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뉴스의 정시성이라는 덕목이 많이 퇴색하며 뉴스 프로그램의 소위 시청률 경쟁도 예전보다 덜하다. 그래도 TV로 한정하면 동시간대 뉴스가 방송되면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일. 시청률이 뉴스의 품질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품질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다른 지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비판을 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뉴스 프로그램 비판할 때 (모순적이게도) 시청률 들이대는 게 여전한 현실이다. 누구보다 그걸 잘 알고 있는 곳은 편집부다. 상대적으로 편집 업무를 오래 하다 보니 ‘욕을 먹더라도 일단 이기고 봐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어차피 그날 내보낼 기사들인데, 지루하지 않게 흐름 짜고 상대 채널 편성에 맞춰 전략적으로 아이템 순서 배열하는 건 당연한 업무지, 그럼그럼 해가며.
한동안 우리 메인뉴스 분량이 길어 후반 15분 정도가 상대사 생활정보 프로그램과 겹치는 시기가 있었다. 월,화,수,목,금 포진한 프로그램 제목만 들어도 아찔하게 현기증이 났다. <긴급출동 119> <세상에 이런 일이> <맨인블랙> <생활의 달인> 등등. 말 그대로 ‘세상에 이런 일이’하는 심정이었다. 그중 압권은 <생활의 달인>. 그날 나오는 달인이 누구냐에 따라 뉴스 시청률도 영향을 받았다. 어디서 그렇게 잘도 찾아내는지. (나는 대한민국에 꽈배기 달인이 그렇게 많다는 걸 그 때 알았다. 한국인 주식이 꽈배기도 아닌데 무슨 달인이 그렇게 끝도 없이 나오는지. 마를 갈아 넣는다는 달인부터 고사리를 찌는 뜨거운 김으로 반죽을 숙성시킨다는 달인까지 나왔다) 잊을 수 없는 날은 계란 달인이 나온 날. 계란 공장에서 일하는 분인데 손에 계란을 집어드는 순간 이게 ‘대란’인지 ‘왕란’인지 ‘특란’인지 오차 없이 바로 구별해내는 사람이었다. 계란 달인의 현란한 손놀림이 끝나자 두 번째 달인이 등장했다. 소총 대신 삽자루로 제식훈련을 한다는 아저씨였다.(그걸 대체 왜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남들 다 하는 일을 하면 그 프로그램 나오기 어렵다) 역시나, 다음날 뉴스 시청률은 ‘유린’당했다.
목요일은 KBS1의 날이었다. 나 역시 대한민국 최고 프로그램이라 생각하는 <한국인의 밥상>. ‘파스타는 이 집이네 저 집이네’ 하는 단순한 맛집 프로그램이 아니다. 팔도강산 방방곡곡, 매주 나오는 밥상이 다 다르다. 그리고 정확히 그 밥상의 수만큼 얽힌 이야기가 있다. 뉴스 모니터를 하면서도 눈은 자꾸만 옆 화면으로 넘어가고 귀는 앵커 대신 최불암 목소리를 듣고 있기 일쑤였다. 이 프로그램은 대한민국이 멸망하지 않는 한 지속될 프로그램이구나..절망하면서.
뉴스가 예능 등 타 장르 프로그램과 시청률 경쟁한다는 게 무의미한 일이긴 하지만 하여튼 놓여진 조건에서는 뭐라도, 어떻게든 해보자고 아등바등하던 세월이었다. 앞에도 이야기했지만 어차피 낼 기사들인데 전략적으로 배치해 다음날 성적 괜찮게 나오면 기분이라도 좋으니까. 수치와 품질에 대한 평가가 둘 다 잘 나오게 하는 게 결국은 편집의 레시피. 그걸 얼마나 조화롭게 잘 하느냐에 따라 편집의 달인(達人)-명인(名人)-장인(匠人) 이렇게 발전해간다고 믿는다. 난 물론 거기까진 가지 못했고. 어쨌든 요일마다 타자를 바꿔가며 그렇게 우리를 괴롭혔던 프로그램들도 이젠 편안하게 볼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