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차 미니멀 라이프 호소인

by 감자

2015년부터 미니멀 라이프 호소인의 삶으로 살았다.

파워 맥시멀 리스트였던 나에게 미니멀 라이프는 센세이션 그 자체였고 그 삶을 동경하게 되면서

꾸역꾸역 노력하며 살았던 것 같다.





매해 여러 곳에 수많은 물건들을 기부했다.

해가 갈수록 사는 물건의 갯수는 줄어들었지만 참다 참다 한 번씩 치밀어 오르는 물욕은 참지 못했다.

그렇게 폭풍같이 사다 어느새 정신이 들면 차곡차곡 박스에 담아 기부를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꽤 많이 선물했었다.







그래도 항상 작년보단 물욕 쇼핑을 덜하다고 있다는 이상한 위안감을 갖고 있었다.

기부품을 몇 박스씩 보낼 때마다 생각했다.

이걸 돈으로 하는 게 진짜 도움이 되는 거 아닌가..


보부상처럼 나는 맨날 뭘 이리 바리바리 싸서 보내는가..







굉장히 좋은 마음으로 나는 기부 천사가 될 거야! 는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라도 정리를 하고 나면 폭풍 같았던 물욕에 대한 죄책감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파워 맥시멀러로 십수 년을 살아보니

나는 물건을 좋아한다기보단 물건을 고르고 사는 행위를 좋아했던 것 같다.



신나게 쇼핑을 하고 와서 쇼핑백 채로 집 안에 며칠 동안 묵혀놓는다.

택배가 와도 일주일 넘도록 뜯지 않고 방치해서 반품 기간을 놓친 적도 많았다.



그러다 정신이 들면 꽉 찬 물건들로 숨이 막히는 것 같아서

깨끗하고 좋은 것들을 차곡차곡 우체국 6호 박스에 담아 기부 업체에 보냈다.





이게 무슨 돈지랄 인가..

뼈 빠지게 벌어서 꽤 오랜 기간 동안 이런 짓들을 하며 살았었다.

허한 마음을 채우는 용도라고 하기엔 항상 카드값이 목 끝까지 올라와있었다.






올해도 집 근처 아름다운 가게에 양손 무겁게 8번 정도 다녀왔다.

시간 여유가 많길래 당근마켓도 꽤 많이 했었다.

명품 가방도 안 팔리는 한 개를 빼곤 전부 다 처분했다.


특히 명품 가방을 팔 때와 고가의 의류를 팔 때 판매 금액의 대한 현타란...!!

( 왜 이런 걸 사는데 긴 시간 충성을 하고 살았을까..

내 삶에 위로가 전혀 안되는 것들인데.. 이것들을 처분하면서 앞으론 정말 필요한 것만 구입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구입할 당시 나에게 무리가 됐던 것들이라 중고 값에 대한 충격이 크게 와 닿았다.)




금값이 무섭게 치솟길래 갖고 있던 액세서리들도 종로에 가서 다 팔았다.

이젠 귀에 걸고 목에 걸고 이런 게 다 귀찮아졌다.

이렇게 된 진 좀 된 것 같다.





작년 가을 아주 오랜만에 친한 언니를 만났는데 날 보더니 "어? 이젠 아무것도 안 해?"라는 말에..

"언니 전 이젠 이런 게 다 귀찮아요.. 피곤해요.." 하니.. 몸이 너무 피곤하면 그럴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랬나..






40대가 되면 지금부턴 주얼리로 얼굴에 빛을 만드는 거라고 하던데..

나는 20-30대 때 여기저기 주렁주렁 걸고 다니다 정작 필요한 나이가 됐을 땐 다 귀찮아졌다.







그동안 카드값으로 기른 안목은 갈수록 높아만 지는데 내가 가진 재산은 비루해서 그런 것일까..?

이젠 무엇을 사도 맘에 드는 게 별로 없다.


정말 비싼 무언가를 사면 이런 맘이 안 들까 싶어서 한 번씩 좋은 걸 사러 가서 보면 '이걸 이 돈 주고 사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에 선 듯 지갑이 열리지 않는다.






가끔 좋은걸 사서 오래도록 쓰자는 마음으로 맘에 드는 고가품을 사 와도 그 기쁨은 하루를 못 넘긴다.


이런 일을 수백 번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뭘 사는 게 재미가 없다.

그걸 사러 가는 것도 귀찮고 어쩔 땐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백화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심장이 뛰던 쇼핑광인이었던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게 스스로 놀랍기까지 하다.





에너지 고갈 이슈로 인한 귀차니즘 덕분인지 호기롭게 서른 살에 시작한 미니멀 라이프는 마흔 살 된 지금 10년이라는 시간을 들여서 완성되고 있는 것 같다.






남편에게 이런 나의 증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의 대답. (우린 연예 7년, 결혼 11년 차다.) 질량의 법칙 알지? 자긴 20-30대 때 이미 충분히 할 만큼 했어. 재미없어질 만도 됐어.







어쨌든 나는 결국 수많은 기부와 후회 끝에 미니멀 라이프라는 삶에 조금은 더 가까워진 것 같다.



이것또한 정석은 아닌 것 같지만 나만의 미니멀 라이프를 만들어 가는 것 같다.



전엔 한 가지 디자인이 맘에 들면 깔별로 다 샀었는데.. 이젠 한 가지 디자인 한 칼라로 2-3벌씩 산다.

깔별로 사면 다 입을 줄 알았는데 나는 또 처음에 맘에 들었던 그 한 칼라만 입는 사람이었다.







진정한 미니멀리스트가 되려면 한 스타일 한 칼라 한 벌만 사야 할 텐데..

쇼핑이 귀찮다 보니 적당히 맘에 드는 걸 찾았을 때 세탁하고 마르는 시간까지 계산해서 2-3벌을 한 번에 구입하는 것이 내 생활방식과 잘 맞는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산더미처럼 쌓인 옷 무덤이 싫어서 스티브잡스처럼 사복의 제복화를 하고 싶었던 지난날들이 있었는데 마흔이 된 이제야 사복의 제복화가 완성되어 가는 것 같다.






내가 들고 있는 고가의 가방이 날 빛내주고 매일 새로운 옷으로 바꿔 입고 치장하는 것이 날 진정한 멋쟁이로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날들도 있었는데.. 물론 그런 시간들을 충분히 보내봤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젠 그런 것에 대한 재미와 미련이 사라진 것 같다.






무소유까진 아니지만 나는 나에게 꼭 필요한 것들만 갖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복잡한 게 싫다. 단순하게 살고 싶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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