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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리릭 Aug 31. 2021

포스트 김연경수지효진은?!

2021 KOVO컵 관전평

 2021 KOVO컵(2021 의정부·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이 끝났습니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여자배구이기에(브라질과의 준결승전, 최고 1분 시청률 40.9%). 올림픽 직후에 치러지는 이번 컵 대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정규리그와는 다르게 용병이 출전하지 못했고,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의 피로도와 부상 등 여러 변수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비시즌 동안 선수 이적과 새로운 선수 영입 등으로 각 팀마다 선수의 구성이 조금씩 바뀌었기에 어떤 팀이 더 좋은 모습으로 바뀌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컵 대회였습니다. 6개 팀이 2개 조로 나눠져서 컵 대회가 진행되었고, 일주일간 이어진 대회는 현대건설(감독 강성형)의 우승으로 끝이 났습니다.





공은 둥글다


 '공은 둥글다'라는 스포츠 격언이 있죠. 이번 대회에도 딱 적용될 수 있는 말입니다. 현대건설은 지난 정규리그 꼴찌를 차지한 팀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감독을 영입하고 절치부심한 끝에 이번 컵 대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것도 GS칼텍스를 상대로 말이죠.

 GS칼텍스는 지난 시즌 트레블(컵대회, 리그, 챔피언 시리즈)을 달성한 강팀입니다. 현대건설은 이런 GS칼텍스를 상대해서 3-0 완승을 거두었습니다. 세트스코어만 보면 쉽게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매 세트가 접전이었습니다. 1세트 25-23, 2세트 25-23, 그리고 마지막 세트는 듀스 접전까지 간 끝에 28-26으로 끝나면서 현대건설이 우승컵을 차지했습니다.


 GS칼텍스는 잔실수가 아쉬웠습니다. 1세트 24-23에서 서브를 실패하면서 세트를 내줬고, 2세트에는 22-17로 지고 있던 경기를 24-23까지 따라잡았지만, 또다시 서브를 실패하면서 허무하게 세트를 내줬습니다. 서브는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물론 승부처인만큼 강하게 어려운 서브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런 서브를 넣다가 서브를 실패해 버린다면 매우 허망하죠. 세트를 상대팀에게 거저 주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기본기가 탄탄하고 주전과 백업의 격차가 가장 적은 강팀인 GS칼텍스가 결승전에서 서브 때문에 2세트를 연속으로 내준 것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워낙 강한 팀이기에 이번 컵 대회의 실패를 교훈 삼아 정규리그에는 지금보다 더 강한 GS칼텍스로 돌아올 거라 기대해 봅니다.


2021 KOVO컵 현대건설 우승! / 이미지 출처 : 한국배구연맹 인스타그램



포스트 연경수지효진을 찾아라!


 김연경 선수는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거기에 오랫동안 우리나라 대표팀을 지켜주던 김수진, 양효진 선수도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죠. 우리나라는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를 해야 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김연경 선수의 존재감이 너무 강렬했고 그만큼 강했지만, 이제는 김연경 선수가 없는 국가대표 팀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번 컵 대회 MVP는 현대건설의 정지윤 선수가 차지했습니다. 올림픽 출전의 피로감이 있었을 텐데도, 뛰어난 활약으로 현대건설의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정지윤 선수는 2018-2019 시즌 신인왕을 차지한 선수입니다. 기존에는 센터나 라이트로 뛰다가 이번 대회에 레프트로 변신했습니다. 레프트는 서브 리시브를 받아야 하는 포지션이기에 여러 가지로 부담이 되는 자리입니다. 상대팀이 넣는 서브를 일단 잘 받아야 우리 팀 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이번 컵 대회에서 상대팀은 정지윤 선수에게 집중적으로 서브를 넣었습니다. 종종 위기도 있었지만, 정지윤 선수가 잘 이겨냈고 MVP까지 차지했습니다.


2021 KOVO컵 MVP 정지윤 / 이미지 출처 : 한국배구연맹 인스타그램


 "한국 배구 발전을 위해 정지윤 선수를 꼭 레프트로 키워달라!"

 김연경 선수가 현대건설 강성형 감독에게 연락해서 이렇게 부탁했다고 합니다. 김연경 선수가 그만큼 정지윤 선수의 가능성을 높이 샀고, 정지윤 선수와 국가대표 팀에 애정이 있기 때문이겠죠.


 "계속 받고 연습하면서 울기도 많이 울어야 할 것 같다"

 정지윤 선수가 MVP 수상 소감으로 한 말입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김연경 선수도 처음에는 키가 작아서 수비 연습을 미친 듯이 했다고 하죠. 그리고 그 시절이 있었기에 키가 커져서 공격을 하면서도 수비도 잘할 수 있었고,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었죠. 정지윤 선수 역시 충분한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신인상도 받을 수 있었고, 김연경 선수의 애정도 받을 수 있겠죠. 실제로 정지윤 선수의 스파이크를 보면 그 파워가 남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스파이크에 제 가슴까지 후련해질 때가 많습니다.

 정지윤 선수는 2001년생으로 도쿄올림픽에 참가한 대표 선수 중 나이로 막내였습니다. 주전은 아니었지만, 김연경 선수를 포함한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기를 치르면서 정지윤 선수가 많이 배우고 느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린 만큼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는 시간과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정지윤 선수가 이번 컵 대회 MVP를 계기로 앞으로 더 성장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레프트가 되어주기를 응원하고 기대해봅니다.


 이번 컵 대회에서는 정지윤 선수뿐만 아니라 신인 최정민 선수(IBK 기업은행), 실업팀에서 옮겨 온 최윤이, 변지수(흥국생명) 선수 등의 활약이 돋보였습니다. 정규리그에서도 계속 이 활약을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선수들이 기존 선수들과 경쟁 속에 서로 발전하고, 그러다 보면 연경수지효진을 대체할 선수들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노장은 살아있다!(feat. 황연주 선수)


 이번 현대건설의 우승에 또 한 명의 주인공이 있습니다. 바로 황연주 선수입니다. 황연주 선수는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여자배구 MBC 해설위원을 맡았죠. 현역 선수가 해설을 맡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닌데, 황연주 선수는 해설을 맡아 날카롭고 공감이 가는 해설을 보여줬습니다. 김연경 선수가 "해보자 해보자"라고 말하며 선수들을 다독이는 걸 해설하다가 눈물을 흘리는 영상은 큰 화제가 되기도 했죠.

 황연주 선수는 2014년 컵 대회 MVP입니다. 또한 2012년 런던올림픽 4강 신화의 주역 중 한 명이죠. 그렇게 대단했던 선수였는데, 2019년부터 조금씩 보이지 않기 시작하더니 지난 시즌에는 경기장에서 거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기량이 떨어지거나 부상이 있어서 조만간 은퇴하겠구나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황연주 선수는 이번 컵 대회를 통해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18 득점을 기록했던 KGC 인삼공사와의 경기 후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18 득점하는 건 껌이었는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시즌 전체 19경기에서 황연주 선수가 기록한 총 득점이 18 득점이었거든요. 2012 런던올림픽에서 거침없이 스파이크를 날리던 선수였는데 말이죠.


아직 건재함을 보여준 황연주 선수 / 이미지 출처 : 한국배구연맹 인스타그램

 

 스포츠에는 에이징 커브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정 나이가 되면 운동능력이 저하되면서 기량이 하락하는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전성기를 지난 선수가 조금만 기록이나 기량이 떨어지는 모습이 보이면, 바로 에이징 커브를 말하는 경우가 많죠.

 물론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신체 능력의 저하를 인간의 힘으로 완전히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나이만으로 선수의 능력을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되죠. 나이가 드는 만큼 어린 선수보다 한번 더 연습하고, 한번 더 움직이면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선수들도 많으니까요.


 선수로서 이제 끝났다는 냉소적인 시선을 지속적으로 받았던 황연주 선수는 이번 컵 대회를 통해 그 시선을 보기 좋게 깨줬습니다. 노장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팬들 앞에서 확실하게 보여줬습니다.

 황연주 선수가 멋지게 날아올라 후위공격을 꽂아 넣을 때,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습니다. 사실 저도 지난 시즌의 황연주 선수와 비슷한 처지라고 스스로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나이가 들어가고, 도전과 패기로 가득하던 그 시절을 뒤로하고 관성과 중력에 무기력하게 순응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며 에이징 커브가 왔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리고 그걸 극복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받아들이고 적당히 살자 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황연주 선수의 부활을 보고, 지난 시즌 한송이 선수의 맹활약을 보고(2012 런던올림픽 4강의 주역인 한송이 선수는 미들블로커로 포지션 변경을 통해 다시 한번 날아올랐고, 지난 시즌 블로킹 1위를 차지했습니다) 저도 다시 마음을 굳게 먹어봅니다.


 계속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온다. 쉽게 포기하지 말자.

 그래서 저도 이렇게 이 글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배구 열풍이 계속되기를 바라며..!


 2021-2022 정규리그가 10월 16일 개막합니다. 이제 한 달 반 정도 남았네요. 그때는 용병 선수들도 모두 합류해서 약 6개월간 치열한 경기를 펼치게 됩니다. 여자배구에서는 광주 AI 페퍼스(감독 김형실)가 7번째 구단으로 새롭게 합류하게 되어 지난 시즌보다 각 구단별로 6경기를 더 치르게 될 예정입니다.

 도쿄올림픽 4강 신화와 이번 코보컵의 열기를 그대로 이어나가기를 바라며, 한층 더 수준 높고 볼거리가 많은 정규리그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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