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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bird Aug 14. 2021

난 '전 과목 B+'을 찾고 있었다

(부암동 이주기)

오래전 결혼정보회사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


"저희가 커플을 성사시킬 때 보는 게 있어요. 꼭 충족시켜야 하는 조건 두세 가지가 서로 겹치는 남녀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밀어요. 가령 '다른 건 안 볼 테니 외모와 학벌만 본다'거나, '키 크고 돈 많으면 다른 건 상관없다'거나.. 그렇게 요구 조건이 확실하면 될 확률이 70% 이상입니다.


그런데, 꼭 필수불가결한 조건을 내세우는 것도 아니면서 이것저것 다 언급하는 분들이 있어요. 외모를 보는 듯해서 예쁘고 잘생긴 사람 소개해주면 집안이 마음에 안 든다든가, 직업이 중요하다 해서 원하는 직업 소개해주면 갑자기 성격을 트집 잡는다거나.. 한마디로 '전 과목 B+'을 찾는 사람들요. 이 분들은 A+을 고집하는 게 아니라 '과락(F)'을 못 참는 겁니다. 모든 조건이 어느 정도 충족돼야 한다는 거죠. 그런 분들은 사실 저희가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어차피 성사될 확률이 낮거든요. 결혼할 생각이 있는데도 적령기 넘어서 솔로인 분들은 대부분 이런 경우가 많아요."


이다음에 그들이 한 말이 중요한 포인트다.

"왜 성사되지 않느냐고요? '전과목 B+'은 이 세상에 없어요."


뒷머리가 띵했다. 과락(F)이 없는, 전과목 B+인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참으로 맞는 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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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가까이 된 기억을 다시 끄집어낸 이유는, 지난 1년 반 동안 집을 고르는 과정에서 이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전 과목 B+’인 집을 찾고 있었던 거다. 아내와 함께 매물로 나온 집을 보러 가면, 처음엔 와 좋다, 좋다 마음에 들어하다가도, 집으로 돌아오면서는 다 좋은데 너무 오르막이다, 방이 적다, 마당이 작다, 주위에 편의시설이 없다, 지하실이 있었으면.. 단점들이 줄줄이 거론됐고 얼마 안 가 흥분은 가라앉았다.

“그래, 애매해..”   


물론 집이 한두 푼 하는 물건이 아니니 하나하나 중요한 요소들이고 따져봐야 할 조건들이다. 문제는 그러다보니 내가 어느 순간 주택에 ‘가야 할 동기’보다는 ‘가지 않을 구실’을 찾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다른 것 다 포기해도 좋을 정도로 가고 싶었다면, 또는 반드시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더 빨리 결단했을 것이다. 가령 아이의 입학 때문에 내년까지 반드시 어느 동네로 이사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집이 좀 낡았든 교통이 좀 안 좋든 이사를 갔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가고 싶을 뿐, 반드시 가야 하는 상황까지는 또 아니었으니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보이며 주저주저한 거다.


이번 집을 고르면서는 장단점을 냉정히 보되, 우리가 더 좋아할 수 있는 장점에 더 주목하기로 했다. 아내와 나는 숲길 걷는 걸 좋아하니 집이 이렇게 숲속 느낌이라는 게 먼저 마음에 들었고, 그러면서도 큰길에서 많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게 두 번째로 좋았다. 다른 단독주택 동네에 비해 유동인구도 좀 있고 도심과 가장 가까우니 너무 외진 곳으로 간다는 느낌도 덜했다. 대지에 비해 집이 작은 게 단점이지만 둘이 살기엔 부족하진 않으니 오케이. 주차장은 만들면 되니까 큰 문제는 아니다. 하나하나 정리를 하니 결심하기 한결 수월해졌다. 처음 시도하는 주택 살이, 걱정도 되지만 기대가 더 큰 상태다.


전과목 B+인 사람이 있지도 않겠지만, 설령 있다 해도 인생에 F 하나 없는 그 사람 별로 매력 있을 것 같지 않다. 우리 모두가 약점과 단점이 있는 존재고, 그래서 서로 돕고 채워주며 살아가는 것. 그러다보면 더 나은 결과가 따라온다는 것. 사람 뿐 아니라 집도, 세상만사도 그렇게 하나하나 풀어간다는 것. 깨달음을 준 20년 전 결혼정보회사 직원께 새삼 감사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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