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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bird Feb 23. 2023

어색해진 짧은 머리

(부암동 이주기)


아침 7시 40분, 예고한 시각 정확히 조경팀이 집앞에 도착했다. 오늘은 가지치기 하는 날.


추위가 조금 풀렸을 무렵, 나 혼자 전지가위 아무데나 휘두르며 싹뚝싹둑 잘랐다가 이게 나 한 사람의 힘으로 될 규모의 일이 아니란 걸 금세 깨달았다. 더구나 선무당 사람 잡는다고, 무슨 나무인지도 모르고 막 쳐내도 되는지, 이렇게 막 잘라도 되는지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선 더이상 일을 진행시키는 것보다는 첫 해이니 전문가의 손길을 받아보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냈다.


프로는 달랐다. 나는 출근하느라 지켜보진 못했지만 아내가 시시각각 달라지는 정원 풍경을 사진으로 실시간 전송했다. 전문가들이 역시 다르다, 이분들 너무 열심히 해주신다 감탄 또 감탄하며.


특히 벌목 불가 판정을 받은 은행나무 세 그루는 당시 전지도 힘들다고 했었기 때문에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맨몸으로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가 싹 정리해주셨다. 은행나무 세 그루에서 떨어진 낙엽을 쓸고 쓸다 질려버린 나는 앞으로 3,4년은 낙엽 걱정을 한 시름 덜었다는 게 더 크긴 했다.


집채만하게 쌓인 나뭇가지, 줄기들과 언덕 하나는 될만한 낙엽을 트럭 두 대에 싣고 나서야 작업은 끝났다. 사진으로 예상했던 것보다 작업량이 훨씬 많았다면서도 사장님은 나무 관리하는 요령을 이것저것 많이 알려주고 쿨하게 떠나셨다고 한다.


퇴근해서 대문을 들어서니 집이 낯설 정도로 훤하다.


마치 장발족이 스포츠 머리로 박박 민 것 같은 은행나무 세 그루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마당이 통째로 머리 깎고 논산훈련소에 입대하는 기분이다. ​


Before


After


#부암동 #가지치기 #은행나무 #벌목 #단독주택 #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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