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춰 선 자리에서
도서관을 나와 나는 잠시 공원을 걸었다. 잘 다듬어진 나무와 여러 식물들. 비가 오는 날이면 각각의 싱그러운 내음들을 풍기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줄듯 관리가 잘되어있었다. 잔디를 중심으로 둘러져 있는 잘 포장된 산책로는 땀을 흘리며 걷는 사람, 수다를 떨며 한가득 미소를 머금고 걷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 산책로를 따라 멍하니 걸었다.
창가의 노인의 모습이 계속 멤돌았다. 그리고 나에게 어떤 단순한 듯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나는 걸으며 성공이라는 그동안의 생각들이 떠올렸다. “무엇을 더해야 하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걸까?”. 이런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휘저었다. 내가 그동안 읽었던 몇몇 기업들의 성공 신화, 업적을 이룬 사람들에 대해 세상은 단순한 몇 가지로 공식으로 정리한다. 나는 그런 공식들을 지우기로 했다.
나는 첫 회사에 입사를 했을 때를 떠올렸다. 아주 단출한 이력서였다. 결코 눈에 띄지 않을 그런 이력서. 포트폴리오와 함께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었다. 관심 있던 분야는 있었지만, 나에겐 경력이 필요했고,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것이 중요했다.
큰 기대가 있지 않았다. 운이 좋게 몇 군데 면접을 보게 되었고 첫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것이 첫걸음이었다. 두꺼운 방화문을 열면 파티션이 벌집처럼 이루어져 있었다. 삭막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조용하고 가라앉은 분위기의 연구실이었다. 집에서는 괜찮았던 눈이 하루 종일 앉아서 모니터를 계속 보고 있으니 아주 매웠다. 상상과는 다르게 나의 첫 회사는 친절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어디나 그렇듯 친절과 불친절 사이를 넘나들며 날이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끔은 그 변덕으로 이 사람 저 사람 괴롭게 만든다. 그 덕에 적응이 어려웠지만 나는 그 일을 정말 잘하고 싶다는 욕심에 밤낮, 휴일 구분 없이 꽤나 열심히 했었다. 하지만 연초가 되면 나의 첫회사의 친절은 차가워졌고, 나는 가끔 기분이 상했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생겼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를 옮겼다.
옮긴 곳에서도 나는 여전했다. 나름의 책임감으로 나를 믿어주었던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보상은 언젠가 따라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좀처럼 그것은 오지 않았다. 성과는 나쁘지 않았고, 회사는 성장했으며 직원이 많아졌다. 나에겐 책임만이 쌓여갔다. 나는 보상을 조금 기다렸지만, 언제나 다음을 기약할 뿐이었다. 나의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누군가의 차만 바뀌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그 두 글자에 집착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다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이제 여름이 곧 물러난다고 소곤소곤 알려주는 듯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미 울음소리는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매미는 수년간 땅속에 살다가 여름이 되면 밖으로 나와 허물을 벗고, 그 수년간의 시간이 무색하게 단 며칠을 살다 그 수명이 다한다. 자신의 짝을 찾기 위해 온 힘을 들여 귀가 아플 정도로 울다 힘이 다해 나무에서 떨어진다. 이 작디작은 매미의 일생을 단순히 노력, 성공이라는 단순한 몇 글자로 말할 수 있을까? 그 짧은 글자에 아마도 너무나 쉽게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곧 가로등이 한 개씩 켜지기 시작했다.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가로등 불빛은 산책을 하는 사람들에게 산책로를 비추어 주었다. 공원에 설치되어 있는 운동기구를 사용하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떠는 사람들.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 공원의 모습은 여전했다.
나는 잠시 멈춰서 벤치에 앉았다. 가만히 공원을 바라보았다. 40년이 되었다는 이 공원은 많은 사람들의 손에 생겨났을 것이다. 한 명 한 명의 땀방울이 떨어져 이 많은 나무와 풀을 자라게 했다. 그리고 흐르는 시간에 그 모습은 누군가의 노력과 성실함으로 계속해서 바뀌었다.
어릴 적 축구에 영 관심이 없었지만 이곳에서 친구들과 가볍게 공을 차곤 했다. 잘 관리된 잔디에서 아무도 없는 늦은 시간에 단지 몇 명이서 이 넓은 곳을 주인이 된 것처럼 뛰어다녔다. 가끔은 서로 바보 같은 짓을 하기도 하며, 잔디 위에는 우리의 땀과 웃음이 쏟아졌다.
항상 공원 근처에 살았던 나는 공원이 주는 것들을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친구들과 뛰어다니며 여름엔 곤충을 채집하고, 겨울엔 눈을 굴렸다. 그저 당연한 줄 알았던 이 공간이 이제는 특별하게 느껴진다. 어릴 적과는 다르게 공원은 한가로이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가끔은 벤치에 앉아 멍 때리며 머리를 비울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공원은 여러 모습으로 언제나 나의 삶 속에 있었다.
공원은 많은 이들의 땀방울로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이곳에 존재했다.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지는 않겠지만, 그 노력에 많은 공원안의 사람들은 잔잔한 추억들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머릿속엔 어떤 많은 단어, 긴 문장, 조건이 아닌 어떤 장면들만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장면들을 간직한 체 공원을 나왔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더 묻지 않아도 될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