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약돌 Nov 27. 2020

인생이든 공부든 '될놈될 DNA'?

[공부머리 유전자 갑론을박]


 "내가 지금까지 봐 왔는데 정말 공부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객관적으로 유전자야. 여기서 잘 생각해야 돼. 내가 '공부 유전자'가 아니다 싶으면 빨리 공부를 포기하는 게 현명한 일이야."

"주위를 봐봐. 어떤 집안은 다 서울대야. 그런데 어떤 집안 식구는 사촌까지 모조리 다 관광버스 타고 다녀."

출처 : <메가스터디 손주은 대표이사>


M사에서는 매해 고3 학생들 동기부여를 위한 설명회가 열린다. 이때 손 대표이사는 직접 마이크를 잡고 연단에 선다. 그는 엄청난 카리스마와 좌중을 휘어잡는 입담을 지닌 호인이다. 매년 첫 시작을 열었던 멘트가 바로 '공부 유전자론'이다. '객관적으로 공부는 유전자다, 고로 너희가 목숨을 걸 정도로 공부하지 않고서는 웬만해서 고3 혁명은 일어나지 않는다.'가 강의의 골자이다. 


강사들 역시 학생들과 함께하며 같은 공간(학원 대강당 혹은 잠실 종합운동장)에서 설명회에 참석한다. 수년간 같은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공부 유전자설'에 마음이 기울었다. '속된 말로 피똥 싸게 미친 듯이 시키지 않으면, 그리고 학생이 따라오지 않으면 쉽게 극복되는 요소가 아닌 것이 유전자구나.'싶었다. (적어도 내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설명회의 효과는 엄청나다. 명실공히 사교육계의 거장인 손 대표를 실물로 영접(실제 학생들의 입에서 나온 표현)한 고3 학생들의 눈빛은 더욱 반짝반짝 빛난다. 공부는 유전자니까 지레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를 극복하기 위해 미칠 듯한 노력을 한다. 그런 학생들이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학생 스스로 공부가 적성이 아니라고 생각한들, 고3이 된 시점에 공부가 아닌 다른 쪽으로 진로를 바꾸겠다고 했을 때, 학생을 진정으로 믿고 지지해 줄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인생은 DNA가 결정하는가?

그렇다면, 공부는 노력으로 가능할까?


DNA가 상당 부분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가령 문과인 나와, 역시 뼛속까지 문과 체질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6살 딸은 숫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꼭 손가락을 사용해서 덧셈을 하고, 10이 넘어가는 수는 세려 하지도 않는다. 크면서 다른 모습을 보일 수도 있겠으나 현재는 그러하다. 우리 집 사례가 아닌 다른 집들을 보아도, 운동하는 집안에는 운동선수 나고, 학자 집안에는 학자 난다는 말이 완전히 근거 없는 말은 아닌 듯싶다. 그런데, 이런 결과가 과연 운동 DNA, 공부 DNA를 타고났기 때문일까?


유전자가 동일한 일란성쌍둥이가 각각 환경이 다른 가정으로 입양된 후, 이들이 성인이 되어 만났을 때 보이는 차이는 유전자 결정론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DNA가 유의미한 사전 정보제공자는 될 수 있어도, 절대적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IQ 유전력 추정치가 얼마나 정확한지와는 별개로 유전력이 크다고 해서 그 형질을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중략) 키를 예측하는 핵심 변수 중 하나는 식습관이다. 유전자가 키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든 두 집단의 식습관에 차이가 있다면 이 차이 때문에 평균 키가 극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마찬가지로 IQ의 유전력에 대한 일부 추정치가 0.75나 0.80 정도로 무척 높다고 하더라도 서로 다른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비교하면 환경이 지능 형성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러한 사실은 입양 연구를 통해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다. 상위 중산층 부모에게 입양된 아이들과 이보다 가난한 가정에 입양된 아이들을 비교하면 상위 중산층 부모에게 입양된 아이들이 더 가난한 가정에 입양된 아이들보다 12에서 18 정도 IQ가 더 높다. 이런 엄청난 차이는 환경이 IQ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출처 : <유전자는 우리를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나> 스티븐 하이네/이가영

 

위 인용된 책에서는 입양 가정의 각기 다른 경제적 환경 차이를 언급했다. 그러나 경제적 요소 외에 또 다른 부분에 주목해 보기로 한다. 


교육기회의 평등에 관한 콜맨(Coleman) 보고서에 따르면, 학생의 학업성취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3가지는 

경제적 자본인적 자본(부모의 지적 수준, 교육 수준)가정의 사회적 자본(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관심, 격려)이며, 가정에 다른 자본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이것들이 '사회적 자본'으로 실행되지 않으면 학생의 교육적 성취에 적절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대입 공부든 or 인생 공부든,

중요한 것은 '정서'와 '환경'이다. 


먼저, 정서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이 주목받고 있다. Daniel Goleman에 의해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정서지능이란 타인의 감정뿐 아니라, 본인 스스로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조절하는 능력(the ability to identify and manage one’s own emotions, as well as the emotions of others)이다. 정서지능이 학습에 있어 중요한 이유는, 우리 뇌에서 인지 영역과 정서 영역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지 영역과 정서 영역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조화를 이루며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감정/정서 조절 능력이 인지 영역에 해당하는 집중력/기억력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EBS 다큐프라임> 정서지능 중
출처 : EBS 다큐프라임 <엄마도 모르는 우리 아이의 정서지능 2부>

단단한 정서감정조절능력과 연관되고, 이는 집중력, 기억력 아니라, 재미없는 공부임에도 불구하고 더 큰 목표를 두고 정서를 관리하는 능력, 자기 동기화 능력으로 이어진다. 필요하다면, 당장의 만족을 지연시키는 능력(만족지연 능력)까지 확장된다.


유년기 주로 시골 지역에 거주했던 나는 주변에 열심히 하는 친구들도 그다지 없었고, 공부 압박을 가하는 사람도 없었다. 단, 초등학교 중학교에서는 조금만 공부해도 쉽게 전교 1등을 했다면, 고등학교 때는 역시 한적한 지역이지만 나름 동네에서 잘한다는 친구들이 모인 곳이라 초중 때만큼의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삼 남매의 첫째로 태어나서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왔던 나는 원하는 만큼의 등수가 나오지 않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서지능이 낮았던 학생이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부정적 정서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은 학창 시절뿐 아니라, 성인이 되어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감정조절능력을 키우기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아이를 위한 감정 코칭 5단계를 제시한다.

1. 아이의 감정을 포착하기
2. 아이와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기회임을 인식하기
3. 아이의 감정을 공감하며 경청하기
4. 감정을 표현하도록 도와주기
5.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한계를 설정하고 문제 해결하도록 이끌어주기

정서지능이 높은 아이들의 부모는, 아이의 부정적인 정서를  충분히 표현하도록 도와주고,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결국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유능감을 느끼도록 한다.

<EBS 다큐프라임> 정서지능 중


다음, '환경'의 중요성이 있다. 음악을 사랑하는 가정이라면 집안에 음악이 흘러나올 것이고 이는 아이에게 영향을 미친다. 부모님의 근면한 인생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잠재적으로 근면 DNA가 새겨진다. 물론 '반면교사'로 부모님의 좋지 못한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나는 절대 부모님처럼 살지 않을 거야.' 란 마음으로 더욱 올곧게 성장하는 사례도 많이 본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고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는 성인기와는 달리, 아직 독립이 쉽지 않은 학창 시절의 경우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영향은 지대하다. 아이의 인생은 아이 스스로가 결정해야 하지만, 아이가 이러저러한 삶을 살았으면 하고 원하는 모습이 있다면, 먼저 가정 분위기를 그렇게 만드는 것이 우선인 이유이다.




다시 공부머리 유전자론으로 돌아와서, DNA, 유전자론에 지나치게 빠지면 운명론, 염세주의로 흘러갈 우려가 있다. 최재천 교수의 <과학자의 서재>란 책을 읽고 느낀 바가 크다. 책에서 저자는 유학 시절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독파한 후, 처음에는 세상의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는 듯한 황홀감을 느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염세론에 빠졌다고 한다. 모든 것이 유전자가 계획한 대로 움직인다면, 그동안 본인은 무엇 때문에 애를 써왔고 무엇 때문에 기를 쓰나 싶었다 한다. 그 후, 관련 서적을 더 읽고 더 깊이 공부한 후에는 웬만한 일에는 해탈, 초월의 경지에 이르러, 분명히 포기는 아니지만 손을 다 놓고도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저자의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소개한다.


나는 특별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하고 싶은 학문을 하면서 그 학문을 통해 깨달은 대로 살아가고, 그 삶에서 행복과 만족을 느끼고 있다.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삶의 모든 부분에서 무척 여유로워졌고 무슨 일을 하든 초조해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한 다음에는 마음을 편히 먹고 살아간다. 이제야 드디어 삶을 즐길 줄 알게 된 것이다.

<과학자의 서재 P.214> 최재천 지음


유전자가 정해진 '상수'라면, 정서 및 환경은 '변수'에 해당된다. 후자 영역은 우리의 의지 및 노력으로 극복 가능한 영역이다. 비단 학업적 영역을 넘어서, 우리 아이의 행복, 그리고 나의 행복을 위해서도 변수 영역을 긍정적 방향을 향해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비행사 이소연 씨의 말을 빌리자면,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되,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결과에 대해서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자세도 인생을 사는 지혜일 수 있겠다.

작가의 이전글 그녀의 바이링구얼 계획은 성공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