예지를 만나 홀가분하게 수다를 떠는 것이었는데... 창우는 수능을 망친 것 같아 도저히 예지에게 연락할 용기가 나지 않았죠. 혹시라도 예지가 연락을 기다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예지 집으로 연락할 마음은 생기지 않았어요. 핸드폰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수능 끝나고 같이 핸드폰을 만들러 가자는 예지와의 약속이 떠올랐죠.


창우는 예지를 만나기 위해 정말 치열하게 공부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니 허무했어요. 수능 끝나고 예지를 만날 날을 수천번도 더 그렸었는데...




수능 이후 예지와는 메일만 몇 번 주고받았어요. 예지도 수능을 망친 것 같더라구요. 1년을 기다렸는데 두 달을 더 못 기다리겠냐는 생각으로 창우는 예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대학 입시에 최선을 다했어요. 수능을 망친 줄 알았는데 그 해 수능이 어려웠다는 기사가 나왔고 창우는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었거든요. 수능날 예지를 만나는 건 실패했지만 대학교 합격하는 날 예지를 반드시 만나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그리고 그리던 최고의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죠.


창우는 그 대학교 합격증이 예지에게 마음을 고백할 수 있는 자격증이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친구들에 비해 특별히 더 잘난 것이 없는 것 같으니 공부로라도 다른 남자들을 이겨야 예지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죠. 공부는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으니까요. 최고의 대학을 가면 예지가 창우의 마음을 받아줄 것만 같았어요. 예지를 향한 마음만큼 진심을 다해 공부를 해서 좋은 결과를 얻으면 예지도 그 마음을 알아줄 것만 같았죠.


하지만 이게 너무 순수한 생각이라는 걸... 창우는 예지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 몰랐어요. 합격자 발표가 나고 이틀 후, 2월의 어느 날 창우는 드디어 예지를 만났어요. 꿈에 그리던 그날이 온 거죠.


children-g117a76ed3_1920.png


예지와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영화도 봤어요. 그렇게 오후 한 나절을 온전히 함께 하고 예지를 집으로 바래다주는 길. 창우가 1년 넘도록 숨겨왔던 마음을 고백하려던 찰나, 예지가 창우에게 먼저 말을 건넸죠.


"창우야, 서울 가서도 대학교 생활 재밌게 해. 내가 질투 날 만큼. 난 수능 망쳐서 재수하려고. 오늘 마지막으로 놀고 다시 열심히 공부할 거야. 그래도 네가 오늘 재밌게 해 줘서 큰 힘이 됐어."


그렇게 웃으며 예지는 집으로 걸어갔어요. 창우의 눈에는 또다시 예지의 뒷모습만이 보였죠. 오늘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데... 오늘을 얼마나 기다려왔는데... 오늘만큼은 마지막까지 예지의 뒷모습이 아닌 옆모습을 보며 나란히 걸어가고 싶었는데...


순수한 창우는 혼자서만 열심히 노력해도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 믿었나 봅니다. 멀어져 가는 예지의 뒷모습을 보며 창우는 그 자리에 한없이 서 있습니다. 올려다본 하늘은 맑고도 어둡습니다. 예지를 붙잡지도, 마음을 보여주지도 못한 채... 고백을 허락하지 않은 하늘을 원망하며 창우는 그 자리에 한없이 서 있습니다.


girl-g4e1c614ab_1920.jpg




뒷모습을 보며

(원곡 : 슬픈 혼잣말 song by 임창정)


슬픈 노래 들었죠

내 눈에 다시 눈물 고였죠

눈물 속에다 그대 모두 담아서

흘리려 했는데


나의 슬픔 모두를

나의 눈물 모두 만들어준

그대를 원망하는 게 맞을텐데

자꾸 그리워요


기억하나요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 지워지지 않았나요

되돌릴 수는 없는 시간들이죠

눈물만 있을 뿐이죠

앞으로도 없을 그런 시간들이죠



많이 좋아보여요

야위어 가는 나완 다르게

추억의 무게

흘린 눈물의 무게가

나는 버거운데


잊었나봐요

내가 주었던 노래 편지도

그대는 관심 없겠죠

몰랐었겠죠

울고 있던 내 마음

무너진 슬픈 가슴을

허락하지 않은 하늘 원망했단 걸


그 돌아서는 뒷모습에

다시는 못 볼 그대의 미소

붙잡지도 외치지도 못한 사랑

내게만 남아있었죠

그날


보고 싶어요

단 한 번만이라도

내 마음 말하고 싶어

우연일지라도 그대 내게 한번만

나의 사랑 전할 수 있도록

기횔 줄 순 없나요


이전 06화[초단편연애소설] 그날도, 오늘도 같은 눈물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