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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에서

by 안혜빈

진통제가 떨어져 약국에 갔다. 동네에 종합병원이 있어 갈 만한 약국은 많았다. 나는 그중 가깝고 사람이 없어 보이는 약국 하나를 골라 들어갔다. 진통제를 사러 왔다고 말을 꺼내려는데 약사는 친절하게 잠시만요, 하고 내게 기다릴 것을 요청했다.

자리에 앉아 가만히 기다리는데 어느 순간 그다지 나이가 많지 않은 중년의 뒷모습이 데스크 앞에 서 있었다. 짙은 회색 양복에 구두를 신었지만 옷차림에 맞지 않게 머리는 덥수룩하고, 거칠고 희끗한 머리가 군데군데 보이는 남자. 그 남자가 나타나자 데스크 위에 어마어마한 양의 약이 바구니에 담겨 나왔고 약사는 그 약들을 모두 봉투에 옮겨 담았다.

어서 오세요, 약 다 나왔어요.

나에게 그랬듯 약사는 친절했다.

아이들 약이에요. 애들 잘 있죠?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챙겨서 먹으면 된다는 약사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야기를 듣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뒷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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