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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bird Sep 15. 2023

忘年交

내가 좋아하는 중국어 단어



중국어는 표의문자라 글자는 복잡하고 많지만 대신 한두 글자만 조합해도 다양한 의미를 표현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忘年交. 직역하면 ‘나이를 잊은 친구’, 다듬으면 나이차를 상관하지 않는 친구, 교제 이런 뜻으로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이다.

한국 사회에선 “두 분은 어떤 사이세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 동갑이 아닌 경우 가끔 난감하다. 호칭이 나이 또는 서열로 수직적으로 촘촘히 정해져 있다 보니 그렇다. “학교 선배예요.” “회사 후배예요” “대학 동기요” 이렇게 설명이 쉬운 경우도 있지만 특정집단으로 묶여있지 않을 경우 답하기 더 애매해지며 “그냥 아는 형”이 되기 일쑤다. 아는 형이 뭐냐 아는 형이..

마흔 넘어가면 대부분 자기 나이는 한 살이라도 줄이고 싶어하면서 처음 만나는 사람의 나이는 따진다. 직접 묻기 어색하면 주변인을 통해서라도 어떻게든 알아내기 마련. 때로는 나이를 나중에 알고 "세상에, 알고 보니 나보다 세 살이나 어리더라"며 대단한 손해라도 본 듯 가슴을 치기도 한다.

나이로 호칭이 정해지니 어쩌겠나. 일단 형,동생이 정해지면 나뭇가지 뻗듯 쭉쭉 한국 사회에서의 질서, 아니 서열로 이어진다. 음식점에 들어가서 앉는 자리, 하다못해 컵에 물을 따르는 자는 누구이고, 숟가락 젓가락을 놓아드려야 하는 순서는 어찌되는지 물 흐르듯 정리된다. 워낙 자연스럽다보니 차라리 이렇게 하는게 속 편한 것도 있다. 문제는 이게 깨지는 순간 발생하는 어색함과 '욱'함. 응당 받아야할 뭔가를 못 받은 것같은 그런 심리 말이다. "저 자식이.."

忘年交라는 말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말이 담고 있는 ‘존중’의 의미이다. 친구가 되는 데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 공통의 관심사가 있고 서로 배울 게 있고 함께 있는 게 즐거우면 친구라는 것. 忘年交 이 한마디에서 평등한 소통과 존중이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대접’이 아닌 ‘존중’ 말이다.

위든 아래든 나이 차이 상관없이 그냥 서로 좋은 친구라 여기면 복잡할 일 많이 줄어든다. 고기는 잘 굽는 사람이 굽고, 물 따르기나 수저 놓기는 앉은 자리에서 가까운 사람이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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