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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약돌 Dec 31. 2020

질문하는 아이 VS. 나대는 아이

[브라키오 사우루스가 되고 싶다는 아이에게]

엄마, 우리는 왜 사람으로 태어난 거야?


딸아이가 최근 1주일 사이에 하루 이틀 간격으로 정확히 같은 질문을 서너 번가량 던졌다. 확답을 못 해주고 우물쭈물했더니, 본인은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단다.


"음, 글쎄? 우리가 왜 사람으로 태어났을까? 엄마도 그 생각을 못 해봤네~ 그건 하늘이 정해주신 거야. 우리 OO이는 사람 아니면,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었는데?"

"비키(고고 다이노라는 애니메이션 공룡 캐릭터)! 브라키오 사우르스. 목이 길고 우아하잖아."

"아~ 그렇구나. OO이는 우아한 브라키오 사우르스가 되고 싶었구나."


이렇게 대화가 일단락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음날 또 물었다.

 

공룡 덕후 딸이 한눈에 반한 브라키오사우루스, 제일 우아하단다.


"엄마, 우리는 왜 사람으로 태어난 거야?"

"음.. 왜 아직도 브라키오 사우르스가 되고 싶어?"

"응, 그리고 진짜 궁금해서. 우리가 동물로 태어날 수도 있었잖아."

"우리 사람도 크게 보면, 동물이야."

"그래?? 사람도 동물이라고?? 사람이 왜 동물이야?"
"근데 엄마~ 왜 동물들이 동물원에 있어?"


아이의 언어 표현 수준에 눈높이를 맞추어 어떻게 대답해 주어야 할지 곤란한 질문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사람이 사람이지 왜 동물이며, 동물들이 밖에 뛰어다니지 않고, 왜 동물원에 모여 있냐는 거다.


"사람들이 야생에 사는 동물들, 음~그러니까 야생이란 것은 산이나 정글을 말하는 건데, 이렇게 야생동물들을 잡아서 동물원에 가둔 거지."

"엥? 사람들이 어떻게 잡았어?? 그물로?? 총으로??"
"도대체 왜 가둔 거야? 사람들 나빴다.."


며칠 전에는 "우리 몸속은 어떻게 생긴 거야? 어린이 뼈가 어른 뼈보다 많대~ 근데 이 뼈들을 다 누가 만든 거지?"라는 질문과 함께, 우리 몸속이 너무 궁금해서, 안으로 들어가서 직접 보고 싶다고도 했다. 우리 몸 관련 책을 보여주고, 유튜브 영상도 보여주었지만 아이는 실제로 우리 몸속에 들어가서 혈관을 타고, 구석구석 돌아다니고 싶다고 했다.

 



아이 안에 있는 궁금증을 끌어내 주고 싶다. 6세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적절한 표현 방식을 찾아 설명해 주지 못하는, 하루 후 마흔인 내가 한탄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불현듯, 이대로 자라 학교를 가게 되면, 만약 학교에서도 이런다면 괜찮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질문이 장려되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그것을 튀는 행동으로 규정하며, (아직까지는) 튀는 행동을 터부시 한다. 또래집단에서 질문 많은 학생에게 '나낸다, 나대용'이라는 막말을 하는 경우도 종종 목격한다.


동생은 초등학교 저학년 담임인데, 저학년 아이들은 별의별 질문을 다하고, 수업 시간에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아이들도 간혹 있다고 한다. 반면,  많이 자란 학생들은 웬만해서는 이렇게 발산형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집단의 암묵적 분위기에 의해, 사회적으로 적절한(?) 행동을 학습해간다. 





수년 전 학부 시절, 교양수업 강의실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다는 바비 인형 외모의, 남아공 출신의 한 여학생(얼마 지나지 않아 이 여학생은, '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큰 인기몰이를 하게 된다.. 조약돌 세대 인증^^;; )이 수업 시간에 엄청나게 질문을 많이 했다. 교수님이 말씀하시면, 나를 비롯 대부분의 한국 학생들은 조용히 경청했다. 그런데, 이 여학생은 수업 중간중간 매우 빈번하게 손을 들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질문했다. 내심 그녀의 용기가 부럽기도 했다.

응답하라 20** 수준의 추억(?)의 프로그램에도 등장했던 질문 많던 그녀.

그런데, 교수님께서 굉장히 언짢아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It's my turn to speak.
Let me finish my lecture.
If you have any questions, you do it after class."



당신이 말씀하실 차례이고, 수업을 끝내야 하니, 질문이 있으면 수업 다 끝난 후에 하라는 교수님의 불호령 아닌 불호령에 여학생은 당황했고, 몇몇 학생은 그녀를 보면서 키득키득 웃기도 했다. 교수님도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오신 분이었는데, 오랜 시간 한국 문화에 익숙해지다 보니, 끊임없이 이어지는 질문이 불편하셨던 듯하다. 또 나 역시 추후에 가르치는 직업을 갖게 되며 이때 일을 회상해 보니, 대다수 한국 수업의 흐름상 (토론식 수업보다는 강의식 수업), 교수님께서도 어쩔 수 없으셨으리라..라고 이해해 본다. 그러나, 질문하는 것을 억압하는 분위기 혹은 금기시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창의적인 생각과, 자유로운 의견 교환이 싹트는 문화가 만들어질 수 없음은 자명하다.




폴 김, 한돈균 저자의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에서는, 5세 때 질문을 가장 많이 한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집단의 가치 지각'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아이들이 열려 있는 접근 및 창의적 질문을 던지지만, 나이가 들며, 질문하지 않는 수동적 존재로 형성되어 간다.


2~5세 사이에 4만~5만 개의 질문을 하는데, 아이가 초/중/고등학교를 지나면서 질문 수가 급격히 하락합니다. 그리고 사회에 나가서는 질문을 전혀 안 해요. 왜 그렇겠어요? 주입식 교육이 아이를 망쳐놓고, 질문하는 문화가 아닌 데에서 살게 하기 때문이에요. 강하게 표현하면 범죄나 마찬가지예요. (중략)

폴 김,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 중


아이들일수록 지성 능력의 척도가 되는 질문의 숫자가 많고 질문이 창의적입니다. 어른이 되면 될수록 생각이 고립되어서 안 되리라는 생각을 먼저 하는 데에 비해, 아이들은 안 되는 게 뭔지 몰라요. 아직 그런 집단적인 지각 체계를 많이 안 봤고 그런 지각이 덜 침투해 있다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안에 대해 접근할 때 상당히 열려 있는 접근을 하고, 상당히 많은 질문을 하고, 상당히 많은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거예요.

폴 김,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 중


그렇기에 책에서는, 아이들을 어떤 자극이나 환경에 노출시키는 가가 중요하며, 질문을 장려하는 이상적인 학교로 4E(Exposure, Engagement, Experiment, Empowerment)를 제시한다. 처음에는 이러한 문화에 접할(exposure) 수 있게 하고, 참여할(engagement) 수 있게 하고, 실험할(experiment) 수 있게 하며, 교육에 대한 자율권(empowerment)을 스스로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 폴 김 교수의 설명이다.


거시적 + 미시적 관점에서의 방법론적인 논의는 제쳐두고서라도, 사회화라는 미명 하에, 우리 아이들의 질문의 개수가 줄고, 네 혹은 아니오 식의 답변만 가능한 단답형 질문만 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슬퍼진다. 아이의 끊임없는 질문 세계의 문이 닫히지 않도록 지켜 주는 것도 유년기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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