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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bird Apr 02. 2023

섭리대로 살자-가드닝이 준 깨달음

(부암동 이주기)

화전 부쳐먹을까 했던 진달래는 어느새 다 졌고 이번 주말 손님 올 때까지 버텨주길 바랐던 살구꽃은 이틀 사이에 꽃비가 되어 화르르 바닥으로 떨어졌다. 진달래, 개나리와 함께 피면 꽃대궐이 될 철쭉과 영산홍은 꽃망울만 내놓은 채 쉬엄쉬엄 태평이다. 화단에 심은 다알리아는 고개 빳빳이 들고 생생한데 바로 옆 수국은 더위 먹은 소처럼 축 늘어져 있다. 그런가 하면 기다려도 싹을 내지 않아 돈만 버렸다고 생각했던 수선화는 며칠 전부터 쑤욱 솟아오르더니 구근 20개 중 18개가 싹을 틔우고 있다. 잡초인 줄 알고 뽑아버릴 뻔했던 풀에선 보라색 꽃이 피기 시작했고, 그중 하나는 지금 보니 전 주인이 심었던 작약인 것 같다. 눈길 주지 않은 사이 담벼락에 말라붙어 있던 담쟁이덩굴, 단풍나무, 은행나무 등걸에서도 붉고 푸른 새순들이 나왔다.

피는 놈 지는 놈, 먼저 가는 놈 지각하는 놈, 다들 섭리대로 움직일 뿐 내 뜻대로 되는 건 없다. 내 욕심대로 구겨박아 심는다고 다 꽃을 피우는 게 아니더라. 손으로 움켜쥐면 움켜쥘수록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세상만사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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