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 대부분을 한적한 곳에서 보냈던 나는,사교육이라고 할 만한 것 하나 없이주로 영화 및 팝송, 그리고 EBS 라디오 방송 위주로영어를 접했다.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되는 점은, 음원 구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던 그 옛날에도, 활자의 형태로만이 아닌, 반드시 영어 음원과 함께 콘텐츠들을 즐겼다는 점이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비문명 소녀의정석대로 영어를 배우고 자랐던 그 아이는, 결국 영어를 업으로 삼았고, 추후 EBS에서 강의를 하는 기회도 얻게 되었으니, 영어에 있어서만큼은 '진심'인 것이 맞다.
매달 배송되던 잡지를 눈 빠지게 기다리다가, 퇴근하시는 아빠의 손에 들려 있던 새 우편물을 건네받곤, 설레는 마음으로 포장을 뜯곤 했다지.
창간호 1995년부터. 95년도에 나는 몇 살이었던가.
처음으로 '영어티칭'이란 걸 받아본 것은, 아빠에게서였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6학년 ~ 중1 무렵 아빠에게 맨투맨 내지 성문으로 영어를 배운 기억이 난다. 아빠의 설명은 귀에 쏙쏙 들어왔지만, 영어 영화 및 팝송 등에 몇 년간 노출되어 영어 원어민 화자들의 발음 및 억양에 익숙해졌던꼬마는, 아빠의 토종 구수한 영어 발음이 잘 적응되지 않았다.
5*년생인 아빠의 영한 번역 능력은 세월의 연륜을 덧입어 감탄이 나올 정도이나, 영어 말하기, 정확히는 영어 발음에는 영 자신 없어하신다. 수년 전에는 외국인과 간단히 몇 마디 주고받아야 할 일들이 있었는데, 그때도 외국인들이 아빠 발음 자체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고 하셨다.
영어 발음은 중요할까? 개인적으로, '버터 바른 발음, 혹은 더욱 원어민 화자스러운 발음'에 목숨 걸 필요는 전혀 없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소위 원어민스러운 발음에서 느껴지는 겉만 번지르르한 유창성이 아니라, 내용(contents)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하는 말을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음(intelligibility)'이라고 한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라면, 아빠의 발음이나 억양은 일부 교정이 필요하다.
왜냐?
아빠는 원어민 화자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강세 박자 언어'인 영어 단어나 문장의 조음 방식이 아닌, '음절 박자 언어'(한 음절 한 음절 또박또박 발음하는)인 한국어의 조음 방식으로 발음하고 있으시기 때문이다.
일곱 살 내 딸 영어 이야기
내 아이에게 영어 노출을 시작한 지 6개월 정도가 지났을 무렵, 아이는 흥얼흥얼 영어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재미있는 영어 대사를 따라 하며 흥겨워했으나 발음이 정확하지는 않았다.현재는, 뭉개졌던 발음들이 상당히 개선되었고, 입에서 내뱉는 팝 가사 및 영어 문장의 '이해할 수 있음(intelligibility)' 정도가 상승했다.
아래에, 아이들 발음 교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몇 가지 팁들이 있다.
1. 우리 아이 처음 말 배우던 시절을 떠올려 보기
그간, 가끔, 내가 입모양을 보여주며 다시 한번 반복해서 또박또박 말해주면, 아이는 다시 따라 말하기도 했다. 우리가 어린아이들 말 배울 때 했던 문장들을 떠올려 보자. "엄마, 엄마 해봐~ 옳지, 잘하네~. 그럼 이건? 식탁, 식탁, 식탁 아이고~ 말 잘하네. " 우리는 이런 문장들을 내뱉었다.
아이가 말할 때, 다시 한번 또박또박 입모양을 보여 주며, 제대로 발음해보게 하면 좋다.
그런데, 몇몇 가정에서는, 부모님들께서 "내 발음 때문에, 오히려 아이 발음이 나빠지면 어쩌지?" 걱정도 한다. 가끔 듣는 부모님의 발음보다, 주로 노출되는 영어 음원에서 듣는 발음으로 습득하기 때문에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나 자신이 산 증인이기도 하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려의 마음이 든다면, 참고할 만한,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유명한 프로그램이 있다.
2. 양질의 무료 프로그램들 활용
BBC 제작의 '알파블럭스'는 어린 자녀의 영어 교육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음 직한 프로그램이다.
BBC 제작의 <알파블록스>
이 채널이 훌륭한 점은, 파닉스 규칙을 쉽게 알려 주고 이런 걸 떠나서, 어설프게 /s/는 우리말의 /ㅅ/소리야, /p/는 우리말의 /ㅍ/소리야, 이런 식으로 아이가 받아들이지 않도록 해준다는 점이다.
가령,
영어에서 /s/ 사운드는, 우리말의 /ㅅ/소리와는 다소 다르다. 굳이 영어의 음성학적 자질로 분류하자면, 무성 치경 마찰음(voicelss alveolar fricative)에 속한다. 윗니 바로 뒤의 윗잇몸 단단한 부분에 혀끝을 대본다. 그곳이 치경이다. 그다음 혀끝을 살짝 떼고, 공기가빠져나갈 틈을 만든 후에, 강한 압력으로 뱀이 지나가는 듯한 소리, 튜브에서 바람 슥~~~~~~빠져나가는 듯한 소리를 내야 한다.
영어에서 /p/사운드는 어떨까? 이 역시 우리말의 /ㅍ/소리보다는 조금 더 강하게 발음한다. 양 입술을 모아 앙다물었다가 거품이 팍~하고 터지듯 떼며, 울리지 않도록(무성, voiceless) 발음해 주어야 한다. 음성학에서는 무성 양순 파열음 (voiceless bilabial stop)으로 분류된다.
듣는 어른도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하물며 어린아이들에게 음성학적, 음운론적 자질을 설명하며 발음을 알려줄 수는 없지는 않겠는가?
그런데 이 알파블럭스 프로그램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영어의 음가를 익힐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일례로,위에 걸어둔 알파블럭스 영상 링크를 클릭해 보면, s가 바람 소리를 내며 달린다.그냥 우리말의 ㅅ소리 그대로 발음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로는 알파블럭스의 s처럼 뱀이 지나가는 듯한 소리, 튜브에서 바람 슥~~~~~빠져나가는 듯한 소리를 내주어야 한다.
물론, 단점도 있다. 우리나라의 <한글이 야호>라는 프로그램의 장단점과도 유사하다. 이 <알파블럭스>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파닉스(phonics)나 읽기를 돕기 위해 제작된 프로그램이다 보니, 아이들 입장에서, 엄청난 흥미를 느끼고 시청하기는 어렵다. 내 딸도 열심히 시청하지는 않았고, 몇몇 영상에만 관심을 보였다.단, 영상 1~2개 정도 시청만으로도 효과는 매우 좋았다. 영상 속 캐릭터들의 소리 및 대사를 똑같이 따라 하며, 음가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일부러 보여주지는 않고, 아이가 좋아하는 영상을 시청 후, 간혹 한 번씩 보여주고는 한다. 만약, 아이가 원하지 않는다면, 초반부터 억지로 영상을 들이밀 필요는 없다고본다. 어느 정도 영어 소리 노출이 이루어진 후, 가끔 한두 번씩만도움을 받아도 충분히 유용한 가치를 느낄만한 프로그램이다.
다시, 몇 년 후 칠순을 맞는 우리 아빠의 영어 이야기로 돌아와서.
아빠가 발음했던 모노톤의 '프린티드스끼보더쎔블리'는, 'Printed Circuit Board Assembly'였다. 컴퓨터 화면에서 설명서를 읽으시다가 발견한 단어였다.
Printed Circuit Board Assembly, 출처 구글 이미지
아빠에게 손녀와 함께 알파블럭스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발음 교정을 꾀해보시라 말씀드릴 것인가? 아니면, 십수 년 전 아빠가 나에게 영어를 알려 주셨듯, 역으로 이번엔 내가 아빠의 영어 발음 교정을 도와드려야 할 것인가?
그러나 난 이미 답을 알고 있다. 가족 간 학습적인 도움을 주고받는 것에 관한 한,나 정도의 관용의 크기로는, 서로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내 딸에게도 무언가를 가르치겠다는 비장한 태세가 아니라, 필요시 적절한 도움을 제공하고, 나 스스로가 역할 모델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자세로 접근한다. 그 옛날, 영자 신문을 구독해 읽으시던 아빠의 어깨너머로 내가 영어라는 언어에 호기심을 갖고 지속해 왔듯이, 내 딸도 나로 인해 긍정적인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기를 원한다.
우리 아빠에게는, '구글 음성 검색 어시스턴트'를 추천했다. 영어 발음에 해당하는 Practice 기능을 제공하고 있으며, 분석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곧 칠순 우리 아빠 VS. 일곱 살 내 아이, 영어 발음 교정 프로젝트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