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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bird Mar 20. 2022

<어떻게 죽을 것인가>-아툴 가완디



'멋지게 살다가 깔끔하게 죽는' 비결이 아니었다. 미국인 의사인 저자는 노년을 미화하지 않는다. 정반대다. 거북할 정도로 현실을 직시한다. 자신이 만난 노인들의 이야기를 기록영화처럼 서술하며 소위 '아름다운 죽음'은 없다고 단언한다. 미디어에는 '100세까지 팔팔하게 사는 법', '믿을수 없이 젊은 신체 나이' 등등이 넘쳐나지만 이 모든 게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99%의 노인들 상황은 그렇지 않다,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없는 날이 기어이 찾아오고, 그 순간 그 사람의 존엄이 무너진다는 것. 내 의지와 상관없이 집을 떠나 요양병원에 가야 하고, 치료와 보호라는 이름 아래 수십 년을 지켜온 생활 루틴이 무너지며 더 이상 내 인생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상황.   

돌아가신 모친이 생각났다. 유난스러울 정도로 혼자 해내시겠다던 성격. 일흔 때인가, 자식 셋 모르게 혼자 병원에 사흘간 입원해 백내장 수술을 하고 오셨다. 이후 심박동보조기를 교체할 때도 '수술도 아니고 하루면 된다더라'며 우리 몰래 혼자 다녀오셨다. 한밤중 류마티스 통증이 심해지자 혼자 구급차를 불러 병원에 가시고는 다음날 오전에야 연락해 기함을 하게 한 적도 있었다. 이유는 늘 하나. 너희들 바쁜데 연락하기 싫었다고. 이렇게 혼자 다 하는데 뭐하러 괜히 신경 쓰게 하냐고. 그때마다 왜 전화 안 했냐며 소리만 질렀지 그게 전부였다. 우리 엄마는 다르다, 혼자도 잘 하신다고 멋대로 생각하고 안심도 했다. 한마디로 못 본 척하고 '묻어갔다'.

암은 달랐다. 수술, 방사선, 말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괴물 앞에 몸보다 정신이 먼저 흔들렸다. 그래도 '여든 나이에 무슨 항암이냐 싶지만 너희들 생각해 한 번 해보겠다'고, 나라면 꿈도 못 꿀 정신력으로 헤쳐나가셨다. 관자놀이부터 귀 아래까지 째고 임파선을 도려내는 수술부터 시작. 결국엔 너희들한테 의탁할 수밖에 없을 테니 할 수 있을 때까진 혼자 해보시겠다고, 나중을 대비해 적금 들겠다며 우리가 하루 휴가 내는 것도 만류한 채 방사선 치료도 혼자 받으러 다니셨다.

그러나 항암 단계에 가서는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독한 약 때문에 침대에서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던 어느 날, 처음으로 이런 말을 하셨다. "이렇게 살아서 뭐 해." 두 번의 항암, 그리고 전이. 어머니는 더 이상의 치료는 안 하시겠다며 의사에게 당부했다. "마취약은 많이 써 달라. 아픈 거 싫고, 무엇보다 정신줄 놓아 자식들 고생시키기 싫다." 이후 어머니의 하루 24시간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80년 인생이 마감했다.

내 인생 드라마 <디어마이프렌즈> 막바지, 치매 걸린 김혜자가 '나 혼자 잘 할 수 있다'는 말에 친구 나문희가 '잘 할 수 있었어, 지금은 아니고'라고 하는 순간 대성통곡하며 무너지는 장면이 나온다. 노인들 대부분이 이 순간을 겪게 될 것이다. 나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난 이겼어, 난 괜찮아'하는 정신승리가 가장 무의미한 게 사실 노화일 것이다. 태생적으로 백전백패이므로. 그리고 그 누구도 결과가 정해져 있는 이 승부를 피해갈 수 없으므로.

그러고 보면 나이듦에 무언가를 준비하는 게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하고, 그래도 뭔가 대비해야 할 게 많아 보이기도 하고 생각이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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