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전쟁 같은 육아... 그리고 마음의 부상

하루하루가 전쟁같은 육아휴직 일상이야기

by 휴리릭

어렸을 때 열심히 했던 게임 중에 '삼국지 영걸전'이라는 게임이 있었어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국지를 배경으로 하는 건데, 매 전투마다 승리 조건이 부여됐습니다. 그 조건을 충족해야만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갈 수 있는 거죠. 많은 게임들이 그렇듯이 초반에는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승리 조건을 달성하는 게 매우 어려웠죠. 그래서 공략집 같은 걸 찾아봤던 기억도 납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게임 잡지와 고수인 친구의 도움을 받았죠.


삼국지 영걸전.jpeg 삼국지 영걸전 게임의


전투를 시작하고 미션 달성에 실패하면 다시 처음부터 전투를 시작해야 합니다. 마지막 전투는 10번도 넘게 해서 겨우 클리어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승리하기가 정말 어려웠거든요. 최종 전투는 시간이 정말 오래 걸려서 더 힘들었습니다. 거의 1시간을 했는데 그 게임을 깨지 못했을 때의 허무함과 분노란... 한동안 그 마지막 전투에 몰입한 나머지 어머니께 두 번이나 혼났지만 끝까지 해냈던 기억이 납니다. 게임을 클리어하고 나서 한동안 아예 게임을 하지 않았습니다. 게임에 질려버렸던 것 같아요.




승리 조건을 제시하는 아들... 제가 또 게임을 합니다.


아들은 이제 막 21개월이 지났고, 곧 3살을 앞두고 있습니다. 사실 이쯤 되면 육아가 한결 수월해 질거라 생각했어요. 작년 이 맘 때 그렇게 믿었어요. 그땐 저보다 육아를 1년 정도 앞서가는 친구를 정말 부러워했었죠. 그런데 아니더군요...

흔히 육아를 전쟁이나 전투에 비유하기도 하잖아요. 제게도 육아는 마치 예전에 '삼국지 영걸전'을 하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할 때가 많습니다. 그 질려버렸던 게임을 20년도 더 지나서 다시 하고 있습니다.


컴퓨터 게임.jpg

아들은 그때그때마다 다른 승리 조건을 제시합니다. 그제는 아들을 재우기 위해 밤 11시까지 같은 노래를 20번 정도 부르게 했죠. 어제는 아침에 외투를 입지 않겠다며 열심히 버티더군요. 어린이집 등원 시간은 다가오는데 강렬히 저항하는 아들에게 어떻게 외투를 입혀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최종 정답은 비타민 캔디였습니다. 캔디를 입안에 넣더니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외투를 입더라구요. 역시 게임에는 현질과 아이템이 필요합니다.



어려운 전투에 막혀서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21개월이 된 아들은 3주 전부터 다시 잠투정을 시작했습니다. 그 방식도 참으로 다양합니다. 전에는 그래도 밤 10시 전에는 보통 잠이 들었는데, 최근에는 밤 11시는 우습게 넘깁니다. 밤 10시가 넘어도 하품 한 번 하지 않습니다. 보통 밤 12시가 다 돼서 잠이 듭니다. 문제는 그 시간까지 아들과 놀아줘야 한다는 거죠. 자동차를 100번 정도 굴리고 블록 쌓기를 10번 정도 새로 쌓고... 책은 20권쯤 읽어주는 것 같아요. 물론 중간에 책을 내팽개치고 다른 것을 하려는 경우도 매우 많아서 책이 집안 여기저기 굴러 다닙니다.


난장판.jpg 밤 11시. 자동차를 담아 둔 바구니를 모자로 쓰고 있는 아들입니다...


잠 패턴을 예전으로 되돌려 보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고 있습니다. 날씨가 괜찮을 때는 밖에서 2시간 동안 산책도 해보고(아들이 집에 가자고 할 때까지), 집에서 레드카펫 같은 길을 만들어줘서 달리기도 시켜봤습니다. 신나는 노래를 틀고 춤도 열심히 춰봤습니다. 담요로 그네를 만들어 와이프랑 100번 정도 흔들어 준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만 지칠 뿐 아들의 취침 시간이 쉽게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네요.

근데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자다가 예외 없이 한 번 정도는 깨는데, 그때마다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합니다. 그때는 달려줘도, 안아줘도 소용이 없더라구요.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 시간은 어찌나 길던지요. 가끔은 이러다 잠이 아예 깨버려서 그 뒤로 잠을 안 잔 적도 있습니다. 매일같이 살얼음판 같은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수면 시간이 부족하면 낮에 너무 힘들어할 것 같아서 아침에 최대한 늦게까지 재웠거든요. 하지만 이제 일찍 깨우려고 합니다. 이 전투에 승리하기 위한 마지막 병법이라고나 할까요. 이마저도 실패하면 이 전투를 클리어하는 방법을 저는 못 찾을 것 같습니다. 결국 시간만이 해결해 준다고 하는데 그게 언제가 될지 기약이 없으니... 기약 없는 기다림만큼 힘든 것도 없죠. 그 시절 삼국지 영걸전을 할 때는 승부욕이 불타올랐는데... 지금은 지쳐가는 느낌입니다. 이게 취미로 하는 것과 직업(?)으로 하는 것의 차이일까요?



육아휴직 중인 아빠의 자존감 올리기


전 상당히 외향적인 성격이었어요.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걸 매우 힘들어했죠.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밖에 나가줘야 숨통이 트이는 유형입니다. 그런데 육아에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밖에 나가기가 어려운 날들이 많습니다. 와이프는 원래 집순이 스타일이라 집에 있는 걸 매우 행복해 하지만, 저는 제 나름대로 집 안에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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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사람이다 보니 괜히 한 번씩 울컥할 때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우연히 대학교 의대 교수가 된 고등학교 친구 소식을 들었고, 유명 어학원에서 이름이 꽤 알려진 강사가 제 대학교 후배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그 친구와 후배는 예전부터 정말 열심히 했다는 걸 제가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이렇게 잘 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 누구보다 축하해 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 때는 같은 곳에서 비슷한 위치에 있었는데 어느새 차이가 꽤 나는구나 하는 생각도 가끔씩 듭니다. 사회적 지위나 명예로 사람의 우열을 평가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것이라는 걸 머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육아를 하다 종종 너무 지칠 때면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게다가 아들을 잘 키우고 있으면 괜찮은데, 아들을 재우는 것이 힘들고 잘 안 될 때면 허탈함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육아를 열심히 하려고 육아휴직을 했는데 육아 하나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존감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하지만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존재는 없겠죠. 아직 아들이 많이 어리다고 해도 자존감 없는 아빠

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아요. 저도 그전까지는 열심히 살아왔으니까요. 그래서 자존감을 올리는 노력을 해볼까 합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저는 정말 이 말을 믿습니다. 20대 시절, 몇 년을 달리기에 미쳐 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틈만 나면 달리러 나갔어요. 근력은 조금 부족했지만, 지구력과 끈기는 그 누구보다 좋다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취업과 함께 달리는 것을 내려놓았어요. 퇴근하고서도 얼마든지 달릴 수 있었는데, 입사 초반에는 돈의 자유를 얻었다는 생각에 참 많이 놀러 다녔어요. 그래도 시간이 날 때면 열심히 산책은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달리는 건 안 하고 있더라구요. 내일 출근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스스로에게 내밀면서 말이죠.


집에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쉬운 방법은 먹는 것이더라구요. 먹는 걸 막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계속 집에 있다 보니 자꾸 이것저것 손이 가더라구요. 특히 아들을 겨우 재우고 나면 체력 소모가 커서 그런지 허기가 지는 경우가 많아서 자꾸 군것질에 손을 댔어요. 먹고 나서 한참 뒤에 잠을 자서 큰 영향까지 아니지만 알게 모르게 휴직 전에 비해서 몸무게가 늘었더라구요.


snack.jpg 전쟁을 끝내고 먹는 쿠키는 참으로 달콤...


그래서 새해도 다가오고 이대로 황금 같은 휴직을 끝낼 수 없다는 절박한 생각이 들어서 결심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 거 아니지만 제 나름의 식단 조절과 운동을 해보겠다고 말이죠.

이것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해보려고 합니다. 어제도 아들과 밤 12시까지 전투를 벌이느라 몸과 마음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네요ㅎㅎ 초콜릿 하나 먹으면서 휴식을... 식단 조절은 새해부터니까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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