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by 안혜빈

대학 시절 자취할 때의 일이야.


자취방 근처에 길고양이들이 많았어. 처음엔 비슷비슷해 보여서 누가 누구인지 분간이 안 가다가, 왔다 갔다 하며 자주 마주치다 보니까 점점 고양이들이 구분되기 시작했어. 어떤 고양이는 항상 혼자 있었고 어떤 고양이는 꼭 두 세 마리가 같이 다녔어. 갓 새끼 시절을 지난 고양이도 있었고 다 큰 고양이도 있었지.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의 입장으로 그 고양이들을 마주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어. 도대체 어디서 밥을 먹고 어디서 잠을 자는 걸까. 겁이 많은 고양이도 있었지만 대체로 사람을 보면 멀리 도망가지 않는 게, 아무래도 사람에 의한 나쁜 기억은 없어 보였어. 누군가 돌봐주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길고양이가 집고양이처럼 돌봄을 받을 수 있을까. 항상 배고프고 춥고 그런 묘생이겠지.


고양이들을 마주칠 때마다 생각했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호의는, 그곳에 있는 동안 밥을 챙겨주는 것뿐이라고. 하지만 나는 거기 오래 살 사람이 아니었어. 기껏해야 일 년 반이었거든.


고민이 되기 시작했어.


일 년 반 동안 고양이들을 꾸준히 잘 돌봤다고 치자. 고양이들은 어떤 사람이 때마다 밥을 챙겨준다는 걸 알게 될 거고, 점차 그 꾸준한 밥을 기다리겠지. ‘언제, 어디에 가면 밥이 있다’고 각인이 될 거야. 그런데 그럼, 내가 사라진 후에는 어떡하지?


내가 챙길 수 있는 기간은 한계가 있었고, 길고양이를 꾸준함으로 길들이는 것 자체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매일 돌보는 건 오히려 나에게 너무 쉬운 선택이었지. 그냥 떠나는 것도 나에게는 너무 쉬웠고, 그래서 문제였어.


한편으론 그게 길고양이의 삶이라고 생각했어. 내가 떠나면 다른 누군가가 나타날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그건 당연한 거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짧은 생에 잠시라도 꾸준한 돌봄을 받는 게 더 좋은 일 아니겠냐는 질문이 떠올랐어.


하지만 난, 내 선택이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어. 그곳을 떠난 뒤에 나는 훌훌 잊을 수 있겠지만 길고양이들은 거기서 계속 살아가야 하니까. 깊이 관여했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면서 ‘그건 네 운명이란다’하고 말하는 건 도저히 할 수 없었어. 아무리 짧은 수명을 가졌다 하더라도.


결국 그 길고양이들과 나는 데면데면하게 지냈어. 마냥 내버려둔 건 아니야. 간헐적으로 몰래 간식을 갖다 두고 밥을 챙겨주기도 했어. 그저 더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사라질 꾸준함에 길들여지지 않게 거리를 둔 채 지켜봤어.


그 일 년 반 동안 마음을 지키는 내 모습에 스스로도 조금 놀랐어. 사람이 하고픈 대로, 해주고픈 대로 뭔가를 하는 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걸 거스르고 있었으니까. 독하다고 할까, 차갑다고 할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어. 하지만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 하나로, 선택이 남길 흔적을 생각하며 길고양이들에게 그림자처럼 없는 듯 지내왔던 거야.


자취방을 빼던 날, 지독하게 추운 겨울이었거든. 마지막 날만큼은 정말 구석구석 간식을 두고 왔어. 먹었는지는 알 길이 없네.


이렇게 추운 날일 때면 그 고양이들 생각이 나. 그리고 지금도 돌이켜 봐. 무엇이 좋은 선택이었을까?


그런데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 같아.


2019.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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