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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잇 May 08. 2024

[서평] 정재경 《있는 힘껏 산다》

힘이 들 때는 초록 식물을 볼 것. 몸도 마음도 치유될 테니.

사정에 맞춰 급하게 찾았던 전셋집. 옛날집 특유의 짙은 체리색 몰딩과 좁은 주방이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통풍이 잘되고 해가 잘 드는 것 같아 덜컥 계약을 마쳤다. 결혼하고 두 번째로 살게 된 집이었다.


계약한 집은 구경하러 갔을 때 공실이었다. 새로 했다는 하늘색 벽지는 묘하게 반짝거렸지만 나름 깔끔해 보였고, 짐이 없으니 꽤나 넓어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급한 마음에 좋은 부분만 보려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냉장고를 둘 자리가 마땅치 않아 주방 바로 옆 작은 방에 넣을 수밖에 없었던 건 조금 뼈아픈 실수긴 했지만.


그래도 이왕 살게 된 집. 애정을 붙이고 싶었다. 인테리어 공사 없이 손쉽게 집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건 역시 식물이지! 가벼운 마음으로 남편의 잔소리를 무시한 채 작은 화분을 야금야금 모으기 시작했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내 손에서 참 많은 화분들이 죽었다. 작은 변명을 하자면 화분을 돌볼 시간이 없기도 했다. 신생아를 키우며 밥도 주방 싱크대에 서서 먹었으니 식물은 고사하고 내 머리 감을 시간도 없는 나날이었다. 내 체력에 생물을 키우는 건 아이 한 명으로도 벅차다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그러다 이 책을 읽고 문득 다시 식물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나는 조금 더 해가 잘 드는 집으로 이사했고, 언니가 맡긴 레몬나무를 무사히 키워낼 만큼 여유를 찾았다. 이제야말로 식물을 제대로 키울 수 있겠다는 의지가 생기자 잊고 있던 식물에 대한 애정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그래서 책 속 식물 소개에 참 많이 형광펜을 그었다. 어떤 식물을 집에 들일지 콧노래가 나올 만큼 신나게 구경했다. 직접 키우는 건 또 다른 이야기겠지만, 일단 발을 들이고 싶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벌써 어디다가 작은 정원을 마련할지 자리도 정해두었다.


책을 읽으며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던 구절이 있다.

"인간은 손바닥만 한 정원이라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작은 화단 하나는 가꾸며 살아야 한다."

- 카렐 차페크 《정원가의 열두 달》


식물은 그 자체로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오랜 시간 환경에 적응해 왔고, 나름의 핸디캡을 극복하며 진화해 왔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나 자연에서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위로받을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다시 식물을 키우며 나는 그 배움의 길을 다시 걸어보고 싶다는 용기가 생겼다.

힘든 일을 지나는 중이라면 선택할 수 있다.
이대로 상처를 끌어안고
악몽을 꾸며 살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며
나아갈 것인가.
우리의 인생은 한 번뿐이고,
시간은 앞으로 갈 뿐 뒤로 돌아오지 않는다.

P.61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지금 당장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두고
새로 시작할 필요는 없다.
지금 일상에 좋아하는 일을 끼워 넣으며
내가 원하는 삶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방법도 있다.
우리가 모두 다르듯
나에게 맞는 방법도 모두 다르다.
'나'를 찾고, 내게 맞는 방법을 찾아
계속 노력하는 것.
그게 전부다.

P.105



꿈을 막는 수많은 장애물 속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결국 내가 원하는 쪽을 향해
계속 걸어가는 삶.
고단할지라도 그 과정의 끝에
무엇이 맺힐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끝끝내 가보는 수밖에 없다.
병이 들어도 이겨내며 꽃을 피우는 철쭉처럼.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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