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낭만

by 안혜빈

1 /

걸을 때 힘을 돋우기 위해 음악을 듣는다. 나는 밴드 음악을 좋아해서 주로 락 장르를 선택하는데, 어떤 밴드를 고를지는 그날 기분에 따라 달려있다. 어느 날엔 가는 일본 락을 들어 볼까— 하고 H 밴드의 노래를 틀었다. 최신 밴드답게 사운드 구성이 맛깔나게 독특하고 재밌어서 종종 찾아 듣는 밴드였다. 그런데 그날따라 귓속에 박히는 사운드 때깔이 너무 세련되고 빤짝빤짝해서 뭔가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왜, 그럴 때 있지 않나. 지금의 이 기분, 온도와 습도에 어울리는 노래를 찾아 헤매게 되는 때. 아냐, 이게 아닌데— 하며 계속 노래를 바꾸게 되는 때 말이다. 내게는 그날이 그런 날이었다. 머릿속에 온갖 밴드 이름을 쏟아내고 하나씩 골라보는 도중에 그래, 좀 옛날, 그리고 브릿팝이어야 해— 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곧 오아시스 음악 전곡을 재생했다. 날 것 같은 건반의 반주와 함께 일렉 기타 사운드가 흐르자 비로소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 아까는 느끼지 못했던 낭만. 그래, 이거였어.




2 /

낭만이 밥 먹여주지는 않지.

근데 숨을 쉬게 해.




3 /

낭만적이다. 숨을 쉬게 하네. 오아시스의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동시에 얼마 전에 본 델리스파이스의 챠우챠우 라이브 영상이 떠올랐다. 영상 아래엔 그들에게서 낭만을 느낀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댓글을 달아두었다. 20년도 훨씬 넘은 그 흐릿한 영상 속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같이 실수투성이에다 촌스러운, 하지만 빛나던 자기들의 청춘을 떠올렸다. 락에는 왜 낭만이 있을까. 거칠고 조금은 부족한 듯한 느낌이 주는 솔직함, 그걸 밀고 나가는 용기 때문인가.




4 /

낭만이라. 난 그걸 삶을 사는 최소한의 재능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삶을 사는 데에도 재능이 필요하다면, 그 최소한의 재능은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다. 능력과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 좋아하는 그걸로 충분한 것. 눈치 보지 마라.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그 일로 숨이 트이는 게 대단한 일이니까. 어떤 이에게는 커피를 마시러 카페를 찾아가는 길이, 다른 어떤 이에게는 밤마다 음악을 틀어놓는 시간이 낭만일 수 있다. 또 하는 일 없이 햇볕 쬐기나 차분히 공간을 정리하는 순간, 길 고양이를 돌보는 일 등 이 세상엔 사람들의 숫자만큼 무수히 작고 많은 재능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각각의 삶을 지속시키는 작은 산소통 같은 거랄까. 하루가 뭣 같아도 사소한 어떤 것이, 어떤 행위가 그래도 조금은 괜찮았다, 살 만하다 여기게끔 마법을 부린다면. 그거 낭만 아닌가. 당신은 삶의 재능이, 낭만이 있습니까?




5 /

낭만 있는 사람들이 모인 음악이니 락은 낭만적일 수밖에. 나는 오늘도 락을 듣는다.








작년 초 경주에 놀러 갔을 때 방문한 LP 바 겸 레스토랑 오아시스에 붙어있던 포스터. 그녀에게 뮤즈 대신 또 다른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바로 낭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새, 그리고 Half The World A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