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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루 Aug 21. 2020

실패를 대하는 자세

현실도피이거나, 정신승리이거나


아침에 문자 한 통이 왔다. 며칠 전 이력서를 냈던 회사에서 합격자 발표를 했다는 문자였다. 처음 문자를 받고 정말 웃기게도 '합격한 거 아니야?' 하는 자신감에 가득 찼다. 자기애가 강한 편인가 보다. 하지만 반전은 없었다.  '귀하와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라는 정중한 통보를 받았다. 너무 정중한 통보라 한참을 다시 읽었다. "그래서 합격이라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최근에 이력서를 몇몇 군데에 냈는데 하나같이 다 떨어졌다. 퇴사를 하면서 '할 수 있는 한 많은 실패를 해야지' 싶었는데 덕분에 안 해도 될 실패를 더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괜히 생각했다. 보고 있던 노트북을 닫고 어제 읽다 말았던 책을 꺼냈다.


책을 읽다 보면 다양한 환경에 있는 인물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파견근무를 하며 지내는 30대의 사람, 집안이 잘살아 평생 일한번 안 해본 모태 부자, 남들이 봤을 때 성공했다는 인생을 살고 있지만 매일 밤 공허한 마음을 달래러 술집을 전전하는 CEO, 어린 나이에 온갖 고생을 하다가 결국엔 사고를 쳐 달아난 10대의 학생까지. 그런 인물들을 보고 있자면 이 소설 속에서 '나'라는 인물이 있다면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날 밤 오빠와 전화를 했다. "오늘은 뭐했어?"라며 오빠가 물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은 백수에게 '오늘 뭐했어'라는 질문은 스스로를 참 한심하게 만든다. 그런데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다. 책을 읽은 덕분인가.


"이력서 넣은 곳... 떨어졌어. 하나같이 다 떨어지네. "

"..."


오빠는 내 대답을 안쓰럽게 본 것 같다. 하지만 오빠의 걱정과는 달리 나는 꽤 담담했다. 사실 거의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상하게 내가 아직 책 속의 한 인물인 것 같았다. 상상 속에서 못 벗어난 것일까? 지금 내가 겪는 이 자잘 자잘한 실패들은 그저 몇 글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아직 내가 책을 읽고 있는 중이라면 맨 마지막 장의 나는 꼭 무언가 해낼 것이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원인을 알 수 없는 자신감이 마음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나 조금 현실감이 없어. 현실과 책 속 어딘가에 붕 떠 있는 기분이야. 우울하다거나 힘들다는 이야기가 아니야. 나를 '책 속의 한 인물'로 바라보니까 오히려 불안함이 없어져. 다음장만 넘기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결론이 나올걸 알거든. "

"괜찮아..?"

"ㅋㅋㅋ응. 이거 정신승리인 건가?"

"좋게 생각하면 정신승리인 거고, 나쁘게 생각하면 현실도피 같은데?"

"현실도피... 진짜 그런 건가..."

"근데 나쁘게 생각할 필요가 있나? 어차피 나쁘게 생각해도 좋게 생각해도 달라지는 게 없는데ㅎㅎ. 좋게 생각하자!"


오빠 말이 맞다. 현실도피든, 정신승리든 결과는 하나다. 나는 지금 나의 실패에 참 담담히 견디어내고 있다. (정상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나'라는 인물은 앞으로도 숫한 실패를 맛볼 것이다. 하지만 꼭 몇 장 뒤엔 앞으로 나아갈 것이고, 또 몇 장 뒤엔 무언가 해낼 것이고, 또 몇 장 뒤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이 마음이면 진짜 무언가는 해낼 것만 같다. 사람 마음가짐이 왜 중요한지 이제 알겠다. 넓게 바라보니 불안함이 사라지고 조금은 무모하게 덤빌 수가 있는 것 같다.


나쁘게 생각하지 않기로 해



드루(@hey_dru)

사진계정 @druphoto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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