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제나 주연 Apr 10. 2020

[자작나무 숲] 당신을 기다립니다.

숲 속 꼬마 여행자



아빠? 정원에 심은 목련은 어땠어요? 경주 김유신 장군묘 벚꽃길은 또 얼마나 예뻤을까? 402번 버스 기사님, 오늘도 남산 지날 때 벚꽃엔딩 곡 틀어 주셨나요? 부암동 자하 만두 한 그릇 하고 걸어 내려가던 등산로 풍경들, 짧은 점심시간 선정릉 걸으며 마셨던 커피


요즘 문득, 옛 봄날의 기억들이 안녕? 하고 나에게 안부를 묻는다. 나의 봄은 언제나 경쟁 PT로 하루 종일 회의실에 갇혀 지냈고, 퇴근길 떨어진 벚꽃을 보는 것이 전부였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기억은 그 시절로 나를 불러 세운다. 어떤 바람, 어떤 냄새가 문득문득 잊고 있던 기억을 불러일으킬 때마다 내 안에 이토록 멋진 봄날의 기억이 있었나 싶어 놀란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옛 봄날은 마냥 따사로운 기억으로 남았고, 코로나19 록다운의 불안과 공포도 점점 멀어지고 이것이 일상인 양 생각보다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공원에서 사람들을 만날 수 없어 STAY HOME을 잘 지키고 있구나 생각했는데 지나니 공원에 사람들이 제법 보이기 시작했다. 갑갑한 집을 벗어나 봄을 누리고픈 똑같은 심정으로 나왔을 테니 인사라도 건네고 싶을 정도로 반갑고 사람들이 위로가 되었다. 반가움도 잠시 마스크  사람들은 극히 드물어 공원마저 안전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곤소곤 속삭이는 자작나무숲
하루가 다르게 잎이 푸르러진다

공원 대신 숲길을 찾아다녔다. 집에서 걸어야 갈 수 있는 자작나무 숲을 발견했다. 영국에서 잘 볼 수 없는 언덕에 마치 인제 자작나무 숲 같아 왠지 친근했다. 자작나무 숲은 사각사각, 바스락바스락, 폭신폭신, 짹짹짹  ASMR에 나무 사이로 새어 나오는 봄 햇살이 나를 위로하는 것 같았다.



Let's go for a walk

[숲 속 프로그램]

며칠이지만 숲의 학교 다닌 경력을 이용해 숲 속 놀이터에서 자연을 이용해 놀이로 운동을 시작 했다. 여기저기 쓰러진 통나무 위를  아슬아슬 균형을 잡아가며 끝까지 통나무 건너기, 흔들흔들 통나무를 마구 흔들어 균형 잡기 놀이, 숲은 숨을 곳이 많아서 숨바꼭질하기 최적의 장소가 되고, 바스락바스락 낙엽 이불도 덮어보고, 떨어진 솔방울을 한 가득 담아 나무 맞히기 놀이, 개미를 한참 관찰하고, 집으로 돌아와 개미와 나무 관련된 책을 펴 보는 아이가 신기하고 대견스럽다.


입을 쩍벌린 악어나무를 올라 타다.


조심성이 많던 아이가 모험심 많은 탐험가가 되었다.
숨바꼭질이 제일 신나!


NOT A STICK


어릴 적 숲에서 가장 좋아했던 놀이는 우리들만의 비밀장소, 아지트를 만드는 것이었다. 아지트를 만들고, 그곳이 약속 장소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아이와 함께 아지트를 만들어 보기 위해 쓰러진 통나무를 줍고, 굵은 나뭇가지, 잔가지들을 하나둘씩 주워 기둥을 세운다. 얼기설기해 보이지만 아이는 숲의 재료로 뚝딱 우리만의 비밀 아지트를 완성하며 숲 속 꼬마 건축가가 되어 본다.


나뭇가지의 쓸모를 배우며
숲속 꼬마 건축가
자작나무 숲에도 봄이 찾아왔다.


부활절 에그 헌터[Egg Hunter]


자연 놀이터도 일주지나니 지겨워하는 것 같아 어제부터는 보물찾기 놀이를 시작해 보았다. 마침 금요일부터 부활절 연휴가 시작되어 이때 아이들 하는 놀이 에그 헌터(Egg Hunter)인데, 한국의 보물찾기 같은 거라고 해서 올해 한번 참여해 보고 싶었던 축제였다. 공원이나 농장에서 부활절을 기념해서 각종 행사와 함께 달걀 모양의 모형들을 숨겨놓고 그것을 찾는 놀이이다.

 


매년 기업이나 호텔에서 다양한 이벤트 행사로 진행
토끼 사냥을 떠나자!
도구를 이용하는 법도 익히고
집에서도 보물찾기 하며 오후를 보낸다.




사우스뱅크에 있는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지난달 [Among the Trees] 나무들에 대한 전시가 있었다. 자작나무 숲길을 걸으며 내내 하얀 자작나무 숲의 회화와 자작나무 사계를 보여주던 영상이 떠올랐다. 


우리가 이토록 봄을 기다리는 이유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자연은 긴 시간을 버텨 꽃으로 우리를 위로해주지 않는가? 코로나 19로 자연과 인간의 사회적 거리를 둔 요즘, 어쩌면 자연에 대한 존중과 자연과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을 우리에게 준 것 같다.  [당신을 기다립니다]라는 자작나무의 꽃말처럼 우리도 곧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잘 실천하며 일상을 잘 지켜 나가길 


<Among The Trees> 전시회에서 자작나무의 사계 영상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볕 샤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