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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잇 Jan 20. 2017

스낵 비요리(スナック日和)

사바미소와 오로시다이콘

우리 동네에, 자그마한 찻집을 운영하는 녀석이 있다. 이름은 유우지(雄二). 찻집이라고는 해도, 가라오케 기계가 있어, 동네 어르신들이 노래를 부르러 자주 가는 동네의 명소이다. 물론, 나도 가끔씩은 오픈하기 전에, 그 녀석의 가게를 들러 한두 곡 정도 부르고 가긴 한다. 


    사실, 이 녀석은, 아직도 독신으로 살고 있다(지만, 어디까지나 표면상으로는 그렇다). 왜냐하면, 이 녀석은, 남들과는 다른 연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라? 오늘은 왜 혼자냐?"

    "사실, 그이랑 연락 안 한 지 오래야."


그렇다. 이 녀석은,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사실, 나도 처음엔, 이 녀석을 봤을 땐 뭔가 '나에게도 집적대는 것 아닌가'하고 내심 무서워했다. 하지만, 몇 년째 단골이자, 친구가 되고 나서는, 나에게 추태를 던진 적도 없을뿐더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 녀석도 사랑의 화살이 다른 곳에 향해 있을 뿐, 사랑에 민감한 녀석이구나'하고 다시 보게 되었다. 물론, 그 녀석의 스킨십은 아직까지도 적응이 되질 않지만.


    "사바미소¹에, 오로시다이콘.²폰즈³는 뿌리지 말고."

    "오랜만에 이걸 찾네."


유우지는, 뭔가 쓸쓸하거나 외로운 날에는 항상 사바미소를 찾곤 한다. 일찍이 여읜 부모님 덕에 할머니 밑에서 자라온 유우지는, 자신이 다른 연애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할머니에게 고백했을 때, 조용히 사바미소를 내밀며, '할미는 너를 응원 하마'라며, 밥은 꼭 챙겨먹어야 한다며 만들어준 사바미소가 큰 힘을 받았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서는, 이 사바미소가 할머니의 응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음식을 만들던 와중에, 계속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던 유우지. 전화벨이 울리고, 화면을 보는 순간, 기쁨과 화남의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전화를 받으러 밖에 나간다. 전화를 마치고 들어오자마자 타이밍 좋게도 나도 음식을 다 만들고서는 그 녀석 앞에 내놓는다.


    "저기, 사장. 이건 내가 잘못한 걸까?"

    "이야기는 들어봐야 알 것 같은데?"

    "사실, 2주 전에, 그랑 대판 싸운 적이 있었거든. 그의 생일이었는데, 아무래도 생일이니까 서프라이즈를 하고 싶어서 아무 말 안 하고 준비를 했단 말이야?"

    "모든 사람은 서프라이즈를 받고 싶어 하지. 그래서?"

    "그런데, 그의 집 앞에 계속 기다렸는데도, 그는 오질 않아. '언제 오냐', '일은 마쳤냐'라고 문자를 계속 보내도, 답장이 없어."

    "그래서? 올 때까지 기다린 거야?"

    "결국엔 생일도 지나버려서, 준비한 걸 다 치우고 돌아가려는데, 그때 그이가 나타난 거야."

    "그런데?"

    "그런데, 그이는 나를 보더니, 기뻐하기는커녕, 피곤하다고 얼른 들어가라는 거 있지. 나는 그이를 위해 준비란 준비를 다 했는데 말이야. 그랬는데 피곤하다고 들어가라니. 너무한 거 아냐?"

    "물론, 피곤하면 만사가 귀찮아지기 마련이지."


유우지는, 사바미소 한 조각과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이틀 정도를 연락 안 했다? 그런데 먼저 연락도 안 오는 거야! 이쯤 되면 너무 무관심해진 거 아닌가 싶어 연락을 했지."

    "그런데 그 이의 반응이 어때?"

    "그걸로 화낼 일이냐고, 나에게 되려 화를 내는 거 있지? 그래서 그거 때문에 화나서 일주일 넘게 연락을 안 했어."

    "근데, 아깐 그 이에게 전화 왔잖아. 그건 어떻게 된 거야?"

    "생각해보니, 자기가 조금 무심한 것 같다. 미안하다고는 말하면서, 당신도 일에 지친 나를 이해해달라고 하는 거야. 사실, 나도 일 때문에 피곤한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어째 한 번도 연락 안 할 수 있냐고 따졌는데, 화가 났는지, 아무 말도 안 하고 연락을 끊어버리더라고. 나 지금 정말 울 것 같아."


손을 부들부들 떨며,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이내 얼굴을 가린다. 소리는 나지 않지만, 분명, 가린 손 사이로 물방울이 맺힌다.


    "유우지. 그도, 너를 싫어해서 그렇게 행동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 다만, 이런 문제는, 서로 얼굴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옳은 게 아닐까?"


나의 한마디에, 눈물을 훔치고서는, 그 녀석이 말을 꺼낸다.


    "아마, 그의 집에 찾아갈까 봐. 화가 났지만, 사장. 너의 말이 맞아. 얼굴 보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더 힘들 것 같아."


    사바미소를 다 먹지도 않고, 그 녀석은 당장 달려갈 기세로 물건을 챙겨서는 계산을 하고 가게 문을 나선다. 그러다 문 앞에서 잠시 흠칫하는 모습이 보였다. 덩치가 큰 사내 남자. 아마 그 녀석의 그이인 듯하다. 잠시 흠칫하던 그 녀석은, 가게문을 살포시 닫는다.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서로 부둥켜안은 실루엣. 아마, 얼굴을 보자 모든 감정들이 사르륵 녹아내렸음엔 분명할 것이다. 사랑의 힘은, 아마, 사바 미소보다 더 맛있는 것이 아닐까.


¹일본식 된장인, 미소(味噌)에 졸인 고등어.

²강판에 간(おろし) 무(大根)를 일컷는 말.

³레몬이나 유자 등의 과즙을 간장과 식초에 섞은 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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