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한 해의 흐름
감정의 인식과 소화.
과거 ‘나’의 이해.
관계.
죽음의 간접 경험.
한계 알기.
힘 빼기.
감각의 중대함.
의미보다 선재하는 어떤 것에 대한 믿음.
끝까지 남아있는 것, 늘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것의 발견.
자연스러움.
방(공간)으로서의 그림.
삶.
숨.
예술.
상태(과정).
아, 새해가 기대되는걸.
2 / 중간 과정
자잘하고 드문드문 길게, 한 사람의 그림처럼 보이지 않는 들쭉날쭉한 테스트를 해왔다. 목표는 정해진 의미에 따라 형식을 맞추는 그림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일단은 해보지 않던 붓놀림을 하거나 텍스처 표현을 시도해 보고 싶었다. 딱딱한 그림을 무너뜨리기 위한 기술적 방편이었다. 하지만 테스트를 할 때마다 내 그림이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다. 가끔 맘에 드는 표현 방식을 만나게 되기는 했는데, 순간 잠시 만족했을 뿐 그 스타일을 고집해서 계속 그리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갈피를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픈 게 있는데, 그건 어떤 이미지 경험으로 가능한데, 도대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계속 같은 고민에 휩싸이며 올해는 내내 파편 같은 흔적만 남겼다. 마치 문장이 되지 못한 단어가 조각조각 흩어진 듯했다. 테스트의 결과를 정리하면 나는 이렇게 그리는 것도 가능하고 저렇게 그리는 것도 다 가능하지만, 모든 게 가능해서 아무것도 내 그림이 아니라고 느끼는 상태였다.
그러는 중에 내 시선을 잡아끈 것이 있었다. 바로 10년도 넘은 오래된 싸구려 물감과 캔버스를 꺼내 무작정 붓질을 해서 완성한 그림이었다. 작년 여름 이래 점점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부풀어서, 무엇을 표현해야 할지 모른 채 붓질이나 해보자며 반복해서 칠한 면이 제법 만족스러웠던 그림. 솔직히 그림으로 여기지도 않았던 최초의 작품이었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고 대단한 사유가 있어서 나온 형식도 아니었다. 내 몸과 마음이 호흡처럼 받아들인 과정과 그에 따른 결과가 이제 와서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나를 체력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소진시키지 않고 그림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의 형태처럼 말이다.
이에 바탕 텍스처 테스트 후 버리려던 캔버스 중 쓸만한 걸 가져와서 대충 비슷하게 붓질을 시도해 봤는데, 뭔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화면을 통제하는 힘을 버리고,
판단을 줄이고,
설계는 최소한으로,
단순하지만 딱딱하지 않게.
감각으로 끊임없이 같은 방식을 시도하고 새롭게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확신마저 든다.
이 결과가 어디서나 볼 법한 그저 그런 그림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삶에서 더 이상 하지 못하겠는 것들을 버리고, 버리고, 버려서 바닥에 자연스레 드러나게 된 마지막 방법이라고 한다면 흔들림 없이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내 몸이 허락한 형식이니까. 또한 그림을 부담 없이 필요할 때 머무는 곳, 오래 떠나 있다가도 다시 돌아오고 싶은 곳으로 여기고 숨을 고르는 ‘안전한 방(공간)’으로 생각한다면— 한 마디로 나의 살아 있음으로 여긴다면 비슷한 결과라도 다를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리하여, 드디어. 물감의 농도, 색의 조합, 붓의 결 등 구체적으로 목표를 가지고 다뤄야 할 것들이 생겼다. 그림에 있어서 하나하나 다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모든 선택에 앞서, 나에게 그림이란 삶과 사랑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나타나는 흔적임을 이해하고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